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에 익숙해지는 법

잠 못 이루는 밤

by 이뉴

새벽 5시, 이렇게 개운하게 잘 수가 있나 싶을까. 나는 최대한 깔끔하게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히터도 알려준 방법대로 전원을 잘 끈 뒤, 전선을 잘 말아 한쪽 구석에 잘 두었다. 우리나라 펜션 퇴실할 때 정리하듯, 넓은 방에 남겨진 내 흔적을 잘 지웠다. 그렇게까지는 보통 잘하지 않는데, 내가 마지막 손님이라고 하니 그 말을 듣고 대충 나갈 수는 없었다. 어차피 청소는 하겠지만.


옷매무새를 만지고 문을 열어 신발을 신었다. 조심스럽게 커다란 철문으로 다가갔다. 최대한 소리 나지 않게 열려고 했으나 젠장, 멀리서 개가 짖기 시작했다. 어제 6시에 나간다고 주인장에게 말을 했으니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커다란 철문을 힘겹게 여닫고 팔을 넣어 문단속까지 마쳤다. 그때였다. 아주 작은 고양이가 철문 틈 사이로 쓱 빠져나오더니 ‘야옹’ 거리기 시작했다. 금방 가겠거니 싶었는데, 계속해서 따라왔다. 작은 마을이라 가로등은 금방 사라졌다. 이제는 작은 랜턴의 빛만 보이는 길 위임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는 계속해서 따라왔다. 어떻게든 자기 몸을 내 다리에 비벼가면서 말이다. 크기도 작은 애가 여기까지 쫓아오니 신경이 쓰였다. 발을 쿵 구르며 쫓아 봐도 가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워 본 적이 없으니 그 친구가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들을 리도 만무했다. 답답했다. 내 발걸음도 계속해서 지체됐다. 사실 오늘 가는 마을이 ‘카리욘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라고 약 35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래서 6시에 나왔는데, 이렇게 지체되면 조금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하는 수없이 강제적으로 떼어놓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고양이가 멈춰 섰다. 그리고 내가 가는 방향을 향해 계속해서 짖었다.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기 울음소리가 같다고 누가 그랬는데, 정말 그렇게 들렸다.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계속 신경 쓰여서 자꾸 뒤를 돌아보며 걸었다. 더 이상 그 친구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날이 밝아오려 하던 때에 고양이는 잘 돌아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가 뜰 때 즘, 카스티야 운하에 도착했다. 보통은 프로미스타라는 동네에서 오늘 가는 마을인 카리욘 데 로스 콘데스까지가 아주 정석적인 루트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된 변수로 인해서 오늘도 많이 걸어야 하기 때문에 이 아름다운 길을 새벽에 걸어야만 했다. 사실 이 부분이 조금 안타까웠다. 완전히 해가 떴을 때, 나는 운하를 다 벗어났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끝무렵에 가서 아름다움을 보았으니 만족하려 한다. 프로미스타에 다 와 갈 무렵, 우리 시골 동네에서나 볼 법한 작은 수로를 지나갔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수로와 함께 분홍색의 하늘색이 아름답게 보였다. 새벽에 이 길을 통과해 온 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


20101231-P1010425.JPG
20101231-P1010427.JPG
20101231-P1010426.JPG
그래도 봤으니 다행!


약 35km 되는 구간을 힘겹게 걸어 오후 3시 정도에 도착했다. 엊그제 무리한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오늘은 쉼을 많이 가지면서 걸었더니 평소보다 훨씬 늦게 도착했다. 인자하신 수녀님이 체크인을 도와주셨고, 기적의 메달도 주셨다. 언제라도 오늘의 이 만남과 걸으면서 느꼈던 감정들과 마음을 금방 기억나게 해 줄 것 같았다.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셨다. 이미 길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다 여기에 있었다! 부녀분들도 벌써 와서 쉬고 계셨다. 옆쪽 침대에는 후배님이 있었고, 마주 보는 침대에는 오스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반가운 인사들을 뒤로하고 나는 빨리 쉬어야 했다. 순례길 15일 차를 맞아 적응이 됐다 싶었지만, 생각보다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다. 점심도 저녁도 특별히 사 먹지 않을 정도로 귀찮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수녀원은 나 같은 종교인들에게는 천국이었다. 개신교 신자이지만, 밖으로 나가 나의 신께 기도를 드렸다. 숙소 안쪽 예배 공간에서는 순례자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깊은 밤이 되었을 때, 경찰이 왔다. 누가 1,000유로를 잃어버렸다고 했다. (큰 금액을 현금으로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우리 방은 아니었고, 다른 방이었다. 경찰들이 숙소를 뒤지고 찾고 난리도 아니었다. 결국 못 찾았다고 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나니 생각보다 불편한 잠자리에 많은 이들이 뒤척였다. 이 사람 저 사람 소리와 참을 수 없는 침대의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합쳐져 쉽지 않은 밤이었다.


불편함은 글자 그대로 편하지 않은 상황이나 상태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엇이든지 쉽다 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불편함이다. 그런 의미로 나의 삶은 온갖 불편함 투성이었다. 그래서 불편함을 참고 견디는 것에 일가견이 있다. 나는 심지어 관계에 있어서 불편함까지도 참고 버틸 수 있는 괴상한 힘도 얻었다. 하지만 관계에서의 불편함을 참고 버틴다는 건 결국 그 집단을 혼돈으로 빠뜨리는 아주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사과와 끝맺음이라는 수단으로 관계들을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관계를 제외하고 생활에 있어서 불편함을 지금도 잘 참고 버틴다. 교회 작은 다락방에서도 2년 반을 지내본 사람이고, 한 끼 식사로 라면 하나씩 먹으면 한 달도 살아본 사람이다. 벌레를 극도로 싫어함에도 시골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그래서 어쩌면 이 순례길의 다른 의미로 내가 어디까지 불편해야 하는가를 시험해 보는 장이기도 했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불편함도 결국 시간을 거스를 수 없고, 그 짧디 짧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불편했던 순간들도 곧 지나감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불편함이 찾아올 수 있지만, 그렇게 몇 차례 관통하여 지나간 불편함들로 인해 내성이 생겼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있다.


그날 밤 1,000유로 도둑놈부터 시작해, 어딘가 모르게 부산스러웠던 그 공간, 그 시간이 이제는 기억 너머 저편에 있다. 다음 날 결국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했지만 그것 또한 극복하고 걸어 나가는 순례자의 일상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게 여행이자 낭만이지 않겠는가.


KakaoTalk_Photo_2026-02-09-18-54-29-4.jpeg
KakaoTalk_Photo_2026-02-09-18-54-29-1.jpeg
KakaoTalk_Photo_2026-02-09-18-54-29-2.jpeg
KakaoTalk_Photo_2026-02-09-18-54-29-3.jpeg


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