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한국인가요

메단, 다운타운 Day 5. 따뜻함

by 이뉴

부리나케 일어났다. 드디어 형네 집으로 가는 날이었다. 빈손으로 갈 수 없어서, 어제 부랴부랴 과일 시장을 찾았다. 마침 브라스따기가 과일로 유명한 동네였기 때문이다. 스포츠 행사가 있었는지, 호텔은 아침부터 붐볐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간신히 자리가 나서 앉았다. 맛은 첫날 토바호수에서 먹은 조식이 강렬해서 그랬는지, 별 감흥이 없었다. 배고파서 먹은 느낌이었다. 여러 종류의 음식이 있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 먹어보지 못한 게 살짝 아쉬운 정도. 대충 먹고, 호텔 한 바퀴를 돌았다. 중간중간에 그림들이 걸려 있어서 그림 따라 걷는 게 꽤나 쏠쏠했다. 호텔의 분위기는 토바호수에서 묵었던 호텔과는 달랐다. 어느 곳이 더 좋았냐고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다 괜찮았다. 오늘도 잘 묵게 해 준 방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 차에 올라탔다. 아침 햇살이 쨍하게 들어오는 것이 오늘의 출발도 기대감을 안게 했다.


과일 시장에 들렀다. 입구 앞에는 대파가 떡하니 놓여 있었다. 형한테 여기 사람들도 대파 먹냐고 물어봤는데, 그렇다고 했다. ‘오호’ 대파뿐만 아니라 쪽파, 양파, 마늘 등 한국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원재료들이 의외로 많이 있었다. 물론 릭이나, 양파 비슷하게 생긴 놈들이 훨씬 비중이 컸지만 말이다. 채소 가게를 지나면 과일 가게가 나온다. 시장 구조가 좀 이상하게 생겼다. 지리감이 상당하지 않으면 무조건 길 잃겠더라. 시골촌놈이 부평 지하상가에서 길 잃어버렸던 게 갑자기 생각났다.


형의 여동생이 망고가 먹고 싶다고 해서, 망고를 샀다. 망고는 딱 예상했던 맛이었다. 무슨 이상한 과일을 하나 주면서 먹어 보라고 했는데, 맛있었다. 과일 이름도 모르는데 꽤나 많이 샀다. 한국 와서 찾아보니 망고스틴이었다. 인도네시아 귤에는 씨가 있어서 좀 그랬는데, 얘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가격은 관광객이니, 당연히 높을 것으로 예상했고, 형에게 차이니즈, 재패니즈를 외치는 이 아줌마에게 흥정 좀 해보라고 부탁했다. 몇 번의 흥정 끝에 꽤나 깎았다. 그래도 비쌌을 것이다. 양손 가득 들고, 몇 가지 더 사 오라는 심부름까지 깔끔하게 마친 뒤 차에 싣고 출발했다.




가기 전 화산을 보기 위해서 공원에 들렀다. 왼쪽에는 시나붕 화산(Gunung Sinabung)이 오른쪽에는 시바약 화산(Gunung Sibayak)이 보였다. 시나붕 화산은 해발 2460m의 성층화산으로 2010년 이후로 주기적으로 분화하고 있고, 특히 2016년에는 대규모 분화가 있었다. 얼마나 컸는지, 화산재가 여기서 한참 떨어진 형 동네까지 날라 왔다고 했다. 내가 보는 모습은 시나붕화산의 반쪽이었지만, 사진상 왼쪽이 화산재와 용암류에 의해 색깔이 다른 걸 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자연재해라는 게 폭우, 폭설에 요즘 간간히 지진 피해가 대부분이라서 화산에 의한 재해를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시나붕 화산이 어딘가 모르게 강렬하게 느껴졌다. 용한 무당들의 수련 장소가 영험한 기운이 느끼지는 깊은 산속이라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마 이곳도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이 발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눈에 봐도 엄청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산이었다.

KakaoTalk_20241206_070348888_20.jpg


그 반대 편에 있는 시바약 화산은 시나붕 화산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화산(2212m)으로 1881년 이후 분화가 되지 않아서, 휴화산으로 명명하고 있으나, 여전히 활발한 열수 활동으로 보아 언젠가는 터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현재 있는 공원의 위치가 시나붕 화산에 더 근접해서 그런지 몰라도, 시바약 화산이 더 작아 보였다.


시간이 있었으면, 더 가까운 곳으로 가서 시나붕 화산을 보았을 텐데, 그럴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다음에 방문하게 된다면, 시바약이나 시나붕 둘 중 하나의 화산은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시간이 걸려, 메단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한 이후 바로 토바호수로 갔기 때문에 실제로 다운타운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5번째로 큰 도시, 수마트라섬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하던데, 솔직히 말해 엄청날 줄 알았다. 살짝 실망감도 들었다. 예전 90년대 우리 동네 같았다. 실망감을 느낄 새도 없이, 즐비한 차량과 오토바이, 눈길을 뺏는 모스크들이 요깃거리가 되었다. 메단이 아무리 기독교 인구가 높아도, 이 나라는 이슬람 나라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 주었다. 화교도 있고, 일본인도 있고, 인도 사람들도 있어 정말 다양한 종교를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제 일의 종교인 이슬람 세력 아래에 힘을 잘 쓰지 못했다.


KakaoTalk_20241214_165259295.jpg


형이 사는 곳은 단지 안에 있었다. 몇 개의 단지들은 경비도 있어서 2개 내지 3개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이 안에는 학교, 골프장, 교회 등등 어지간한 시설들은 다 있었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혀 아버지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어머니는 외출 중이셨다. 오랜만에 보는 세 놈의 아들들이 반가웠다. 적응이 이렇게 빠르다니 외국 생활은 어릴수록 좋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나 보다.


옆집이 비어있어서 안내해 주셨다. 가는 날 동안 여기서 지내게 될 예정이라, 살짝 부담도 되었지만, 부담을 느끼게 전혀 안 주셔서 감사했다. 미국 외삼촌 집에서 경험했던 2층 대저택의 집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니 신기했다.




한국인들이 거의 없는 이 메단에서 한국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도착 후 지금까지 꽤나 먼 거리를 여행하면서 이국적이고, 낯선 경험들은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딘가 모르게 피곤함도 있었는데, 여기 와서 그런 게 사라졌다.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보다 더 한국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먼 타지에서의 고생함도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외삼촌도 참 고생하셨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듣고 경험하지 않는 한 가늠할 수 없는 게 사람의 한계이기 때문에 자주 들어야 하고 배워야 한다.


확실히 그동안 다닌 곳이 고지대에 시원한 곳이어서 더운 줄 몰랐는데, 동남의 더위가 조금은 느껴진다. 당시 추석 때 한국의 날씨도 미쳐버린 날씨여서 적응이 된 상태였으니 다행이었다. 호텔보다 더 좋은 밤을 보낼 것 같았다. 기분 탓일까.

매거진의 이전글자연은 늘 나를 짜릿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