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는 공식이 없다

Day 8. 게으름

by 이뉴

끙끙 앓았다. 전날의 풋살이 후유증으로 남았다. 마사지샵을 오늘 갔어야 했나 싶었다.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이날 정지되었다. 럭키비키인가. 눈떠보니 애들은 벌써 학교에 가고 없었다. 집에도 사람이 없다. 형하고 나만 있었다. 둘이서 대충 밥을 먹고, 아직 완수하지 못한 미션들을 수행하러 가야 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선물을 사야 했다. 토바호수랑 브라스따기에서 몇 가지 사긴 했지만, 중요한 것들은 다운타운에 와서 사야 했다. 가장 먼저 선물로 주신 달러를 환전하러 갔다. 공항에서 미리 해둘걸 하고 후회했다. 다음 날 돈을 쓸 일이 생겨, 강제로 할 수밖에 없었다. US 달러가 구권이라나 뭐라나 제 값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손해를 감수하면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사실 공항에서 바꿀 수 있었는데, 메단 입국 심사 때 달러로 비자를 살 수 있다고 해서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입국 심사대에서 갑자기 달러 안 받는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루피아로 계산하는 바람에 달러가 아직까지 지갑에 있던 것이었다. 조금만 더 알아보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MBTI의 P의 표준 모델과 ‘어떻게 되겠지’하는 게으름이 이 사태를 만들었다.


몇 만 원의 손해를 보고 환전소를 나왔다. 가게를 살짝 째려보며, 다시 차에 올랐다. 바틱 옷을 사야 했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맘에 드는 것을 샀다. 여러 가게를 돌다 보니 느낀 점은 바틱이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면 볼수록 맘에 든다고 해야 할까. 여윳돈이 있었으면 내 옷도 몇 개 더 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혹여나 나중에 방문하게 되면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한국의 더위도 여기 못지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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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부터 인스타 릴스에 올라오던 메단의 한국 음식점이 있어서 형하고 들렀다. 형 하고는 이미 아는 사이라, 반갑게 맞아 주셨다. 홀은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우리가 매장에 방문했을 때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음식을 주문하고 적당한 시간이 지나니 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방문하고 있었다. 형네 집에서도 한식을 먹었지만, 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먹으려니 몹시 설렜다. 이 나라에 맞게 개량된 점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의 맛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애쓰신 노력이 잘 담겼더라. 많은 양을 시켰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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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알이 베긴 다리는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침대에 눕고, 책상에 앉기를 반복했다. 사진도 편집하고, 글도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내일모레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정리의 시간을 가졌다. 국내의 많은 곳과 미국, 일본 등과 인도네시아까지.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여행은 절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계획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변수까지 예상해서 계획을 하는 치밀함을 가진 분들도 있다. 저주는 아니다만, 계획대로 되는 것도 재미는 없다. 여행이란 변수 투성이며, 특별한 공식도 없기 때문이다.

게으른 사람은 게으름으로 인해 변수가 발생할 것이다. 꼼꼼하고 부지런한 사람은 그 나름대로의 성품으로 인해 변수가 생길 것이다. 어떤 성품을 가진 사람도 여행 앞에서는 변수를 만나게 되어 있다. 준비를 아무리 철저히 해도 그렇더라. 그래서 나는 첫 해외여행 이후로는 특별히 무엇인가를 하려 하지 않는다. 분주하면 불안함을 느끼듯이, 매번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그렇게 되지 않는 나를 보며 반성한다. 이번 여행도 결국 이렇게 마무리되겠지만, 내 소신대로 여행하는 것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좋은 여행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인생도 비슷하다. 한 번뿐인 삶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는 인간의 실존은 거대한 포식자를 만난 어느 한 동물과 같다. 늘 불안하다. 철저히 감시하고 경계를 해도 포식자들의 사나운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인생이라고 뭐 별 다른 것이 있겠는가. 어두운 과거, 불안한 미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노력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우리의 매일이다. 어느 하루들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게 된다. 또 어느 하루들은 도저히 일어나면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 나를 고통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365일 중 내 뜻 대로 되는 날이 얼마나 있는지 한 번 세어 보시길 바란다.

당신의 하루는 어땠는가. 혹시 몹시도 꼬여 머리를 쥐어뜯는 하루였는가. 걱정할 필요 없다. 오늘의 꼬임은 한 번의 회전일 뿐이다. 내일 꼬여진 방향대로 살아도 되고, 반대로 다시 돌이켜 놓아도 된다. 인생에, 여행에 공식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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