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논의》2025:문장부호. 담론

점. 공간을 만들어 마침표가 되기까지.

by Kimlab Type


00. 문장부호에 관하여 「문장부호, 특수문자와 약물」


활자공간 주최로 <활자·논의 2025:문장부호>가 지난 9월 28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B1 세마홀에서 진행되었다. <2023:세로쓰기 현재>, <2024:획>에 이어 세 번째로 마련된 담론의 장이다. 활자를 사랑하고 향유하는 이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귀중한 논의의 기회였다. 연사로는 한글 활자디자이너이며 계원예술대학교 교수이자 활자공간을 이끌고 있는 이용제, Basel Academy 교수 안진수, 세로 쓰기/세로 짜기의 저자 박지훈, 북디자이너 이기준 등 총 8명의 디자이너가 한 공간에 모여 '문장부호'란 하나의 주제로 각자의 이야기를 펼쳤다.


문장부호. 그렇다면 문장부호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문장부호란 【문장부호의 정의를 글에서 문장의 구조를 잘 드러내거나 글쓴이의 의도를 쉽게 전달하기 위하여 쓰는 여러 가지 부호. ‘.’, ‘?’, ‘!’, ‘,’, ‘:’ 따위가 있다】라 정의한다. 그렇다면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특수문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궁금증은 비단 우리만의 물음이 아니다.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온라인 참여 게시판인 온라인가나다에서도 이와 관련한 질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해 국립국어원은 특수문자를 【숫자나 로마자 이외에 컴퓨터에 사용되는 문자 따위와 같이 특별한 문자. ‘+’, ‘-’, ‘( )’, ‘=’ 따위가 있다.】 라 정의한다. 이 정의들을 통해 알 수 있듯, 문장부호는 다양한 ‘부호’를, 특수문자는 특별한 ‘문자’를 지칭한다. 여기서 다시 의문이 확장된다. 그렇다면 부호는 무엇이고, 문자는 무엇인가? 부호란 【일정한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따로 정하여 쓰는 기호】라 명하며, 문자란 【문자(文字, writing system)는 언어를 기록하는 상징체계(출처 : 위키백과)】라 정의 내린다. 하지만, 여기서 특수문자는 문자와의 기능적 구조를 달리한다. 문자라는 범주에는 같은 카테고리를 공유하지만 특수문자란 의미를 만드는 본래의 문자와는 성격과 다르게 발음이 없는 기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문장부호'와 '특수문자'는 소리가 없으며 직접적인 기호성/장식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혼란을 주곤 한다.


하나의 개념을 더 추가해 보자. 그렇다면 약물이란 무엇인가? 폰트 디자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약물'이라는 용어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흔히 약물이라고 한다면 문장부호와 특수문자를 통칭하여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로 약(約)은 "약속", "물(物)"은 "것"이란 한자에서도 느껴지 듯 글자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호·기호를 약물이라 정의한다.


용어의 정의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문장부호’. 이번 《활자·논의 2025: 문장부호》에서 면밀히 검토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논의해 보겠다.





01. 살펴보기


[1부]

01. 안진수 | 점과 별 사이

02. 박지훈 | 근대활자에 보이는 동아시아의 문장부호

03. 이기준 | 문장부호 가지치기


[2부]

04. 이용제 | 한글에 어울리는 ○○○?

05. 송인우 | 특수문자 디자인을 위한 예문

06. 이정은 | 한글 폰트 코드의 발전과 현황

07. 신유림 | 한글 폰트 안에 문장부호 디자인

08. 조재훈 | 한글 폰트 사용 환경에 맞는 오픈타입 피처 찾기






02-01. 톺아보기 「안진수, 점과 별 사이」


안진수 연사는 작은 점에서 시작해 현대 활자에 이르기까지, 라틴 문장부호의 탄생과 발전 과정에 대해 탐구한다. 초기 문장부호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메샤비석(Mesha Stele)부터, 5세기부터 9세기 사이에 제작된 다양한 필사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라틴어의 단계별 발전 등 폭넓은 주제로 논의를 이어나가며, 더불어 시대 흐름에 따른 문장부호의 역할 변화, 문장부호가 작동하는 방식과 원리에 대해 설명했다.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띄어쓰기의 부재에 따른 문장부호의 중요성'이다. 초기 라틴어에서는 띄어쓰기 부재로 인해 정확한 해석과 문장의 뉘앙스를 오직 문맥에 의존해 판단해야 했다. 예를 들어 HOPEISNOWHERE.이라는 문장이 있다 가정하자.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은 이 문장에서 우리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HOPE IS NOW HERE. 두 번째는 HOPE IS NOWHERE. 띄어쓰기의 부재 하나만으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언어 환경에서, 글을 다듬고 효과적으로 낭독하는 능력(수사학(rhetoric))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필수적 기능이 되었다. 문장의 경계나 호흡을 구분해 내는 기술은 듣는 사람에게 뜻을 명확히 전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고대 로마 사회에서는 웅변술이 정치, 법정, 교육 등 공적 영역에서 핵심 도구였고, 수사학 훈련은 시민 교양의 한 축이었다.

이렇게 보면, 띄어쓰기와 문장부호의 부재는 단지 기술적 제약이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말하기와 글쓰기가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이며, 해석의 불명확성은 낭독자의 역할을 강조했고, 수사적 역량이 없는 낭독은 전달력을 잃기 십상이었다. 그렇기에 띄어쓰기와 문장부호의 부재는 한 시대의 문화를 형성하고 예술에도 깊은 영향을 남겼다.


그렇다면 현재 '언어'에서 문장부호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안진수 연사는 이 질문을 '사회적 확장'이라는 주제로 이어, '독일어 속 문장부호의 사용'에서 논의를 전개했다. 독일어는 남성 명사, 여성 명사, 중성 명사를 구분하여 쓰는 언어이다. 특히 여성 명사 체계는 남성 명사에 여성 어미를 결합하는 방식을 취한다. Schülerin(여성 학생)을 그 예시로 들어보자. Schülerin은 남성 명사인 Schüler(남성 학생 또는 학생)에 여성 어미 -in을 결합하여 만들어진다.

항간에서는 이런 남성 명사에 여성 어미를 결합한 형태가 남성 중심 사회를 대변하는 단적인 예가 아니냐는 비판이 존재한다. 특히 직업명과 같이 사회적 진출을 나타내는 부분에서 기본형이 남성 명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평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대 사화에서, 문장부호는 이러한 언어 구조 속 사회적 의미를 조정하거나 확장하는 장치로 활용된다.


1. Genderstern (아스테리크스(작은 별), Gender Star, 젠더별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형태로, 단어의 어미에 별표를 추가하여 남성과 여성뿐만 아니라 비이진 성별도 포함하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Student*in은 모든 성별을 포괄하는 학생을 의미한다. 이 방식은 특히 대학과 공공기관에서 채택되고 있으며, Duden 사전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실무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


2. Binnen-I (내부 대문자 I)

단어의 어미에 대문자 I를 삽입하여 남성과 여성을 모두 포함하는 형태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LehrerInnen은 남성과 여성 교사를 모두 포함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비이진 성별을 충분히 포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3. Gendergap (젠더 갭)

단어와 어미 사이에 밑줄(_)을 삽입하여 성별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Student_in은 학생을 의미하며, 남성과 여성뿐만 아니라 비이진 성별도 포함하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이 방식은 Genderstern과 유사하지만, 시각적으로 더 간결하게 표현된다.


4. Gender Doppelpunkt (젠더 콜론)

단어와 어미 사이에 콜론(:)을 삽입하여 성별을 구분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Student:in은 학생을 의미하며, 남성과 여성뿐만 아니라 비이진 성별도 포함하려는 의도를 나타낸다. 이 방식은 최근 몇 년간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공공기관과 일부 언론에서 사용되고 있다.


독일어에서 문장부호는 단순한 문법적 기호를 넘어, 성평등과 포용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성별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02-02. 톺아보기 「이용제, 한글에 어울리는 ○○○?」


2부의 문을 연 이용제 연사의 '한글에 어울리는 ○○○?'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만, 내가 감히 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신 그가 현재 제작 중인 폰트에 대해 짧은 감성평을 남기고자 한다.


천명(天命)

출처 : https://leeyongje.com/theme/basic/shop/written_detail.php?it_gubun1=&it_id=52



그 주인공은 '천명'이다. 천명은 1969년 출판된 ‘한글 한자 펜글씨 모범 교본’(홍석현 엮음. 삼진출판사)에 있는 글씨체를 보고 그렸다고 한다. 이 서체의 모태가 된 글씨는 정형화된 궁체가 아니라, 글씨를 많이 써온 사람의 손끝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일상의 글씨, 이른바 ‘*달필’의 글씨라 할 수 있다.


이번 활자논의에서 이 폰트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첫인상은 '참 생경하다'였다. 세로쓰기와 가로쓰기를 동시에 적용한 점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도 반흘림에 가까운 뼈대를 지니면서도 정자체의 기본 필법을 함께 담아낸 점이 놀라웠다.(달필을 보고 기획된 글자란 것을 알면서도)


또 다른 버전에서는 진흘림에 형태(고)도 취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가독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진흘림의 형태를 차용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진흘림에서는 '다'와'나'의 구분이 어렵고, 현대의 'ㅏ' 형태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 하나 눈길을 끈 특징은 '아점(곁줄기)'의 방향성이다. 단편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종성이 있는 글자는 상승하고, 종성이 없이 초성과 중성으로만 이루어진 민글자는 하강하며, 다음 오는 글자와 이어져서 쓸 때는 수평을 유지하는 듯하다.

필자는 약 5년간 서예를 배웠고, 지금도 계속 수련 중이다. 서예라는 학문을 접하는 동안, 늘 비슷한 고민들을 품어왔다. 옛 궁체나 그와 비슷한 서체를 원도로 차용해서 글자를 기획할 때 어느 정도까지 충실히 반영해야 하는지, 각각의 서체들의 특징을 혼용해도 되는지, 나아가 서예에서 ‘틀린 필법’이라 지적되는 방식이 심미적으로 아름답게 보인다면 그것을 활자 제작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들이었다.

이용제 연사에게 직접 물어 해답을 찾은 건 아니지만, 이번 활자논의에서의 '천명'을 보며 내 미궁에 조금의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 달필 : 능숙하고 막힘없는 필법 또는 그런 사람

** 참고글 : 명필, 달필, 능필의 의미와 차이






03. 글을 마무리하며 「사견」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서예'라고 답할 것이다. 2020년, 궁체에 흥미를 느끼고 그 본질을 깨우치고자 홀로 끙끙대던 시기가 있었다. 근본을 혼자 터득하기엔 미물(微物)에 불과했던 난, '이대론 안돼!'를 외치며 서예원을 찾아갔다. 그 선택이 이어져 지금까지 서예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서예는 점에서 시작해 획을 이루고, 마침내 글자를 완성한다. 붓이 머무는 시간과 높낮이, 압에 따라 농담이 달라지고, 그 변화는 획의 굵기와 인상에 그대로 드러난다. 글자 속에 시간을 담아내며, 마침내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점이 모여 공간을 이루고, 획이 끝나는 순간 글자는 비로소 하나의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점. 문장부호가 될 수도, 글자의 시작이 될 수도, 혹은 단순한 동그라미일 수도 있다. 이번 활자논의를 통해 나는 이 작디작은 '점'에 대해 생각해 보며 다시금 점이 품은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모두가 점을 찍고 획을 그어 마침표를 완성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사견을 마무리한다.


점. 공간을 만들어 마침표가 되기까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