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마음에 드는 성당 뒤편에 자리 잡은 숙소의 뒷문을 열고 나왔다. 어제저녁에도 이 성당 앞에 앉아 한참을 생각을 했었는데, 아침에도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이런 별 것 아닌 장소에서 영성을 다잡게 되는 게 종교가 가진 또 다른 신비다. 차가운 돌로 된 성당 벽을 짚으며 몇 마디 기도를 읊조렸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지켜 달라고 했을 뿐.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벌써 많이 추워진 탓에, 하얀 입김이 쏟아졌다. 다소 얇은 차림의 옷이었지만, 추위를 잘 타지 않는 좋은 체질 덕분에 낯선 차가운 공기에 몸이 굳지 않았다. 한숨 깊게 들이마시고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마을을 벗어났다.
특별하게 기억나는 길은 아니었다. 하나 아쉬운 건, 멜리데의 뽈뽀 맛집을 못 갔다는 것 하나 정도. 워낙 이른 시간에 나와서 걸었으니, 늘 그렇듯 마을엔 식당이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껏 이른 시간에 나와 걸은 것을 후회하진 않는다. 나에겐 값진 시간이었다. 적막한 새벽, 어둠, 차가운 공기, 저벅대는 발소리, 하얀 입김, 가끔 들리는 새소리와 고양이 울음소리, 새벽 냄새 등등 유명한 식당보다 훨씬 좋은 것을 느꼈으니 그렇게 아쉬운 건 아니다.
‘아르수아’에 도착했다. 털보 아저씨가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물으셨다. 살짝 무서웠다. 그래도 넓은 방을 나 혼자 쓸 생각 하니 조금은 감수해도 되겠다 싶었다. 순례자의 일과를 마치고 동네 구경을 좀 한 뒤에, 방으로 바로 들어왔다. 무언가, 아쉬움이 짙게 남은 것 같았다.
내일이면 끝이 난다는 사실과 더불어, 무언가를 빼먹은 듯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순례길에 오르면서 ‘인사를 잘하자’라는 다짐은 잘 지켰다. ‘올라, 부엔 까미노’, 일곱 글자뿐인데도 나는 그 말을 하기가 어려운 아주 샤이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잘했다. 하다 보니 익숙한 듯 잘되었다. 힘도 나는 것 같았고. 그래서 내가 무엇이 그렇게 아쉽게 느껴지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잠시 뒤 번뜩 생각이 났다. 좀 더 말하고, 좀 더 웃고, 줌 더 울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졌다.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동네 산책로에서 만난 인사하고 가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제주를 한 바퀴 걸을 때, 슬쩍 다가와 물 한 병 건네주신 아저씨도 기억났다. 그렇게 한 두 명씩 떠올리다 보니 나는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회사에서 만났던 나를 기분 나쁘게 했던 많은 사람들도 어떻게 보면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순례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첫날 지옥과도 같은 산을 오를 때 나를 갈증으로부터 구원해 준 이름 모를 키 큰 외국인, 같이 걸었던 프랑스 마담, 괜찮냐고 몇 번이나 물어본 도미닉, 산솔에서 느낀 스페인 사람의 열정, 그리고 프랑스 마담과의 진솔한 대화, 네덜란드 아저씨 오스카와 후배님, 그리고 부녀분들 등등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가며 나를 도왔다. 그런 것에 비해 나는 좀 더 다가가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핑계 댈 거리야 많다. 장기간의 해외여행은 처음이기도 했고, 영어 실력도 형편없으며, 원래 내성적이니 이런 여행은 사실상 어렵다는 등등. 하지만 이 여행은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도 남을 여행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전과 확실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단 한 번의 경험으로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잘 믿지 않지만, 이 순례길을 통해 점진적으로 바뀔 것 같은 기분이 강하게 든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슬픈 3월의 어느 날에도 여전히 난 그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솔직히, 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도 사람의 인생이 바뀔 수 있는데, 이런 특별한 경험이야 오죽하겠는가. 다만, 내가 한 경험들에 비해 나의 부족함이 느껴졌던 아쉬움이 들뿐이다. 내가 믿는 신께 좀 더 대들어도 됐을 법했는데, 누가 쳐다보지도 않음에도 미쳐 꺼내보지 못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상처들도 아쉬웠다.
괜찮다. 돌아갈 내 삶에서 더 울고, 더 웃으면 되니까.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쯤은 이미 여기서 각오하고 돌아간다. 막상 거의 다 와가니 이 길도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 최대 업적이라고 지금도 자랑하고 다니지만, 이제 내 삶으로 최대 업적을 증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텅 빈 방, 다소 소란스럽게 들리는 라디에이터 소리를 자장가 삼아 그렇게 마지막 날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