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이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돌아오는 길

by 이뉴

대성당에 도착해서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놈의 비는 끝까지 나와 마주한다 싶었다. 광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던 사람들은 헐레벌떡 뒤편으로 이동하거나 우산을 펼쳐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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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보니 급 허기가 져, 우비를 쓰고 한식당을 향해 걸어갔다. 재빨리 먹고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끝났으니 순례자보단 관광객으로 변할 차례였다. 저녁엔 ‘언니네 편의점’이라고 순레길을 걸은 사람들은 거의 다 들리는 곳이다. 배낭을 제외한 캐리어 등의 짐을 맡아주시기도 하지만, 라면이나 과자 등 간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여기를 가는 이유는 마지막 쎄요를 찍기 위함이다.


‘길은 이곳에서 다시 시작된다’


아주 철학적이고도 멋진 문구가 적힌 쎄요를 ‘쾅’하고 찍고 나니 진짜 모든 것을 끝낸 느낌이 들었다. 사장님과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다시 한번 내가 걸었던 순례길을 생각해 보았고,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걸었던 날, 무엇인가를 얻고 돌아가자 다짐했었다. 인사를 열심히 해보자 해서 정말 열심히 했다. 지나가는 고양이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스페인 하숙’에서 유해진 씨가 한 말처럼 ‘굿모닝’하다 보니 정말 ‘좋은 아침’이 되어 가고 있었다.


또한 얻은 것도 꽤 있었다. 애써 외면해 왔던 내면의 상처들을 꺼내어 뜨거운 스페인 태양에 말리기도 하고, 바람에 날려버리기도 하며, 쏟아지는 빗줄기에 씻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소중하게 다룬 나의 아픔과 상처들은 끝날 무렵 내 안에 다시 집어넣을 땐, 더 이상 아픔이 되지 않았다. 더 이상 슬픔 또한 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은 내게 새로운 길로 안내해 줄 것 같았다. 아마 ‘슬픔이 길이 될 때까지’라는 제목으로 몇 편의 글을 끄적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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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다음날, 1등으로 순례자 사무소에 도착해 완주증을 받았다. 얼떨결에 식사권도 받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얼떨결은 아니다) 공짜밥을 마다할 수 없으니 시간에 맞추어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식당 한편엔 순례자들을 위해 이미 테이블 세팅이 되어 있었다. 의자가 점점 채워졌고, 모든 이들이 모이진 않았다. 공짜 밥을 마다하다니 믿을 수 없었다. 맛은 막 엄청 맛있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되려, 순례길에서 먹은 별것 아닌 음식들이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마도 행군 때 먹는 컵라면 한 사발을 먹는 것과 같아서일까. 고급 레스토랑 음식이 의외로 보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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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묵시아와 피스테라를 끝으로 나는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특히 묵시아에서는 대단한 영적인 기분을 느꼈다. 거기서 쓴 기도 한 편은 이제 나의 방향키가 되어 줄 것이다. 이로써 나의 순례길은 끝났다. 여전히 여기에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이제 인생 순례길이 여기서 다시 시작될 것’이라며 마지막 도장을 찍을 때 사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처럼 프랑스 길이 아닌 내 삶을 걸어낼 것이다. 먼 훗날 다시 찾을 것 같은 이 길에 아쉬움 한 스푼 남겨두고 정든 스페인에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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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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