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온타나스
무슨 축제가 있었는지, 6시 호텔에서 나온 나를 반기는 것은 고요한 대도시가 아니었다. 깨진 유리병들과 소리를 질러대는 난봉꾼들이 도처에 있었다. 순간 좀비 영화가 생각날 정도였다. 로그로뇨에 대한 좋은 기억은 부르고스 때문에 살짝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렇게 품평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오늘은 정말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즐긴 부르고스의 이야기도 잘 간직한 채 서둘러 빠져나왔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온타나스(Hontanas)라는 마을이다. 지옥의 메세타 평원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특이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 또 다른 이유 중 하나가 이 메세타 평원에 있다.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내가 걸었던 길 중에서 산토 도밍고, 벨로라도 가는 길과 함께 메세타 구간이 너무 좋았다. 뭐랄까. 3주 차를 바라보게 되는 순례자라면 스페인의 풍경이 솔직히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반복되는 풍경의 연속이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온전히 나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아진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조금 달랐다. 여전히 스페인의 풍경이 잘 들어왔다. 반복되는 풍경은 맞지만, 그렇다고 지루해지지는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곳이 다 달랐다. 그것들을 담고 기록하느라 지루할 틈도 없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메세타 구간에 진입하면서 나를 더 많이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과 혹독한 검열, 그리고 깊숙한 곳에 위치한 상처들을 꺼내어 마주하는 일도 잦아졌다. 순례길에 진정한 백미는 어쩌면 이 메세타에서 대부분 이뤄진다고 확신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그런 의미로 메세타는 나에게 지옥이 아니라 천국 그 자체였다.
메세타 구간에 진입하면 마을과 마을 사이의 간격이 상대적으로 넓어진다. 어느 곳은 17km 이상이나 떨어져 있다. 두 다리로만 이동하는 순례자들에게는 짧은 거리가 아니다. 그만큼 준비도 잘해야 하고, 적절한 쉼과 절제까지 갖추어야 한다. 아무튼 부르고스에서 온타나스까지는 30km를 훌쩍 넘기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정말 신나게 걸었다. 30km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살짝 무리가 와서 스틱을 다시 꺼냈다. 그래도 걸음의 속도는 늦춰지지 않았다.
온타나스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 메세타 평원이 은근히 해발고도가 높은 편이라 저 아래에 있는 마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리막길이 펼쳐지고 그 아래에 작은 마을 온타나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예상할 수 없이 갑자기 확 내리막길이 펼쳐지기에 신기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환상적이었다. 갑자기 마을이 신비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이 넓은 평원에 둘러 싸여 있어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열려 있다고 믿은 알베르게 도착했다.
알베르게는 닫혀 있었다. ‘곧 열겠지’라는 생각으로 그 앞 작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오후 1시 30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연락을 했다. 받지 않았다. 때마침 마을 주민분이 지나가셨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서 전화 한 번 해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해주셨다. 하지만 역시 받지 않았다. 스페인 아저씨는 아마 열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하셨다. (정확하게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후 1시 50분이었다. 11월에 들어서면 알베르게가 문 닫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숙소가 열려 있는지 확인도 했다. 하지만 열지 않았다. 30km가 훌쩍 넘는 구간을 걸어서 그런지 너무 힘들어 더 이상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마을에 현재 열려 있는 숙소가 없었다. 낭패였다. 까친연분들은 해박한 지식들을 내게 넘겨주면서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 주셨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이럴 땐, 빨리 다음 마을로 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나는 지체 없이 다음 마을로 갔다.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까지 8-9km였다. 오후 2시. 아쉬운 마음,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뛰었다. 거의 두 시간을 더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물도 아주 조금 남았다. 가는 길에 급하게 숙소를 예약했다. 다시 한번 확인하라는 까친연분들의 조언대로 이메일이며 문자며, 심지어 되도 않는 영어로 전화까지 하면서 확정을 받았다. 이제 달리면 된다.
정말 거짓말 조금도 안 보태고 뛰어갔다. 그리고 오후 3시 30분, 정확하게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진이 다 빠져버렸다. 내 의도대로 바꾼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45km를 오면서 오늘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씻고 빨래 대충 돌려놓고 뭐라도 먹어야 했다. 식당으로 가보니 라면하고 밥을 주길래, 옳다구나 싶어 먹었다. 4시에 먹는 첫끼란, 가히 아름다웠다. 심지어 저녁은 비빔밥을 준댔다.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녁 시간되니 오며 가며 만났던 한국인들이 다 여기에 있었다! (숙소에서 다 쉬고 있었나?) 그리고 내 순례길 후반부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신 부녀 순례자들을 처음 만나게 되는 날이었다.
정말 웃긴 것은 꼭 이렇게 우연찮게 들어온 곳이 늘 괜찮고, 좋았다는 것이다. 나의 모든 여행이 그랬고, 나의 모든 삶이 그랬다. 내가 생각한 것은 늘 평범하거나 그 이하였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로 생긴 결과물은 항상 재미있었고, 기대 이상이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막상 40km 이상을 걸어보니 두려움이었던 숫자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할 만했다. 또한 잘 알아보고 고른 알베르게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아무 숙소로 예약했는데,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는 것도 좋았다. 또한 11월부터 알베르게가 닫으니 작은 마을들에서 묵을 땐 반드시 열려 있는 것과 예약은 필수라는 사실을 확실한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런 의미로 오늘 하루를 초보자의 실수라고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게다가 급할 때 튀어나오는 영어로 보아하니 나는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덕분에 이날 이후로 나는 후반부 순례길에 대해 전면적인 수정과 함께 예약까지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나 아쉬웠으면 그날밤 꿈에 온타나스가 나왔을까. 한국에서 구간을 정할 때, 산솔과 함께 온타나스에서는 반드시 자고 싶었으니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산솔이라도 이루었으니 그나마 다행일까. 잠에서 깨, 잠시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다가 금방 다시 잠이 들었다. 생각보다 무거운 다리가 조금 걱정이 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