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놀라움
식사를 마치고 시피소-피소 폭포(Air Terjun Sipiso-piso)를 향해 달렸다. 이제 근방이라 지루함도 사라졌다. 입구에 도착했다. 공무원처럼 생긴 사람이 입장료를 걷었다. 그래서 다 된 줄 알았는데, 주차하려고 하니 돈을 또 내라고 했다. 입장료나 주차비나 한국 돈으로는 얼마 되지 않아 부담은 없는데, 좀 이상하긴 했다. 물어보니 이런 곳이 상당히 많다고 했다. 아마 이런 부분은 인도네시아의 부정적인 모습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폭포 소리가 들렸다! 빨리 근처로 갔다. 사계 정리가 잘 안 되어서 나무 사이사이로 봐야 했다. 그렇게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드디어 현지인들과 사진을 찍힐 기회가 생겼다. 같이 찍어 달라는 부탁이 빗발쳤다. 이번에 쑥스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찍혀줬다. 스타의 기분을 살짝 느껴보았다. 아, 피곤하다. 폭포를 더 가깝게 보기 위해 살짝 아래로 내려갔는데, 이번에 아이들이 떼로 몰려와 찍어달라고 했다. 어릴 적 포켓몬 카드 모으듯이 그 친구들은 외국인들 사진 수집하는 게 놀이처럼 보였다.
시피소-피소 폭포를 더욱 아래에서 보니 놀라웠다. 이 폭포의 어원은 당연히 바탁어에서 왔고, 떨어지는 물줄기 모양이 ‘날카로운 칼’ 같다고 하여 이름이 그렇게 불렸다. 설명을 듣고 보니 빈틈없이 쏟아지는 게 정말 칼처럼 생겼더라. 또한 알고 보니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폭포였다. 120m 정도 된다고 했다. 한 시간 정도를 내려가면 폭포를 가장 밑에서 볼 수 있다고 형이 그랬다. 그래서 더 아래로 갈 수 있었는데, 과감히 포기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운동부족인 나한테는 감당할 수 없는 경사와 계단의 수였다. 중간 지점인 여기에서도 충분히 잘 보였기 때문에 만족했다. 알록달록한 폭포 절벽과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니 백 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시원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왜 메단에 오면 토바 호수 다음으로 여기를 찾아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뷔자데라고 하던데, 사진을 찍고 경치를 감상하는 일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왜 그럴까’ 하다가, 금방 그 기분은 사라졌다. 폭포를 생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건, 여전히 이 나라에 와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있는 게 신기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아니면 힘찬 자연의 모습에 감탄한 것일지도.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세 명이었다. 세 명이 돌아가면서 귀여운 포즈를 취해가면서 찍고 있었다. 어떤 남자에게 찍어 달라고 부탁도 했다. ‘나한테는 찍어 달라고 안 해줬나’하는 생각도 했다. 낯선 외국인에게 말 걸기 쉽지 않았겠지.
형은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갔는데, 갑자기 날 불렀다. 후다닥 내려갔다. 저것이 건물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잡화점 형태의 집이 있었고, 그 앞에 사진 포인트라고 적혀 있는 팻말이 있었다. 돈을 내고 찍으라는 것이다. 굳이 돈까지 내면서 찍을 정도로 예쁜 포인트는 아닌 것 같았다. 그 대신 그 옆 낡은 평상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곳에서 찍었다. 덕분에 오금은 좀 저렸다.
충분한 시간을 보낸 뒤, 산책로를 따라 차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너무 아쉬웠다. 뒤돌아 폭포를 보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변하는 모습을 조금 더 만끽했어야 했는데, 지금도 두고두고 아쉽다. 잠깐 상점에 들러 첫날 마셨던 차를 마셨다.
솔직한 생각으로, 유명 관광지 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았다. 시야를 방해하는 나무들도 거슬렸다. 또한 안내판이라든지, 산책로 정비라든지 하는 기본적인 것들이 생각보다 수준 이하였다. 사람들은 많이 찾아오는데, 그에 못 미치는 정도였다. 기화가 된다면 직접 가보시길 바란다. 다만, 그 모든 것을 잠재울 폭포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자연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일 때가 멋진 게 아닐까 싶다. 소리, 색, 모양, 높이, 크기 등등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퍼포먼스는 닭살 돋게 하며, 머리를 쭈뼛 세우게 한다. 나에겐 피사체인 그들에게 겸허함을 늘 배운다. 대차게 쏟아내는 물줄기의 끝은 포말이 된다. 그 포말은 중간 지점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올라오니 가히 어마어마한 에너지다.
이래서 자연을 피사체로 삼을 때는 편견이 들어가면 안 된다. 나의 솔직한 생각도 결국은 한국의 관광지들과 비교했기 때문이 아닌가. 미국의 그랜드캐니언도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자연스러워야 할 땐 인간의 손길을 최소한으로 제한했던 것처럼. 여기도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생각을 바꿨다. 피사체에 편견이 들어가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도 모두 그 반대가 되어 버린다. 이 거대한 폭포는 나에게 다시 한번 감동과 함께 겸허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