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비

마음의 웅덩이

by 이뉴

비가 오면, 길가에 웅덩이 진 곳을 발견할 수 있다. 비 오는 날 거리를 걸을 때, 가끔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 때문에 옷이 다 젖은 경험이 다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웅덩이를 발견하면 조금 멀리 걷거나 차가 지나가길 기다린다. 비가 개면, 조금 큰 웅덩이에는 소금쟁이들이 시원시원하게 헤엄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린 마음에 괜히 ‘첨벙’하며 파동을 만들어 소금쟁이를 깜짝 놀라게 해 본다. 비에 젖은 꽃잎들은 무거워 꾸벅대고 운이 나쁜 녀석은 바닥에 제 몸이 떨어진다. 빗방울은 똑똑 떨어지며, 드디어 상상하던 왕관 모양을 만든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저마다 자기 자신의 색깔을 더욱 짙게 뽐낸다. 비 오는 날은 냄새도 다르다. 숲의 냄새는 더욱 짙게 올라오고, 가끔은 꿉꿉한 냄새가 기분 나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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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세상에만 내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네 인생에도 비는 내린다. 지겹도록 내리는 장마 기간은 모든 사람이 짜증 나고 우울한 기간인 것처럼 인생에도 그런 순간이 많다. 언제까지 내릴지 기약 없는 비는 삶을 피폐하게 하고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아주 가끔은 무료해진 인생에 환기시켜 주는 가벼운 비도 있다. 그런 비를 만나면 행운을 만난 것이다. 배움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인생의 전반적으로 비가 내려왔기에, 무엇이 도움이 된 비였는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1년으로 환산한다면, 나는 350일 정도는 비가 내렸고, 지금도 내리고 있다.


내가 자주 하는 표현이 있다. 인생은 구멍을 메워 가는 과정이라는 것. 여기저기 뚫린 구멍을 메우고 메우다 보면 인생에서 점점 괜찮은 사람, 조금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 구멍의 양과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문제를 배제하더라도 이 구멍을 메우면 저 구멍이 생기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거기에 비까지 내리면 웅덩이도 생겨 그의 삶은 더욱 힘들 것이다.


웅덩이는 사람들을 피해 가게 만든다. 자기에게 튈까 봐 그래서 젖을까 봐 최대한 멀리 돌아가 웅덩이를 지나간다. 다른 사람들은 그 웅덩이에 자신을 발을 힘껏 구른다. 내 마음의 웅덩이에 물을 빼주는 좋은 사람 같지만, 쓸데없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이 밉다. 놀리기 때문이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이었다. 추적추적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표현임을 실감할 정도로 비가 그렇게 왔다. 순식간에 최대치로 올라가는 불안은 다른 어떤 행위로도 달랠 수 없었다. 트라우마가 발동했다. 우산을 쓰고 밖을 나가 보았다. 먹구름 사이로 새가 지나갔다. 쟤들도 비가 오니 부지런히 어디로 가는 듯 보였다. 예쁘게 생긴 꽃잎 하나는 바닥에 떨어져 마지막 숨을 뱉고 있었다. 꽃잎을 요 삼아 말라버린 오래된 낙엽 하나도 보였다. 민들레 한 송이가 꼿꼿이 비를 맞고 서 있었다. 비는 그렇게 온 대지뿐만 아니라 삶,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 마지막으로 죽음의 영역까지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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