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TO. 나에게

by 이뉴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을 20대 후반에 접했다. 한참 유럽 유행을 떠나볼 심산으로 이곳저곳의 정보를 모으던 중에 체코라는 곳에 관심이 갔다. 사진에 한창 심취해 있던 터라, 비가 온 뒤 프라하의 모습을 찍은 어떤 사진 한 장 때문에 더욱 그랬다.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지만, 지금까지 못 가고 있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무튼, 그 책을 처음 읽을 때는 무슨 말인지,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서른 중반이 되었을 때, 그나마 조금 이해가 될 법했다. 나이를 더 먹어야 하는 것인지,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것인지 모르는 어떤 무지함이 이 책의 이해를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이야기는 이 책의 내용은 아니다. 그냥 제목이 멋있었을 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니.




살다 보면 참 많은 관계들을 맺고 끊는다. 심지어 그 대상이 가족이 되기도 한다. 소위 ‘손절한다’고 하는 표현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끝까지 가야만 발생한다. ‘관계의 원’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싶다. 양궁의 과녁처럼, 자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안쪽에 있는 원이다. 반대로 가장 멀리 있는 원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의 관계가 먼 사람들이다. 이 원 안에 자신만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나이를 먹고, 일하는 환경이 바뀌고, 내 생각과 가치관이 점점 더 고착화되면서부터 내 안에 있는 필터가 사람들을 걸러내기 시작한다. 거르기 시작하면 이 ‘관계의 원’ 안에 사람들을 분류한다. 하지만, 이런 분류법으로 놓기 애매한 관계들이 존재한다. 가족이거나 혹은 친구나 직장 동료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그런 사람들이 있다. 마음 같아선 손절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 내에서도 있고, 친구 중에도 있고, 직장 동료 중에도 있다. 결코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참을 수 없는 존재들이 많다. 그런 존재들의 가벼움을 보고 있자면, 나도 같이 가벼워지고 물드는 것은 같은 기분이 들어서 몹시 언짢다. 그렇다고 손절할 수 있겠는가.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그럴 수 없고, 친구는 친구라는 이유로 그럴 수 없고, 직장 동료는 같은 직장 내에서 부대끼고 일을 해야 하니 역시 그럴 수 없다. 그중에는 이미 걸러진 사람들도 많이 있다. 부정할 수 없으나, 적어도 내가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사이라는 전제하에, 그중에서도 불편하고 참을 수 없는 존재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의 가벼움은 정말이지, 말할 수 없는 그 어떤 관계만 아니었다면 바로 끊어버릴 수 있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라는 게 다 좋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를 아무런 이유 없이 싫어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도 나를 아무 이유 없이 싫어할 수도 있다. 또한 내가 한없이 참을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여겼던 사람들도 나를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반성이다.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는 사람만 만날 수 없다. 관계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호협력이다. 상호협력이라는 것은 관계를 맺고 있는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선을 넘지 않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어야 함을 말한다. 과연 지금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과거 사례들을 떠올려 보았다. 부족한 게 너무 많은 과거의 나였다. 과거 나의 스타일은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폭군 같은 성격이었다. 강력하게 밀어붙이며, 주어진 과제 내에서 맡을 역할들을 공격적으로 제시해 주고, 그로 인해 생기는 불편한 점도 기꺼이 감수했다. 엄청난 강성에 속한 사람이었다. 존중과 배려라는 원칙이 항상 2순위였고, 열정과 최선이 제1원칙이었다. 몇몇 글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열정과 최선은 오직 나에게만 적용했어야 했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는 순간 폭군이 된다. 요즘 말로는 꼰대가 된다.


이러한 문제를 나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늘 괴로웠다. 그렇다고 내가 '참을 수 없는 그들'을 '참을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참을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할 것이고, 누군가도 나를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관계 안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정말 어려움으로 가득하다. 무엇하나 쉬운 게 없으니 그야말로 진이 빠진다.


부디 여러분들은 나보다 훨씬 더 멋지고 유연한 관계들을 맺으며 나가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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