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갈 뻔했다 - Day 9. 흥분됨
메단을 여행하면서 오늘이 가장 중요한 날일 것이다. 사실 오늘 써 내려가는 이 글에 등장하는 이 일은 계획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형 아버지께서 관여하고 계시는 메단의 고아원들 소식을 듣고 마음이 좀 동해서 했을 뿐이다.
정확한 지역 이름은 잘 모른다. 며칠 전부터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달러도 바꾸고 형 어머니께 음식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느 고아원으로 가야 할지를 정했다. 그래서 방문하게 된 곳이 다음 사진에 나와 있는 곳이다.
이것저것 물어봤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난 다음에 쓰려고 하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핸드폰에다가 메모라도 해 놨어야 했는데, 내 실수다. 예전에 그러니까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특수사역이라고 이런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고아원보다는 주로 장애인 친구들을 만났다. 그때 처음 출근하는 날 들었던 기분이 차를 타고 가면서 느꼈다. 설렘 반 그리고 걱정 반. 여기는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사소한 반응이나 표정들이 금방이라도 들킬 것만 같았다. 대충 정보는 듣고 가기는 했지만, 말 그래도 대충일 뿐, 나는 이 지역 고아원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오늘까지 메단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낙후된 지역을 지나가고 있었다. 오히려 토바호수의 꼭대기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그래 보였다. 듣기로는, 이슬람권에서 사람 취급을 안 한다고 들었다.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하지만 일리 있는 말이었다. 돼지를 기르거나 하는 일들은 그 종교의 율법상 터부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을 통과해 철문 앞에 도착했다. 우리말로 원장님이라고 해야 하나. 운영하시는 현지 목사님이 나와 계셨다. 한 애기도 나와 있었다. 철문을 열어주시고, 우리 차는 좁은 길을 통과해 마당에 차를 대었다.
아이들이 수십 명이 나왔다. 더러 성인들도 있었는데, 여기 출신 사역자들이라고 했다. 다시 돌아와 이곳에서 섬긴다는 게 이슬람권에서 쉽지 않은 일인데, 정말 멋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여기는 종교를 바꿀 수밖에 없는 나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기에 매우 불편한 나라이다. 외국인들이야 그런 상황이 덜 오겠지만, 현지인들에게 개종의 순간은 매 분 매 초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선택을 하다니. 몸 담았던 곳에서 도망치듯 나와 이렇게 살고 있는 나를 생각하니 매우 부끄러워졌다.
중앙 홀로 들어갔다. 이 건문을 올리기 위해 많이 애썼다는 형 아버지의 말과 함께 아이들과 섬기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셨다.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 느낌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환영의 의미로 찬양을 불러주고, 준비해 온 식사와 몇 가지 물품, 얼마 되지 않는 헌금을 드리고 왔다. 오늘 이후로 내가 돈을 쓸 필요가 없어서 거의 모든 돈을 다 드리고 왔다.
기념사진 찍자는 데 솔직히 찍기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일회성인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마음은 지속적인 후원을 하고 싶었지만, 돌아갈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나도 퍽퍽한 지라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찍기 싫었다. 강제로 끌려 나오듯 찍힌 사진은 덕분에 인도네시아에서 찍고 찍힌 사진 중 가장 좋은 사진이 되었다.
하마터면 돌아갈 뻔했다. 여기에서도 감신 출신 선배 목사님도 만났고, 여럿 현지 목사님들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이 하고 계시는 사역들을 보면서 나도 잠시나마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특수사역을 했던 그때로, 다 버리고 제주로 떠났던 그때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나, 얼른 내 뺨을 때려 정신을 차렸다. 이상하게 흥분되었던 마음이 얼얼함과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돌아와 학교 선배님이자 선교사로 활동하고 계시는 한인 교회 목사님 댁에서 형 가족들과 함께 저녁에 바비큐 파티를 했다. 먹는 게 먹는 것이 아니었다. 건너편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충성스러운 이슬람 사원의 예배 소리와 맞은편 화교들이 그렇게 찾는다는 제비집을 보면서 빤띠 아수한(Panti Asuhan)이 막 겹쳐졌다. 커다란 달빛과 듬성듬성 보이는 반딧불이, 바비큐에서 피어오르는 희뿌연 연기까지 낭만적인 때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어떤 일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몹시 동요될 때가 있다. 그래서 전투력도 올라가고,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그것이 다 감정이 시키는 일이다. 감정적인 행동은 필연, 대가를 치루 게 되어 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시작하는 일은 정말 위험하다. 그런 의미로 사역을 포기했던 내가 다시 사역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큰일 날 일이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혹을 떼려 온 이곳에서 혹을 더 붙이고 온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