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카리욘 데 로스 콘데스를 지나 테라디요스에 도착했다. 아주 조용한 마을이었다. 수녀원에서 다시 만났던 오스카와 한국 청년들은 오늘 사하군까지 간다고 했다. 오스카도 마찬가지였다. 부녀분들은 내가 묵는 전 마을 레디고스에서 묵으신다고 했다. 덕분에 오늘 저녁은 한국인들 없는 숙소에서 잘 수 있겠다 싶었다. (전 날 같은 숙소였던 한 분이 나중에 오셨다)
무난하게 테라디요스에서 도착했다. 아침에 같이 대문을 나온 한국 청년이 간단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알고 보니 유튜버였다. 조심스럽게 채널을 물어봤는데, 알고리즘에 떴던 분이었다! 신기했다! 그와 몇 마디 나누고 그는 사하군까지 가야 한다고 얼른 자리를 떴다. 때마침 나도 체크인 시간이 되었다. 조금씩 비가 떨어진다고 조심히 가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떠난 몇 분 뒤에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비를 보고 있자니 후배님도, 한국 청년들도, 오스카도, 부녀분들까지, 아니 모든 순례객들이 다 걱정되었다. 사하군까지 가려면 꽤나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들었는데, 사하군까지 아주 아주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빗소리를 들으며 조용한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시 아침 6시, 17일 차. 베르시아노스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어젯밤 라면 하나 부셔먹은 게 전부여서 그런지 몹시 배가 고팠다. 허겁지겁 물로 배를 채우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다만 오늘 예보에 비가 상당히 많이 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베르시아노스까지 걷는 길은 평탄했다. 그러나 하늘은 잿빛과 맑음을 오가며 상당히 걷기 불편하게 만들었다. 우비를 벗으면 비가 오고, 우비를 쓰면 비가 그치는 정신 나간 날씨 속에서 그래도 큰 비를 맞지 않고 무사히 베르시아노스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다시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더 심하게 말이다. 부녀분들이 오늘 여기로 오시기로 했는데, 정말 걱정이 되었다. 내가 오후 1시 조금 넘은 시간에 점심을 먹었으니 말이다. 우비를 쓴 순례객들이 빗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서둘러 알베르게로 밀려들어 왔다. 한국분들은 보이지 않았다. 걱정됐다.
오후 4시가 다 되어가는데 부녀분들이 오지 않았다. 어제 나보다 전 마을에서 출발하시기 때문에 30km 가까운 거리를 걸으셔야 했다. 아직 카톡 교환을 하지 않아서 어디신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리셉션 방향을 계속 기웃거리며 쳐다보았다. 오후 4시 조금 넘은 시간, 부녀분들이 오셨다! 비를 쫄딱 맞으셔서 무척 피곤해 보이셨다.
갈리시아 지방은 비가 굉장히 많이 온다고 했다. 아직 레온도 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순례길 후반부가 굉장히 피곤할 것 같았다. 틈틈이 확인하는 일기예보엔 온통 비 그림으로 가득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순례길 후반부는 비를 맞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전반부의 순례길을 좋은 날씨 가운데 걸었으니 후반부는 비를 좀 맞아야 밸런스가 맞았던 것일까. 비와의 전쟁이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