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나중에 온다

그날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by 거울너머

감정을 나중에 배우는 사람들 –

두 번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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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않았던 아침

그날 아침,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몸이 아팠던 것도 같고, 귀찮았던 것도 같았다.

딱히 어디가 아프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어딘가 무거웠다.


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왔다.

언성이 높았다.

“또 이래?! 학교 가야지!”


익숙한 짜증. 반복된 고함.


나는 대꾸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다.


엄마는 아무 말 없는 나에게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기고, 칫솔에 치약을 짜 건넸다.

나는 그 모든 움직임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가만히 누워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나와, 분주한 엄마.

나는 그 상황을 마치 제3자인 양, 멍하니 관찰하고 있었다.


엄마가 울었다

양말을 신기던 엄마가,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말도 없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없었다.

“나 좀 도와줘…” 같은 말도 없이

그저, 꺼이꺼이—


억지로 참고 참다가,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터져버린 울음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아무런 감정 없이 바라봤다.


'엄마가 울고 있네.'

그게 내가 떠올린 유일한 생각이었다.


죄책감도, 슬픔도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억은, 나중에 도착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 기억은 잊혔다기보단, 머릿속 어딘가에 ‘기록’만 되어 있었다.


그러다 아주 오래 지난 어느 날—

살아가던 중,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 맥락도 없이 불쑥.


나는 그 기억이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순간부터 다시 ‘감정’을 찾는 모험을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그날 기억나?”

“내가 누워만 있었고, 엄마가 울었던 날.”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사실, 그날 나는… 아무 감정이 없었어. 정말로.”


그리고 아주 한참 뒤에, 엄마가 말했다.


“그땐 정말 네 눈빛이 세상과는 동떨어진 느낌이었어.
내가 울어도, 소 닭 보듯이 보더라.
그냥… 네가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것 같았어.
혹시라도 내가 잘못 키워서 너에게 장애가 생긴 건 아닐까, 죄책감도 들었고…
그래서 기도밖에 할 수 없었어.”

그제야 감정이 도착했다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속 어디선가 무언가가 올라왔다.


그제야—

나는 ‘그날’을 비로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날의 엄마는 지쳐 있었고,

나는 그 지친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침묵하며 바라보기만 했었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장면이 아프다고 느낀다.

그게 감정이었다.

늦게 도착했지만, 분명하게.


지금, 나는 말할 수 있다

그날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금에서야, 나는 울컥한다.

지금에서야, 나는 말할 수 있다.


감정은 늦게 도착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덜하지 않았다.

늦게 도착한 감정은, 오래 머문다.


지금 나는 그날의 엄마를 생각하며 마음으로 안는다.


그 순간의 나를, 지금에서야 이해하고,

그날의 엄마를, 이제야 품는다.


감정은, 그날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끝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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