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계신가요?
벨로라도 가는 길 역시 어제 느꼈던 자유에 대해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좋은 길이었다. 그래도 순례길의 전반부는 날씨가 좋았던 터라 거의 하루를 제외하고는 맑은 날씨 가운데에서 걸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광활한 스페인 대지의 웅장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빌린 오래된 카메라를 연신 눌러대면서 기록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오스카를 만난 것은, 벨로라도 숙소에서였다. 후배님도 어쩌다가 같은 숙소였다. 이날 2등으로 체크인을 했는데, 광장에서 길에서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오픈 타임을 조금 넘긴 탓이었다. 3층에 있는 단층 침대로 배정을 받았다. 잠시 뒤에 순례자의 기본 일과를 마치고 난 후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는데, 후배님이 와 있었다. 몇 마디 대화를 하다가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그 친구도 저녁을 신청하였는데, 어쩌다 보니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옆 테이블에 콜롬비아에서 온 커플과 수다를 떨다가 오스카라는 아저씨가 합석하게 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오스카는 키가 190이 넘는 것 같았다. 나도 180을 훌쩍 넘는 키인데, 그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나는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었는데, 후배님과 오스카는 별로라고 했다. 오스카는 말이 많았다. 그리고 술을 좋아했다. 술이라면 내가 빠질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혼술과 회식으로 다져진 알코올로 절여진 간을 선보일 때가 되었다. 후배님은 술을 마시지 않았고, 오스카 아저씨는 와인을 몇 번 맛보더니 입맛에 안 맞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시더라. 이게 무슨 경우인가 했는데, 술이라는 게 원래 몇 번 들어가면 맛을 잘 모르게 되니 한국이나 유럽이나 비슷한 이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순례길에 오르게 되었느냐’부터 시작해서 할 수 있는 온갖 호구조사를 마치는 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두 시간이 넘었다. 나의 영어가 짧은 탓도 있었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았다. 영어 듣기 평가할 때보다 더욱 집중하여 들은 노력이 가상했는지 오스카 아저씨도 열렬히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후배님은 꽤 영어를 해서 나에게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사용하여 의미를 전달했다. 울렁증이 심했던 내가 이토록 오랜 시간 이야기했다는 게 놀라운 일이다. 산솔에서 프랑스 마담과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순례길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않나 싶었다. 나의 부족함에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끝까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준 오스카에게 참 고마웠다.
숙소 사장님도 기분이 좋았는지, 40도가 넘는 술을 꺼내오더니 홀에 있는 사람들에게 쫙 돌렸다. 나는 당연히 빼지 않았고, “한 잔 더!”를 외치며 절여진 간을 자랑했다. 오스카 아저씨는 과도한 리액션과 함께 더 이상은 못 마시겠다고 했다. 신나서 술병 들고 오는 사장님께 “그라시아”를 외치며 원샷을 때리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잘 시간이 아니었다면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서로의 문화와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만 한참 하다가 끝이 났다. 나는 솔직히 그것만으로 만족했다. 이런 이야기를 어디에서 듣고 해 보겠는가.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는 순례객들이지만, 다시 만날지 안 만날지는 내일 되어 봐야 알기 때문에 그 아저씨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초반부에 봤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만나지 못했으나, 이날 이후로 만난 사람들은 도착하는 날까지 만났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오늘의 이 대화만으로도 나는 매우 만족했다. 순례길에 오르고 나서 가장 많이 이야기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만으로 오스카에게 ‘나의 아저씨’라는 칭호를 붙여줄 수는 없다. 오스카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만났다. 그는 목적지를 정해놓고 걷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매일 같은 숙소에서 만나지는 못했다. 그러나 길에서는 반드시 만났는데, 그는 항상 나를 볼 때마다 저기 멀리서부터 엄지를 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오스카였다. 내가 매일 6시에 나간다고 하니까 ‘슈퍼맨’이라고 놀렸다. 놀리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를 마주칠 때마다 항상 반가웠고 즐거웠다.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쉽사리 지나치지 않았다. 내가 걷고 있을 땐, 내 걸음에 맞춰서 걸어주었고, 내가 쉬고 있을 땐, 그곳으로 와서 수다를 떨어주었다. 다음날에 오스카를 만나지 않으면 뭔가 불안해질 정도로 오스카는 내게 소중한 동료가 되었다.
폰페라다에서 비야프랑카로 가는 날이었다. 내 기준으로 산티아고까지 딱 일주일 남은 날이었다. 비가 갑자기 너무 많이 쏟아지는 관계로 쉼터에서 쉬고 있었다.(후반부 거의 모든 날이 비가 왔는데, 이날이 역대급으로 많이 온 날이었다.) 벌써 양말까지 다 젖은 상태라 갈아 신고 있었다. 저 멀리 파란색 배낭 커버를 씌운 한 사람이 오고 있었다. 누군지 잘 몰랐는데, 오스카는 나를 알아봤다. “Lee!”라고 부르면서 역시나 슈퍼맨이라고 놀렸다. 그도 잠시 쉼터에서 쉬어갔다.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아, 오늘이 마지막으로 오스카를 보는 날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거의 정석적인 루트대로 걷는 사람이기 때문에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라는 마을에서 잘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아저씨는 후반부에서 만나는 두 번째 산 직전까지 간다고 했다. 대략 40km가 넘었다. 그렇다면 이제 도착지까지 만날 일은 거의 없다는 뜻이었다. 서로 직감했는지, 평소에 하지 않던 인사를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무사히 잘 도착하길 바란다'부터 '몸 조심해라', '덕분에 즐거운 순례길로 남을 것 같다' 등의 인사를 나누고, 순례객만이 나눌 수 있는 진심이 담긴 포옹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해준 말 '너 멋있어'라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중에 글에 나오겠지만, 내 순례길 후반부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이 사람들에게 끌려 나오는 심정이었다. 그 와중에 아저씨가 진심을 다해 '너 멋있어'라는 말을 해주고 떠날 때, 무한한 감동이 밀려왔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사람이 있다. 민폐인 줄 알면서도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기대고 싶은 순간도 반드시 온다. 나에겐 이 아저씨가 그런 사람이었다. 길에서나 숙소에서나 밥을 먹으면서 나눈 도합 몇 시간의 이야기만으로도 나는 순례길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참 괜찮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나도 당연히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걸었던 순례길 후반부였다. 그렇게 그 아저씨와 헤어진 줄 알았다.
조금 싼 비행기를 구하려다 우연찮게 산티아고에 4일을 머물게 되었다. 3일째 되는 날, 전날 도착하신 부녀분들과 대향로 미사를 드리러 대성당에 갔다. 중간쯤 앉아 있었는데, 익숙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스카였다! 어머니와 와이프까지 같이 계셨다! 미사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미사 후에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시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라도 보고 인사를 하고 돌아갈 수 있으니 좋았다.
잘 지내고 계실까. 나의 아저씨, 오스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