내가 '나'라는 이유로
안개는 참 묘하다. 운전 중에 만나면 빗길이나 눈길만큼 아찔하다. 가시거리가 짧으면 짧을수록 운전은 더욱 힘들어진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개가 이래서 무섭다. 심지어 얕은 산을 올라가는 데도 안개가 차오르면 자주 오르던 뒷동산마저 무섭다. 뇌 속에 있는 온갖 공포의 대상들이 안개 너머 있을 것 같은 오싹한 기분도 든다.
그런데, 한 번은 안개 낀 거리를 걸어보았다. 한참을 걸었더니 온몸이 축축했다. 안갯속을 걷는 기분은 높은 곳에 올랐을 때와 같았다. 강릉에 있는 안반데기에서 구름을 느꼈던 것과 같았다. 바람의 흐름을 따라 구름은 금방 나를 훑고 지나가지만, 안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구름 같았다. 하나 다른 건, 상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은 안개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나도 그렇다. 인생에서 고난을 만나 한 치 앞도 안 보일 때, 흔히 안갯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으나, 여전히 걷히길 기대하며 그 속에서 헤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나 분명한 건 안개는 우리의 인생 속에서 적어도 수십 번은 찾아온다는 것이다.
겪어보셔서 알겠지만, 안개는 걷힌다. 안개가 잔뜩 끼어 있는 동안은 시야도 좁아지고 공포와 불안감이 몇 배로 상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전진하는 이유는 안개가 곧 걷힐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가면 되고,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면, 발밑을 더욱 자주 보면서 걸으면 된다.
인생에 낀 안개는 우리가 만나는 안개보다 훨씬 지독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해가 더욱 높이 뜨고, 잔잔한 바람이 일면 안개는 또 금방 사라진다. 인생에서 안개도 필요하고 바람도 필요한 게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더우면 덥다고, 바람이 불면 휘청거린다고, 안개가 끼면 무섭다고 할 이유가 사실 전혀 없다. 한 인생이 자라나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몇 년째 안갯속에 갇혀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다. 무엇이든 잡고 의지하고 싶지만, 붙잡을 것은 주위에 아무것도 없다. 허우적대는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워 보일 테지만, 그래도 나는, 우리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언제 걷힐지 혹은 어디에서 끝날지 모르는 이 안갯속에서도 희망을 잃으면 안 되는 건 다른데 있지 않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도 여전히 안개만 보이는 그 길을 뚫고 온 나 자신, 그 자체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