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눈

여전히 신나는

by 이뉴

믿기지 않겠지만, 어릴 적 시골집에 눈이 1m 정도가 왔었다. “ㅁ”자형 집 안 쪽에는 눈이 많이 쌓이지 않았길래, 조금 왔나 보다 했다. 하지만 나무로 된 대문의 빗장을 풀고 열어보니 대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미 눈이 대문 높이만큼 쌓여 있던 것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낑낑 대며 문틈 새로 눈을 쓸어내렸다. 간신히 문을 열었고, 그날 죽도록 눈을 쓸었다. 여기가 북극도 아니고, 무슨 눈이 이렇게 왔냐며 투덜댔다. 투덜댐의 이유는 눈을 쓸기 싫어서였고, 사실은 그렇게나 많이 내린 눈이 신기했을 뿐이었다.


당진은 의외로 눈이 자주 그리고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 그래서 겨울만 되면 눈을 원 없이 보았다. 하지만 다시는 저 정도로 많이 내리는 눈을 볼 수 없었다. 기껏해야 무릎 정도 되는 높이의 눈만 몇 차례 보았을 뿐, 벽을 세울 만큼의 눈을 보지 못했다. 안타까웠다.




희한하게도, 눈을 쓸 때마다 투덜댔음에도 눈이 싫지 않았다. 눈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눈만 오면 기뻤다. 눈싸움할 사람도 없는 깡촌, 누구와도 놀 사람이 없는 시골에서 눈 내리는 게 뭐가 그리 즐거웠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살을 에일 듯 부는 바람은 겨울을 더욱 춥게 했다. 하지만 함박눈이 퐁퐁 내리는 날은 춥지 않았다.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온도는 더 영하였지만, 체감 온도는 그렇지 않았다. 포근하다는 느낌이 가장 먼저 들 정도로 눈 내리는 날을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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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12월 27일 날 입대했을 때도 눈이 왔다. 자대배치받기 전까지 27일 동안 눈이 왔다. 훈련병인데, 제대로 된 훈련은 받지도 못하고 제설작전만 죽어라 했다. 생활관 동기는 눈이 쓰레기라며 욕에 욕을 해댔지만, 나는 아니었다. 온 세상을 낭만으로 만드는 이 아름다운 눈은 3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22년도인가. 시골집에 있을 때였다. 눈 많이 온다는 친구의 카톡에 밖을 내다보니 이미 눈이 많이 왔었다. 게다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반팔 반바지 차림에 패딩 하나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카메라에는 스트로브를 장착시키고 휘적휘적 신작로를 따라 걸어 나갔다. 그리고 계속 찍었다.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추운 것도 잊어가며, 열심히 눌러댄 결과물도 만족스러웠다. 기쁜 마음으로 패딩을 다시 잘 입고 집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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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되고 싶었던 걸까. 같이 놀 사람이 필요헀던 걸까. 아니면 하얗게 만들어 버리는 낭만적인 모습에 반해버린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난 여전히 눈이 좋고,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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