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보다 최선으로
이 글이 프롤로그라고 생각하시면 좋겠다. 현재까지가 인생의 전부라고 가정했을 때, 모든 사람은 몇 번의 선택의 기회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선택의 순간마다 성숙한 선택을 하여 쉽고 빠르게 나아간 경험도 있을 것이고, 미숙한 선택을 하여 돌아간 일도 있을 것이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다. 성숙한 선택은 그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고, 미숙한 선택은 지불한 값만큼이나 얻어가는 것이 많을 테니 그 역시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다. 그러나 조건이 붙어야 이 명제들이 참이 된다. 그 조건은 가치관이 있는 사람, 꿈이 있는 사람, 목표가 있는 사람이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미숙한 선택을 했을 시 피드백을 할 수 없다. 피드백을 할 수 없으면 그다음에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없게 된다. 선택의 순간, 지금 제시한 것 이상의 요소들이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다양한 방법으로 꿈을 꾸고 소양을 쌓는 수밖에.
종종 언급되었던, 제주에서의 큰 실패를 다시 한번 꺼낼 때가 되었다. 모두가 잠은 새벽, 밤새 쌓은 짐들을 끌고 나는 도망쳤다. 그때 제주 안덕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간 곳이 금릉이었다. (알고 보니 멀지 않았다. 구좌나 조천으로 갔어야 했다.) 그곳에서 죽기를 바랐으나 끝내 지금까지 살아 글이라도 끄적이고 있다. 28살, 어리다고 하기엔 어리고, 먹을 만큼 먹었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 중간의 나이에 다 버리고 제주로 갔다. 전공이 신학이었으니, 어떤 일이었을지는 짐작이 되시리라. 오만했던 열정과 덧없는 최선은 강하고 거친 성격에게는 딱 맞는 조합이었다. 활활 타오르던 불은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붙어버렸다. 나만 갉고 갈았어도 충분한데, 타인의 열정과 최선을 강요하게 되었다. 배울 만큼 배웠고, 읽은 만큼 읽은 수 천 권의 지혜들은 격양된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태어난 한 마리의 괴물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나는 이곳에서 나가야 된다. 그것 말고도 나를 괴롭히는 일은 아주 많았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 보면 그것 역시 아주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돈이 그랬다. 사명과 열정이라는 이름 하에 그래도 된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 믿음대로 잘 살았다고 자부했다. 도망치듯 나온 것은 돈 때문은 아니었다.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 때문이었다. 오만한 열정과 덧없는 최선이라고 표현했지만, 행복하게 일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지금도 그때를 떠올린다. 가장 뜨거웠고, 가장 행복했던 그 순간에서 나는 도망치듯 나왔다.
큰 이유가 격양된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웠다는 데에 있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조화되어 일을 해야 성공의 반이라도 할 텐데, 그렇지 않고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필패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하는 성공은 복권 당첨과 같다. 그래서 도망치듯 나왔다.
둘째는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었다. 예전부터 선생님께 지적받았던 부분들이 의지를 가지면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통제가 되다가도 무의식 중 은연히 나오게 되는 나의 본모습은 나조차도 흠칫 놀라게 했다. 이 일과 다른 일을 하게 되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모습들이었기에 나는 포기를 선택했다. 시간이 더 지나 나를 조금 더 인정해 주고 바라봐 주었다면, 혹시 변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분명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올라온 내 고향은 벚꽃이 만개했다. 따뜻한 봄날의 기운에 여기저기 돌아다닐 시기에 나는 깊은 무력함을 느꼈다. 죄책감, 우울함, 분노, 막막함 등등을 느끼며 여러 날을 보냈다.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잡생각들이 머릿속을 붕붕 날아다녔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났고, 삼십 후반의 나이에서 보니 그게 내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언제나 나의 선택은 최고가 아니었다. 실수도 잦았고, 잡음도 많았다. 성공의 짜릿한 맛보다는 실패의 비린 맛을 더 느꼈다. 하지만, 해가 거듭할수록 내가 해온 수많은 선택들은 연결되어 최선의 선택들이 되었다. 합리화의 단계가 아니다. 나를, 누군가를 위로하려는 게 아니다. 정말로 내가 살아온 인생은 최선의 선택들이 이어져 온 결과물이다. 배우고, 성장하고, 다시 실수하고를 반복하며 고치고 수정한 지금의 나는 최고는 아니다. 그렇지만 최선의 사람이다. 그래서 행복에 가까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