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걸려온 전화 한 통
‘별 일 아닐 거야’라는 확신에 찬 말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누가 어떻게 말했는지가 첫째로 가장 중요하지만, ‘별 일 아닐 거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의 진심은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사람에겐 환기를 넘어 생각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인생의 고비를 만날 때 줄곧 그 생각에 사로잡혀 지내는 편이다. 배워먹은 지식 나부랭이 안에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다’. ‘그렇게 만날 생각만 하기보다 차라리 무엇이라도 해라’. ‘좀 더 확실한 계획을 세워보라’는 식의 말들을 다 알고 있다.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문제 해결 방식들을 모르지 않는다. 사람은 어리석고, 나는 늘 머리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는다. 덕분에 몸이 고생한다. 하지만, 나의 이런 방법이 힘든 시간들을 견디고 버티어내는 데에 최적화된 것일 지도 모른다. 배워먹은 지식 나부랭이들처럼 했다면, 정말 ‘별 일’이 일어나지 않고 지나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서른 살이 되고부터는 힘든 일이 부쩍 많아졌다. 인생에서 쓴맛, 단맛을 많이 느꼈다고 생각했었는데, 오산이었다. 어찌 인생은 가면 갈수록 더 힘들어진다. 가족 문제도 있고, 돈 문제도 있어서 이래저래 걱정을 많이 하던 어느 날에, 가끔 연락하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왕래도 없고, 어쩌다 SNS로 간간히 연락하던 친구였다. 대학 동기인데, 나이는 한참 어리다. 나이도 어린 게 꽤나 성숙했던 친구로 기억하고 있었다. 대충 말만 들어도 그와의 관계가 깊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았다. 시답지 않은 안부 인사를 건네고 시작된 그와의 대화는 정말 생각의 전환점이 되었다. 나의 가장 큰 문제는 힘든 경험들이 없던 사람들, 즉 무난하게 인생을 살아낸 사람들의 말에는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종의 교만함인데, 평범한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와 ‘힘내라’하는 말들이 적잖이 꼴사납게 느껴졌다. 자격지심이겠지. 아무튼 그런 전화일 거라 살짝 기대도 하면서 통화를 이어갔다. 사실, 비슷한 말을 했더라면 한바탕 할 심산이었다. 중간에 던진 그의 말 한마디는 아주 분주하고 뜨거운 나의 마음을 식혀주었다. ‘형. 별 일 아닐 거야.’
듣고 싶었던 말을 들어서일까. 한바탕 할 심산이었던 마음은 금방 사라졌다. 파도를 정통으로 맞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파도가 세상에서 제일 큰 파도로 느낀다. 하지만, 다시 한번 느끼지만, 이 파도는 언젠가 반드시 넘어간다. 나의 온몸을 강타한 뒤 넘어가거나, 내가 파도를 타거나 하는 식으로 지나가게 되어 있다. 그 후로는 아무렇지 않게 제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파도만 지나갔을 뿐이다. 나는 ‘네가 뭔데?’라고 한 마디 하려던 찰나에 그가 던진 말이 내 마음에 쏙 들어왔고, 그날 이후 문제는 다르게 보였다.
결과는 예상하는 대로, ‘별 일’ 아닌 것으로 끝이 났다. 정확히는 끝이 나지는 않았지만, 생각을 그만두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회피라고 말하던데, 아니다. ‘별 일’ 아닐 문제에 생각을 더 할 이유는 없다. 나한테는 이미 지나간 파도이다. 어차피 다른 파도가 올 텐데, 지나간 파도를 생각해 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길었던 생각을 끝냈다. 믿음인지 합리화인지 몰라도, 정말 ‘별 일’ 아닌 것으로 나의 파도는 지나갔다. 하루는 울음으로, 하루는 절망으로 보내던 나의 시간도 다 과거가 되어 버려, 다시 찾아오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보낸 ‘별 일’ 아닌 것들이 모여 다시 파도를 맞을 힘을 전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