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의 계절
벚꽃을 보러 가자며 보채던 몇몇 사람들의 아우성도 벌써 오래전이다. 무척이나 짧아진 봄을 뒤로한 채 베트남에서 3개월을 보냈다. 언제쯤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을까 오매불망하며 버텨낸 시간도 한 여름밤의 꿈처럼 지나갔다. 오랜 기간 일했던 수많은 동료들은 회사의 불호령 같은 철퇴를 못 이겨 결국 퇴사했다. 텅 빈 회사에서 정말 소수의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시간이 이렇게도 화살같이 빠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는 이 무렵에 빼놓지 않고 다시 보기를 한다. 영화 대부분의 대사와 장면, 배경음악까지 거의 외우다시피 한 이 영화를 계속해서 다시 보는 이유는 겨울과 봄을 지나는 장면에 있다. 누군가에겐 혹독한 겨울이 실패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다시 봄을 맞으면서 한 뼘 더 자란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로 겨울은 춥고 아프기도 하지만, 잠시 웅크리고 회복할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렇지만, 인생에 겨울을 맞이한 사람들은 이참에 조금 더 웅크리고 있으면 좋겠다. 내 안의 작은 온기를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겨울을 수련의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이 겨울을 잘 보내면, 다시 맞이하는 봄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할 것이다. 어차피 봄은 반드시 온다. (기약이 없다는 게 사람을 자주 미치게 한다. 봄이 오지 않는다면 정말 인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 봄에는 잃어버린 활기를 되찾아 인생을 향해 조금 더 힘차게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길 위에서 같은 계절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낸 우리들은 인생의 어려움들에 대하여 감흥 없이, 때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흘려보냈을 것이다. 괜히 쳐다보면 아프니까, 괜히 떠올리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흔하디 흔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괜스레 오늘따라 다가오는 기분이다.
나에겐 정말 많은 사람들을 보낸 슬픔으로 꽉 찬 계절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찬란하여 눈이 부신 역설 그 자체의 계절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게 참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