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는 일

흰 천이 덮인 아침

by AJ

아빠에게 받은 돈은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다.

길주역에서의 노숙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꽃제비 생활은 생각보다 고단했다.

잘 곳도, 씻을 곳도, 먹을 것도 없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건

먹지 못하는 일이었다.


하루 한끼도 제대로 못먹는 날이 늘어갔고

배고픔은 늘 곁에 붙어 있었다.


길바닥 생활이 길어질수록

동생의 몸은 점점 힘을 잃어갔고

엄마 등에 업혀 있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와 이모는 야위어버린 동생을 번갈아 업고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고

나는 혼자 남는 시간이 늘었다.


어느 날

엄마가 아카시아 꽃가지를 뜯어왔다.

배가 고프니 꽃잎마저도 귀한 식량이었다.


하얗게 만개한 아카시아꽃을

아무리 뜯어먹어도

배는 차지 않았다.


길주역에서의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장마당으로 구걸하러 가던 길에

우연히 고모를 만났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라며

혼자 남겨져 있는 나를 보고는

질문이 쏟아졌다.


"심아, 얘 왜 여기 혼자 있니?"

"엄마는? 엄마는 어디 갔어?"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

고모의 부른 배가 눈에 들어왔다.


고모는 잠시 나를 데려가야 하나 망설이는 듯했다.

하지만 고모네도 자식이 많았고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엄마가 데리러 오겠지..."


작게 중얼거리듯 말하더니

품에 안고 있던 보자기에서

삶은 감자 몇 알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고

그대로 떠났다.


며칠 뒤

나는 가족 모두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 무렵 꽃제비 단속이 심했던 시기였고

혼자 남은 나는

먹을 것 없나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

운 없이 단속에 걸려

역 앞 고아원으로 끌려들어갔다.


고아원 안에는 방이 수없이 많았다.

아주 작은 방 안에

열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꾸깃꾸깃 모여있었다.


나이가 어린 애들이라

일을 시키진 않

그저 가둬두었다.


밥은 하루 세 번 나왔다.

수제비 다섯 알이 둥둥 떠 있는

맑은 국물을 배식받았다.


같은 방 아이들 중 몇은

부모가 와서 데려갔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남겨진 아이들은

계속 그 방 안에 있어야 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밥을 먹고

다음 배식 시간을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있을 때였다.


낡은 문이

끼익-하고 거칠게 열리며

문 사이로

절뚝이는 발걸음 하나가 들어왔다.


외할머니였다.


가족들을 잃고

길주역에서 홀로 꽃제비 생활을 하던 외할머니가

잡혀서 같은 방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반가움은 잠시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외할머니의 몸이 성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은 퉁퉁 부어 있었고

염증이 번져

제대로 딛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옆에 앉아

가만히 발을 바라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날 밤은 혼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잠을 깊이 잤다.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우리가 다시 만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아침밥을 받아

할머니의 입가에 숟가락을 가져갔다.


"할머니, 밥 먹어. 배 안고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할머니 아파?"


어깨를 흔들었다.


"할머니."


축 늘어진 몸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숙다락을 몇 번이나 다시 갖다 댔지만

미동조차 없었다.


"할머니 자?"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사람들에게 말했다.


"할머니가 밥을 안 먹어요."


방 안으로 들어온 어른들은

잠시 할머니를 살펴보더니

돌아가셨다고 했다.


누군가 바깥에서 흰 천을 가져와

할머니 몸을 덮었다.


외할머니가 떠났다.


'돌아가셨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옆자리가 또 비었다는 것만 알았다.


이제는 혼자 남는 일이

낯설지 않았다.


다시 혼자가 되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먹고 자는 것만 반복되는

하루가 계속되었다.


작은 방 안에 아이들이 모여있었지만

아이들 특유의 밝음과 웃음소리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대부분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남은 건

나태함과 지루함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뿐이었다.


며칠 뒤였다.


방 안의 작은 창문으로

따듯한 햇살이 들어오는 날이었다.


해가 비치는 바닥에

손을 올려 보니


몽글몽글한 온기가

손바닥에 번졌다.


그 온기를

조금 더 느끼고 싶어

창문을 열고

바깥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눈 안에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가득 찼다.


동시에

눈이 찌푸려질 만큼

강렬한 햇빛이 쏟아져

눈부심에 고개를 내렸다.


창 아래에는

누군가 나무에 기대

담배를 입에 물고 서 있었다.


시선을 느낀 건지

그 사람이 고개를 들었고

눈이 마주쳤다.


창가를 올려다보는

익숙한 얼굴.


못난이 삼촌이었다.


삼촌은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진 채

내 이름을 부르며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너!....너! 심아!"


소리를 지르며

장 고아원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못난이 삼촌의 손을 잡고

고아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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