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곳에
전날 ‘오 페드로우소’ 숙소를 과감히 취소했다. 한 번에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마지막이니, 40km 거리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대망의 아침이 밝아왔다. 드넓은 방엔 나를 포함해 두 명만 있었다. 그 사람도 나도 뒤척이며 아침을 맞이했다. 그 여자분은 오늘이 마지막일지는 모르겠으나, 표정으로 보아하니 하루 더 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가볍게 인사만 하고 문밖으로 나왔다. 31일 동안 내 전부였던 짐을 정리하며 사과 하나를 먹었다. 마지막 한 입을 베어 먹는 동시에 몸을 툭툭 털며 길을 나섰다. 짐도, 발걸음도, 마음도 전부 가벼웠다. 누구나 그렇듯,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련함과 아쉬움을 나 역시 느꼈다.
첫날 산을 오르며 한 모금씩 아껴 먹었던 물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발걸음은 한 걸음 한 걸음 소중하게 여겨야 했다. 먼 훗날, 다시 이곳에 오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그 '언젠가'라는 시간이 매우 멀게 느껴지기에 오늘의 이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사용해선 안 되었다. 한 걸음 한걸음 꾹꾹 눌러 걸으며 반추하듯 까미노 길로 들어섰다.
마지막 날을 위해 짐을 조금씩 줄여왔다. 먹을 것도 다 먹었다. 가방은 무척 가벼워졌고, 덕분에 뛰는 듯한 걸음으로 걸을 수 있었다. 가는 길은 더할 나위 없이 찬란했다. 금방 아침이 밝아왔다. 확실히 마지막 구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길 위에 많았다. 특히, 오 페드로우소를 지나자 앞 뒷사람과 몇 미터 차이 나지 않았다. 인사를 하도 많이 하다 보니 목이 아플 정도였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모두들 목적지로 걸어가는 것 같아서 따뜻해졌다. (안타까운 일이 나보다 하루 앞서 출발한 한국인들에게서 일어나긴 했다. 많이 다치셨다고만 들었는데, 한국으로 잘 돌아가셨는지 궁금하긴 하다.) 같은 곳을 향해 달려온 이 길 위에 모든 사람의 표정에선 엄청난 희열과 기대감이 보였다. 마치 올림픽 폐회식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7시간쯤 걸었을까. 저 멀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몇 분 동안 이야기하며 걸었던 외국인들과의 대화도 금방 끝이 났다. 그 사람들도 나도, 모두 핸드폰을 꺼내 저기 멀리 보이는 별들의 들판을 찍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러자 순례길을 처음 시작한 날이 떠올랐다. 정확히 30일 전 피레네 산맥을 넘던 그날, 날씨가 굉장히 좋았다. 다만, 그때 그곳엔 바람이 상당히 많이 불었지만, 지금 여긴 바람도 기분 좋게 불어왔다. 마치 수미상관을 보여주려 하는 것인지, 나의 마지막 날도 첫날과 거의 흡사했다. 햇빛이 내리쬐는 스페인의 도시는 쨍하게 아름다웠다. 솔직히 대도시에서 머물렀던 대부분의 날들이 흐렸기에 잘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운이 안 따라주는구나' 싶을 때,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스페인의 도시를 보고 돌아가지 못했다면 정말 아쉬웠을 것이다.
연신 카메라를 들이대며, 흥분된 마음을 마음껏 표출했다. 다른 순례자들 역시 그렇게 보였다. 조용했던 지난 30일간의 순례길과는 다르게 시끌벅적했다.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렇게 나는 도착했다. 15년 전부터 이곳에 와 보기를 꿈꾸었고, 마침내 여기에 내가 서 있게 되었다.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걷는 내내 고민했으나, 막상 도착하니 적당한 리액션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나오진 않았다. 상스러운 말로, ‘미쳤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 유럽 여행을 나선 어느 시골 촌놈에게는 그냥 모든 것이 아름다웠을 뿐이었다. 한국은 늦은 밤이었음에도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영상통화까지 했다. 어떤 이들은 넓은 광장에 앉아서, 어떤 이들은 뒤편 기둥에 기대어, 저마다 멋진 포즈로 이 여정을 끝냈다는 것을 자축했다. 나는 광장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핸드폰을 들이대기를 반복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특별히 내가 무엇을 해서 이룬 게 많지 않았다. 가난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고작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는 것과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뿐이었다. 갖고 싶은 게 있어 열심히 돈을 모으다 보면 그 돈은 다른 구멍을 메꾸기 바빴다. 독서를 좋아하지만 책을 살 수 없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한참 읽다 왔다. 내려놓은 책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련해진다. 내가 이루기 위해 한 행동들은 인생에 깊게 기록되어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행동들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내가 그렇다. 내가 부족해서 일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난 그저 살기 바빴다. 핑계가 아니라, 이뤄내고 싶은 것도 감추어야 했던 불안함의 끝에 서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이 대장정은 내겐 귀한 경험이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이룬 거의 처음의 것이 아닐까 싶다.
‘해냈다’의 의미를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려 말하자면, ‘대단하다’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겐 그저 단순한 ‘대단함’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5년이나 준비한 이 길, 인생의 커다란 파도가 올 때마다 휙휙 바뀌어야 했던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않고 간직했던 몇몇의 꿈,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지켜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많은 불안을 가지고 있는 이 비참한 실존이 우여곡절 끝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에서 마침표를 찍었다는 것 그 자체가 말이다. 800km라는 숫자가 주는 성취감과 대성당이 주는 웅장함과 포근함에 35년 인생의 아픔이 눈 녹듯 사라졌다. 신이 왔다 가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