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불청객(2)

불안

by 이뉴

새벽 5시, 기침이 계속 나오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강제로 짐을 챙겨 내려왔다. 한 시간 정도 앉아 있다가 문을 열고 나왔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다. 어제 그 정도 따진 것 가지고 화나신 건가.


새벽 6시에 출발했으니 당연히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를 자세히 보고 갈 수 없었다. 심지어 기상도 좋지 않았다. 산길에 앞도 잘 보이지 않지, 비는 내리지, 싸구려 작은 랜턴은 수명을 다한 것인지 희끄무리한 빛만 비치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싶을 때쯤 날이 밝았다. 그때 한국에서 동생 소식이 들려왔다. 응급실 갔다가 입원했다고. 일부러 얘기 안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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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집에 환자가 있어서 병원을 자주 다니기에 적응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병원 소식은 늘 충격적인 일이며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일이다. 풍경이 거룩할 정도로 느껴질 때 들려온 그 소식은 내가 바라는 또 하나의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서 생긴 분노와 억울함은 끊임없이 나를 공격했으나, 이제는 그 대상을 하늘로 바꾸었다. 손가락으로도 부족해 스틱으로도 연신 하늘을 찔러가며 욕을 퍼부었다.


도대체 이러실 수 있느냐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냐


눈물이 미친 듯이 났다. 순례길 초반에 흘린 눈물은 뭐랄까 치유와 감격의 눈물이었다면, 후반부에 흘린 눈물은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이 불안과 비참함에 대한 하소연이었달까. 아무튼, 소매로 눈물을 훔치기도 전에 날려버리는 바람 덕분에 나의 행동엔 거침이 없어졌다. 소리를 미친 듯이 질렀다. 목은 감기로 이미 다 쉬어서 캑캑대는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어차피 지금 이곳에서 나의 이 미친 짓거리를 보고 들을 사람은 없다.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었다. 이 육중한 몸이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세찬 바람에 더해보라고 한껏 소리 질렀다. 과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은 승질머리를 더 돋게 했다. 그러자 나뭇가지가 내 앞에서 쿵하고 떨어졌다. 바람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 정도로 마무리 지어도 될 아주 작은 이야기를 괜히 하나님과 엮어서 일을 크게 키웠다. 그렇게 울고 불고 소리 지르면서 내려왔다, 몰리나세카까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오늘 하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M과 M이 만나는 순간”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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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1-11절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일반인들에게도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다. 소위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예수의 대답은 허를 찌르는 희대의 명답이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예수를 싫어하는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에게 빠져나올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위기에 빠뜨리려 했다. 쉽게 말하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살려주게 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고, 죽이라고 명한다면 예수의 가르침은 위선이 되기 때문이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예수는 모두가 알고 있는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 순간 아무도 나설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예수의 위로의 말씀으로 이 이야기는 끝이 나는 게 가장 일반적인 이야기이다.


어느 날,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교수가 모 방송에서 말했던 게 생각났다. 여인이 끌려온 그 현장에서 예수는 두 번이나 땅에다가 무언가를 적으셨다. 신학교에서는 예수의 그 행동에 대한 다양한 견해로 배웠으나 무엇 하나 시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분의 해석이야말로 그 이야기를 완성시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이 여인을 다 쳐다보고 있었는데, 단 한 사람만 그 여인을 쳐다보지 않고 있었다. 바로 예수였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으면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얼마나 비참했을까.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인파의 시선은 오로지 자기 하나에 꽂혀 있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죄를 지은 사람이기 전에 가엾은 실존이었다. 그러나 자기를 유일하게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내 앞에서 땅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예수였다. 그 순간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유일하게 그 여인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인간적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하신 것이 아니었을까.


성 어거스틴은 이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두 사람만 남았다. 비참한 여자와 자비 그 자체가 (Relicti sunt duo: misera et misericordia)"


그래서 한동일 교수는 “M(miseria(비참함))과 M(misericordia(자비))이 만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 뒤로 나는 이 말을 굉장히 좋아하게 되었다. 이 여인의 상황과 나의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순히 간음을 했냐 안 했냐를 떠나 예수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 나에겐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나는 신나게 욕을 퍼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여전히 내 앞에서 나의 원망과 실패와 비참함의 모습을 쳐다보지 않은 채 듣고만 계셨다. 그 순간 마치 나는 수많은 인생의 문제들이 나를 패배자라 욕하며 비웃어도, 내 앞에 있는 한 존재만은 나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욱 나의 이 비참함과 신의 자비하심이 만나는 순간을 늘 기대하며 살고 있다.


산을 넘어 내려올 때, 신과 나눈 분노의 대화는 결국 신의 자비하심으로 결론이 났다. 어제 나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실 거냐며 외친 외마디 비명들이 떠올랐다. 정돈되지 않은 바위길을 내려오며 그 모든 말들이 지나갔다. 나는 결국 신의 임재를 느꼈다. 내가 아무렇게나 휘둘러 대는 그 상황에서 그저 침묵으로, 아름다운 자연으로, 눈물을 앗아가는 바람으로 내 옆에, 앞에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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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많은 비는 아니었다. 창문 밖 비 내리는 거리를 내다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어제 떼처럼 몰려온 불청객 불안이라는 놈은 어디로 갔는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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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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