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의 야생화 박사님, 아버지의 환갑 여행기
금요일 퇴근 후, 남한 땅을 거의 정확하게 반으로 나누며 군산에서 울진으로 향했다. 얼마가지 않아 갑자기 우박같은 비가 쏟아져 자동차 천장을 뚫을 것 같다가 다시 마른 도로가 나왔다 하여 다음날의 출항을 걱정하게 했지만, 동쪽으로 향할수록 날씨는 청명함을 유지해줬다. 네 시간을 넘게 달려 어둠속에 몇몇 가게의 불빛만 깜빡이고 있는 후포항에 도착했다. 깜깜한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그리고 서해와는 또 다른 동해 항구의 진한 짠내 때문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가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왔다면 영남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으로 올라온 부모님과 동생이 합류해 울릉도 여행의 준비를 끝냈다. 육지를 떠나기 전 가장 큰 걱정은 역시나 배멀미였다. 우리 가족은 ‘멀미가 뭐예요?’ 노멀미파와 ‘여행 내내 멀미약을 홀짝거리는’ 멀미파가 극명하게 나뉜다. 중간은 없다. 다행히 조상신 덕분인지, 울릉도 여행 최적기라는 6월을 선택한 우리의 현명함 덕분인지 너무나 고요한 채로 울릉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멀미파 중 한 명인 동생은 “멀미약 안 먹었어도 됐을 것 같은데!”라며 거들먹거렸다. 하지만 곧 렌트카를 타고 꼬리를 내렸다.
“배멀미가 문제가 아니었어~ 자동차 냄새. 으으.”
두리투어 시작!
아무튼 큰 딸이 가이드하고 사위가 운전하는 ‘두리투어’가 드디어 시작됐다. 계획한 듯 아닌 듯, 바쁜 듯 여유로운 듯, 여행자의 성향을 파악하며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을 넘나드는 환상의 가이드가 이끄는 여행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울릉도는 그 자체로 환상이었다. 발이 닿는 곳 어디든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최고의 여행지였다. 딱 한 가지만 빼면.
남편은 바다를 좋아한다. 나와 아들이 놀러가고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배낭을 메고 섬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바닷가 마을로 여행을 가면 꼭 “여기서 살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그런데 울릉도 운전 하루만에 “여기서는 정말 못살겠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따져보면 그 곳은 한 면 정도가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바다를 볼 수 있는 ‘섬’인데다 그 바다라는 게 해외사진에서나 보던 코발트 블루의 투명한 바다인데! 게다가 마을마다 남편 취향의 귀여운 집들이 있는데!
나는 한풀 꺾인 남편의 바다사랑을 이때다 싶게 놀려주고 싶었지만, 옆자리에서 함께 경험한 바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울릉도 관광이 본격적인 게 도대체 언제인데 2021년인 아직까지도 이 모양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주도로는 좁고 군데군데 공사중인 곳이 많았다. 또 섬둘레에서 절벽이 아닌 조금이라도 완만한 골짜기가 있는 곳엔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마을의 골목길은 일주도로보다 더 좁아서 건물과 자동차사이의 여유가 거의 없는 정도였다. 게다가 아주 가파르기까지 해서 오른발을 조금만 잘못 놀리면 이대로 황천길, 아니 바닷길로 갈 것 같았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이라고
그래도 도로에서 눈을 돌리고 멀리 깎아지는 섬의 지형이나 푸른 바다 속을 보면 다시 감탄이 나왔다. 우리가 울릉도라고 퉁쳐서 부르는 울릉군은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해서 모두 4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라고 했다. 일주도로를 따라가면 울릉도 주변으로 크고 작게 떠있는 바위섬들을 볼 수 있는데 정말 멋졌다. 바위섬들은 거북바위, 촛대바위, 코끼리바위처럼 나름의 이름을 다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바위들은 신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기도 했다. 울릉도와 가까이 맞닿아 다리로 연결된 관음도에 오르니 삼선암이라는 세 개의 바위섬이 보였다. 이 세 바위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들이었는데, 다시 올라가야할 시간을 어겨 옥황상제가 모두 바위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작은 막내 선녀바위는 옥황상제를 가장 화나게 해서 풀도 한포기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울릉도에서 가장 핫하다는 어느 카페는 그런 울릉도의 절경을 잘 볼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이쪽을 보면 초록 봉우리가 있고 저쪽을 보면 바다에 뜬 상어지느러미 바위섬이 있었다. 이런 멋진 포토스팟에 서서도 어른들은 왠지 포즈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이 때 어른들을 리드하는 건 여행팀의 막내였다. 아들이 뒤에 있는 고릴라 조형물을 따라 포즈를 취하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따라하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 한쪽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만들면 이모가 나머지 쪽을 완성했다. 한창 자기애가 넘치는 아들덕분에 짧은 여행의 추억을 든든히 담아올 수 있었다.
야생화 박사님과 여행하려면,
사실 이번 여행은 아버지의 환갑 기념 가족 여행이었다. 해외로 갈 수는 없고, 그럼 제주도 정도를 생각하고 어디로 갈까 했더니 아버지는 ‘울릉도로 가자’고 했다. 야생화 블로거이자 재야의 야생화 박사님이신 아버지다운 선택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울릉도에서 아버지는 내 가이드 일정을 따르면서도 틈틈이 경로를 이탈해 산길을 따라 야생초 탐방을 떠났다. 그런 할아버지와 함께 다니다보니 어느새 적응한 손주는 이제는 열심히 뛰어가다가도 멈춰 뒤돌아보고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으면 잠시 기다릴 줄 알았다. 저 멀리 할아버지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면 다시 뛰어갔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구경거리를 다 보고서도 빨리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와서 자신과 함께 사진을 찍고 나면 그제서야 그 코스는 끝이 났다.
또 아들은 할아버지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쪼그려 앉아 풀을 감상했다. 줄기 하나를 꺾어 들고 다니기도 하고 알록달록 꽃이 보이면 “엄마, 휴대폰 좀.”하고 꽃을 가까이 대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초점이 맞지 않을 때도 있고, 가운데 있어야할 꽃이 구석으로 밀려나 있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정말로 할아버지만큼 잘 찍었다할 만한 사진도 있었다. 딸이 되어서 손주에게 밀릴 수 없어 “아빠, 이게 그 우산고로쇠나무지?”, “저 꽃이 등수국 아니야?”라며 아버지 취미에 관심가지는 척을 해보았지만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틀렸다. 내리사랑엔 다 이유가 있다.
인증샷 맛집, 독도
울릉도까지 갔다면 독도에 가지 않을 수 없어 우리도 다시 배를 타고 동쪽 땅끝으로 향했다. 여기서 가이드로서의 위기가 살짝 올 뻔했다. 첫발을 내리면서 가장 먼저 보인 건 외로운 그 섬, 독도의 풍경이 아니라 갈매기 똥이었다. 바닥이 온통 하얀 갈매기 똥으로 덮여 어디다 발을 디뎌야 할지 모르겠고, 하늘에는 그 똥을 싼 갈매기 무리가 또 새로운 똥을 싸려고 준비하며 날고 있었다. 결벽증이 애국심을 이기려고 하는 순간 내 손을 잡아끄는 아들과 “언제 독도를 또 와보겠냐”는 가족들의 말이 가이드의 임무를 다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마주한 독도의 풍경에서는 신기하게도 어떤 벅찬 감격보단 익숙함이 느껴졌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진과 티비를 통해 자주 봐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함께 배를 타고 간 사람들의 행렬에 이끌려 준비해간 태극기를 신나게 흔들며 독도의 여러 모습을 카메라와 눈에 담았다. 독도는 애국과 대한민국 동쪽 땅끝 두 가지를 동시에 인증할 수 있는 훌륭한 인증샷 맛집이었다.
울릉도에 3년은 있었던 것 같다.
2박 3일의 여행을 끝내고 다시 육지에 발을 딛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울릉도의 시간이 좀 느리게 가는 것 같긴 했는데 3년은 너무 과장이 심하다고 생각하다 ‘하루가 일 년 같았던 알찬 여행이라는 뜻이구나’라고 마음대로 해석했다. 섬을 한바퀴 완주하고, 언덕들을 올라갔다 내려왔다, 섬 가운데를 들어갔다 나왔다, 바닷속으로 내려갔다 올라왔다. 기분좋은 날씨와 멋진 풍경. 맛있는 음식과 사랑하는 가족들. 돌아온 일상에 힘을 보태주는 즐거운 여행이었다.
그나저나 ‘두리투어’는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