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으니 먼저 영화를 감상하신 후 읽어주세요
해가 쨍쨍한 대낮, 파도가 치는 모래사장에서 양동이로 스스로를 수장하는 굳은 결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굽이굽이 험한 산을 넘어 남편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려는 그 생각은 또 어디서 나온 걸까?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며 마음을 이어 가는 그 인연은 무엇일까?
영화를 보고 난 뒤,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꼬리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가늠이 안됐습니다. 의미를 붙잡고 정의하려 애썼지만, 정의는 끝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마음 깊숙이 가라앉은 여운과 울림뿐이었죠. 그래서 저 또한 마음을 먹고 <헤어질 결심>을 작업으로 남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글은 초기 스케치부터 1차·2차 작업 과정을 담고 있으며, 개인적인 영화 해석 또한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자와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편하게 감상해 주세요.
초기 스케치입니다.
글자 작업을 할 때는 보통 가로 쓰기 형태를 많이 시도하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세로 쓰기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글자들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세로 쓰기의 방식이 자연의 흐름을 닮기도, 동시에 마음의 낙차를 표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흘림체에서 보이는 특성인 연획의 형태를 차용해,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마음의 잔재를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재밌는 포인트는 이런 방식 차용함으로써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어떤 사람은 이 작업을 보고 산맥의 모양으로 해석할 수도, 파도로 볼 수도, 저처럼 끊어내진 못한 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글자에 힘을 부여하는 방법을 아시나요? 많은 분들이 보통 '획의 굵기'라고 말씀하실 테지만, 저는 '부리'에 그 힘이 깃든다고 생각합니다.(엄밀히 말하면 획의 굵기에 부리가 속하긴 하지만요) 초/중/종성의 첫 시작점에서 부리를 강하게 표현하면 의지가 느껴지는 글자를 만들 수 있다 생각해요. 그렇기에 이번 작업에서도 '부리'를 표현함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헤'의 'ㅎ'에서는 꼭지점(하늘점)을 강하게 표현한 다음, 가로획에서 최대한 왼쪽으로 길게 처리함으로써 굳은 결심을 글자에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차 완성본과 오류 잡기 스케치입니다.
저는 보통 작업을 진행할 때 '스케치(ipad) > 1차 작업(ai) > 오류 잡기(ipad) > 2차 작업(ai) -> 효과 및 합성' 순서를 따릅니다. 이번에도 같은 과정으로 진행했습니다. 스케치를 마친 후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로 1차 작업을 완료하고, 눈에 거슬리는 부분들을 아이패드로 직접 표시해 가며 확인했습니다. 예상보다 큰 오류는 발견되지 않아, 결국 ‘심’의 종성만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작업은 흘림체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흘림체 특유의 받침 ‘ㅁ’ 형태를 차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이번 작업의 핵심은 ‘부리’의 특성에 있습니다. 단순히 흘림체의 형태를 재현하기보다는, 다른 글자들에서 드러나는 부리의 힘과 방향성을 담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ㄹ’과 ‘ㅎ’, '자음의 부리'등을 참고하여 ‘ㅁ’의 구조를 새롭게 스케치했습니다. 다른 글자들과의 형태적 통일성과 인상적인 조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수정했습니다.
최종 작업물입니다.
허획과 연획이 아찔하게 흐르는 느낌, 강한 부리를 통한 결심이 잘 담긴 것 같나요? 오랜만에 머릿속을 맴돌던 상상의 이미지를 정확히 형태로 구현해 낸 작업이라, 완성 후에는 단순한 행복감을 넘어 한 단계 성장했다는 뿌듯함까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 챕터부터는 영화에 대한 저의 감상과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글자 작업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작업이 탄생하기까지의 ‘생각의 흐름’과 ‘감정의 결’을 이해하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천천히 감상해 보신다면, 작업의 맥락이 조금 더 깊이 전해질 거예요. 감사합니다.
00. 의심, 관심 그리고 헤어질 결심
‘심(心)’ 에서 비롯된 결(決).
서래의 결은 올곧았다. 옳다고는 못하지만 너무 올곧아 뻣뻣하기까지 하다. 해준을 처음 봤을 때도 해준의 결을 다 파악했다는 듯이 말간 눈동자로 그를 훑었다. 그리고 해준을 결했다.
해준도 서래를 결했을까? 끝없는 의심 속에서 그녀를 사랑해야 할지, 심판해야 할지, 아니면 영원히 헤어져야 할지... 그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그때의 해준 마음이, 그리고 그 결심의 무게가 문득 궁금해진다.
01. 해준과 서래는 왜 포장 초밥을 먹었는가
극 중 둘은 조서를 받으며 ‘시마스시’를 함께 먹는다. 해준은 말했다. 포장 초밥보단 직접 만든 초밥이 최고라고. 하지만 해준은 서래에게 포장초밥을 주문해 줬다. 그 많고 많은 음식 중에서, 초밥을.
딱 그 정도였던 사랑의 정도를 표현한 건가? 부인과 먹는 ‘진짜’ 초밥보다는 아직 서래에겐 ‘가짜’ 초밥 정도까지만 허락할 수 있다는 건가? 그들은 과연 ‘진짜’ 초밥을 먹었을까? '진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됐을까?
02. 사랑한다 말했잖아요
해준은 사랑을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서래는 해준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의 문장은 무엇이었을까? 직설적인 ‘사랑해요’라는 말만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해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서래는 해준을 속박할 수 있는 증거를 바다에 던지듯 서래 자신을, 사랑을 수장시켰다. 기꺼이 그러했다. 해준의 증거인 서래는 그렇게 영원(永遠)이 되었다. 해준의 미결로 남은 것이다.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 서래의 첫 번째 남편이 죽는 순간 서래는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서래는 해준에게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었을까? 그녀의 마지막 결정은, 어쩌면 해준의 마음속에 ‘영원의 상처’라는 이름으로 남고자 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03. 이별의 결
극 중 해준의 부인은 해준의 외도를 알고 이별을 택한다. 그들은 매 순간 결심해야 했다. 의심을 끊어내야 할 결심. 사랑해야 할 결심. 떠나야 할 결심.
결심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고, 인내해야 한다. 서래는 해준에게 이별을 선물했지만, 동시에 영원을 건넸다. 둘은 그 결심의 무게를 겸허히 함께 짊어져야 했다.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이동진 평론가가 한 말이 떠오른다. “사랑과 도덕은 함께 갈 수 없다.” 나는 늘 도덕과 사랑은 평행선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그 둘을 분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불륜과 기망을 두고 “그게 진짜 사랑일까?” 묻는다면, 늘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헤어질 결심>은 그 단호함에 균열을 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남을 죽이고, 스스로를 죽이는 마음이라면, 그 비도덕적인 사랑은 오히려 가장 순수한 사랑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덕과 사랑은 첨예하게 대립되어도 되지 않을까?
아직도 이 물음에 명쾌한 답을 내릴 순 없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서래와 해준의 사랑은 진짜였다고. 그들은 결국 ‘진짜 초밥’을 함께 먹은 사이, 그리고 영원을 결심했다고.
글자와 시선으로 해석하는 <헤어질 결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