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 우리집 식탁에 핀 작은 꽃 한송이

by 녹연

┃사건의 시작┃

“아빠는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모든 것을 해석하시네요. 어찌 됐든 지방대 애들보다 성실하게 노력해서 서울대에 들어갔잖아요.” 식탁 위로 차가운 비수가 날아와 꽂혔다. 평온하던 저녁 식탁은 점점 높아지는 목소리로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평소 대화하다 보면 아들은 지금 20대 남성들이 받는 역차별에 대해 자주 불만스럽게 이야기 하곤 했다. ‘페미니즘’을 극도로 혐오하기도 하고 ‘장애인’ 아이는 차라리 낳지 않겠다는 둥 ‘생명’을 너무 경시하는 듯한 발언으로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걱정이 깊어지던 차에 이번에는 학벌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아들은 이름 없는 지방 대학은 차라리 안가는게 낫다는 주장을 하면서 서울대생들은 최고 학부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성실성을 증명했으니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지방대생들에 대한 비아냥거림을 들은 나는 참았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분명 ‘혐오와 차별’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눈앞의 청년은 지독한 서열화와 차별의 논리로 무장한 채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특히, 대학 순위에 대한 논쟁에서 갈등은 정점에 달했다. 대한민국 최고 학부인 서울대를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아들의 주장과, 국제 경쟁력 관점에서 세계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나의 논리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보수를 지향한다는 이대남 아들은 나의 이런 지적조차 ‘정치적 편향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폭풍 뒤의 정적┃

몇 차례 고성이 오간 뒤, 나는 도망치듯 샤워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줄기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부모이기에 이성적인 해결책을 고민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아들은 거실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이대로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아들에게 다시 대화를 신청했다. 그리고 세 가지를 주문했다.


첫째, 주장을 할 때는 객관적 증거와 데이터를 가지고 할 것. 둘째, 현재를 가지고 타인의 미래를 함부로 단정 짓지 말 것. 마지막으로, 혐오와 차별의 말이 가득한 사회는 결코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없으니 말을 조심하라는 점이었다. 샤워하는 사이 아들은 서울대 순위를 찾아 보았는지, 득의양양하게 자료를 내밀었다.

몇몇 평가기관의 순위를 보니 서울대가 100위 안에 있었다. 다양한 평가기관의 자료를 확인하지 않은 채 기억에 의존해 말했던 나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오류를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대화를 대충 정리하고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올 리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한 사무실에서 아들에게 긴 메시지를 적어 내려갔다. 그것은 아빠라는 이름의 권위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건네는 서툰 화해의 손길이었다.



┃먼저 내민 손┃

“사랑하는 아들아!

어제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닌데 너를 몰아세운 것 같아 미안하구나. 깜짝 놀랐을 엄마에게도 미안하고... 다만 아빠가 너를 무작정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네가 지금보다 더 뛰어나고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니 이해해 주렴.


아들아!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말과 행동을 본단다. 말의 앞뒤가 다르다거나 말과 행동이 다르면 신뢰를 얻기 힘들지. 부정, 냉소, 혐오, 차별의 언어를 쓰는 사람은 긍정, 따뜻함, 공감, 존중의 언어를 쓰는 사람보다 호감을 얻기 힘들단다.

너의 말과 행동, 말을 구성하는 단어는 곧 너의 세계이자 품격이 된다.

큰일을 하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신뢰와 호감이 없이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겠니?

어제 네가 말한 ‘정치적 편향성’도 변명을 하고 싶구나. 아빠는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단다. 보수냐? 진보냐? 좌냐? 우냐? 라는 진영 논리가 아니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하는 정치세력이 누군지 지난 40여년간 꾸준히 관찰해온 결과 가지게 된거란다.

특정 정파를 맹목적으로 따르는게 아니라 국익을 먼저 생각하는 편향성이라면, 인정해줘도 되지 않을까?

서울대에 대한 비판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곳에 가기위한 노력과 명석한 두뇌를 부정하는 게 아니란다. 다만 뛰어난 지능은 타고난 측면이 크기에, 온전히 개인의 전유물이라기보다 사회적 유산에 가깝다는 게 아빠의 생각이란다.

그 비범함이 타인을 억누르는 무기가 아니라 세상을 밝히는 등불로 쓰일 때, 비로소 그 가치가 더욱 빛나게 될 것이다.


출근 후 대학 순위를 자세히 찾아보니 30위권에서 80위권 사이로 평가하는 기관이 있더구나. 이 부분은 아빠가 잘알지 못하고 몰아붙인 실책임을 인정하며 사과하마. 하지만 연구비를 독식하면서 좋은 평가만을 위해 연구 논문의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는 풍토는 반성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빠가 어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본질은 대학 순위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 지점이었단다.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구나. 아무튼 어제의 일을 우리 부자가 조금 더 성숙해지는 계기로 삼자꾸나. 아빠도 노력하마.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내고 저녁에 웃으면서 보자.”



┃피어난 꽃 한송이┃

전송 버튼을 누르고 한참을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아들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저도 죄송했습니다, 아빠. 가장 편한 사이일수록 서로 더 아끼고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제가 아직 덜 성숙해서 편한 대로만 행동한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 더욱 존중을 담아 대화했어야 했는데, 제 방식은 존중 없는 어린아이의 주장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빠가 화를 내신 것도 이해가 갑니다. 제 말투에서 묻어나는 극단적인 표현들을 보며 얼마나 실망하고 걱정하셨을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점 정말 죄송합니다. 어린 식견으로 제 생각이 정답인 양 살아오다 보니 이런 모습으로 굳어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제의 일을 발판 삼아 조금 더 성장하고 넓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들이 되겠습니다. 항상 사랑합니다.”


아들의 메시지를 읽고나니 어두웠던 마음이 비로소 밝아졌다. 혐오와 차별이 공기처럼 떠다니는 시대라지만, 적어도 우리 집 식탁에는 이제 다른 단어들이 놓일 자리가 생겼다. 팩트 앞에서 고개를 숙인 아빠의 사과와, 자신의 오만함을 고백한 아들의 용기. 그 틈 사이로 화해라는 이름의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난 기분이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서로를 100%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맞는 말’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보다, ‘따뜻한 말’로 상대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관계의 본질임을.


오늘 저녁, 아들과 나누는 된장찌개는 어제보다 훨씬 달큰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