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 도밍고를 향하여
세상에나. 글 초반에 등장한 ROK 청년이 대학교 후배였다! 서로 말 안 하고 있다가 로그로뇨에서 처음 말을 했다. 후배님과 훗날을 기약하며 힘차게 각자의 길로 갔다. 그 친구를 제외하고 한국인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확실히 비수기인가 보다 했다. 로그로뇨 숙소에서 예기치 않은 갇힘 사고가 발생하면서 7시 40분에 출발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전날 산솔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나헤라(Nájera)까지는 30km 정도 되는 꽤 긴 구간이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또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늦게 나왔다 보니 분주한 로그로뇨의 공원을 지나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만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많은 순례자들이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국인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한국인들이 어제부터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꽤 많이 보였다. 누가 봐도 한국인이며, 서로 인사할까 말까 눈치 보다가 끝내 인사하고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헤어지는, 이 수줍고도 경이로운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지금까지 걸은 이후로 ROK 청년 밖에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길 위에 한국인이 많이 있었다니 반가웠다. 그들의 길을 방해하지 않고 또한 내 길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부엔 까미노’만 외치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길이든 혼자가 아님을 또한 어떤 길이든 혼자 갈 수 없음을 느낀 소소한 일이었다.
원래는 나헤라까지 가는 여정이 한 편의 글로 완성될 예정이었다. 스페인의 태양을 제대로 맛본 날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고 나쁨을 교차하는 지난 일주일이었다. 하지만 나헤라까지 가는 여정은 온통 해뿐이었다. 작열하는 여름의 태양을 마주하며 걸으신 여름 순례객들에게 속으로 깊은 존경을 표했다. 10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열기는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 다만, 길은 걷기에 참 좋았다. 광활한 대지를 가르는 쭉쭉 뻗은 길이 주는 시원함이 있다. 또한 크게 오르락 내리락도 없으며, 포도밭이 지루할 때쯤 바뀌는 다양한 풍경들과 작은 마을들이 재미와 감동을 주었다.
앞뒤로 걷는 사람들이 모두 어딘가로 사라졌을 때, 나는 한 정자에 도착했다. 10분쯤 앉아 있었을까. 저 멀리 뽀글 머리 남자가 오고 있었다. 관상으로 보나 패션으로 보나 한국의 청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역시 맞았다. 특이한 게 하나 있었으니 가방이 일상생활에서 메는 가방이었다. 짐도 너무 없었다. 신기했고, 나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나는 순간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유이든, 순례길에 오른 이상 각자의 스타일대로 방식대로 걷는 것이니 비판이나 참견 같은 건 할 필요가 없다. 걱정이라고 포장하는 것도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한 시선일 수도 있으니 조금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른 살 친구와 한 시간 남짓 같이 걸었다. 그러다가 그는 그의 걸음대로, 나는 나의 걸음대로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되었다. 추후에 계속해서 만나지만.
긴 여정 끝에 나헤라는 잘 도착했고, 이제 제일 중요한 길에 대해서 이야기할 차례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좋았던 길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헤라에서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de la Calzada), 벨로라도(Belorado)로 이어지는 구간을 뽑을 것이다. 특히,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까지의 여정이야 말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물론, 메세타 평원 구간도 좋았다. 하지만 여기 길보다는 우선이 될 순 없었다. 왜냐하면 이 구간에서 느낀 자유와 평안은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은 아주 귀중한 보석과도 같기 때문이다.
광활한 대지,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과 수확이 끝난 비어버린 밀밭, 그 사이 난 자갈길로 걸어가는 나의 모든 발걸음에는 진지함이 묻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앞뒤로 사람도 없었다. 여기 온 이후로 아침을 잘 먹지 않고 일찍 출발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대부분 첫 끼를 먹었기 때문에, 굳이 중간에 Bar도 들릴 필요가 없었다. 간혹 저 멀리 한 분 걸어가고 계시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거기까지의 거리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멀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들릴 리가 없다. 나는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지르고, 기도도 하면서 20km 남짓한 거리를 걸었다.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 아주 적절한 태양과 구름, 지루하다 싶을 때쯤 나타나는 가벼운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개성 있는 돌들에 그려져 있는 노란색 이정표, 힘들 때쯤 나타나는 쉴만한 곳들. 아울러 이 멋진 풍경에 동화된 나의 모습까지.
31일간의 순례길에서 가장 행복했고, 가장 나다웠다. 그렇기에 당연히 이 길을 뽑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생생하다. 저벅대는 발걸음 소리부터 냄새, 땀을 앗아가는 바람의 세기까지 영원히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또한 수많은 성당들 가운데에서 이 마을 성당만큼 심금을 울린 곳이 거의 없었다. 더 크고 화려한 대성당들이 순례길에는 즐비하지만, 산토 도밍고에서 본 대성당만큼 다가오지 않았다. 무언가 이 마을은 내게 깊은 깨달음과 동시에 자유함도 느끼게 해 주었다. 용서의 언덕에서 다짐하고 걷기 시작한 이래, 그 다짐에 더 한 걸음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멋진 사람들까지 만나게 된 아주 뜻깊은 날이었다.
아무튼, 이때의 자유를 다시 느끼고 싶은 심정으로 복잡함과 난해한 인생 앞에 앉아 글을 써보고 있다.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