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모티브. 현악 4중주 8번과 함께.
누구나 태어나면 이름을 갖게 된다. 이름은 값없이 주어지지만 한 존재만을 위해 사용되며, 때론 그 존재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문서에는 자신의 이름을 써서 자신이 그 문서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시하기도 한다. 이름은 곧 자기 자신이다.
독재 시대를 살았던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강요에 의해 공산당에 입당한 후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당에서 작성해 준 원고로 연설해야 했고, 각종 문서에 서명해야 했다.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문서를 읽어 보지도 않고 수 없이 서명했고, 그것은 곧바로 공식화되었다. 문서에 서명한 이름은 이미 죽은 쇼스타코비치였다. 당시 작곡했던 현악 4중주 8번은 그런 자신을 위한 레퀴엠이었다. 이 곡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이름에서 나온 D, Es, C, H(레, 미 b, 도, 시) 모티브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문서에서는 죽은 자신의 이름이 음악에서는 소리를 내며 흐느낀다. 진짜 쇼스타코비치는 음악 안에 있었다.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이름을 음악 안에 새겨 넣었듯이 나는 나의 이름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내가 애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엄마로서 자녀를 돌보고, 교사로서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며 애쓴다. 그들은 좋건 싫건 나와 함께 하면서 나에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이름이 새겨지고 있다. 아이들의 삶에 나의 모티브가 아름답게 연주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모티브가 들리는 아름다운 음악, 그렇게 아이들은 나의 음악이 된다.
https://youtu.be/-0nKJoZY64A?si=O-ypp4B0ftiqgG6S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8번은 그의 이름이 된 모티브로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악장에 그의 이름이 나온다. 1악장은 애도하듯이 그의 이름이 반복된다. 2악장의 광적인 연주는 죽음을 찾아 혈안이 된 광인의 모습 같다. 3악장은 염세적이고 비아냥거리는 느낌과 함께 허무하다. 4악장은 쾅쾅쾅 문을 두드린다. 야밤에 두들기는 문을 열어주고 같이 나간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5악장은 그의 이름과 함께 장송곡의 리듬이 나온다. 그리고 끝은 모든 악기가 제일 아랫 개방현을 길게 연주하며 끝난다. 지판을 잡을 수 없는 음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의미를 담은 것 같다.
이곡의 2악장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다. 짧은 영상으로 돌아다니는 2악장은 의미를 모른다면 열정이 가득한 곡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곡이 작곡된 의도와 의미를 안다면 소름 끼치는 악장이다. 같은 의미로 나는 교향곡 5번의 마지막 악장이 아프다. 많은 아이들이 교향곡 5번을 연주하자고 많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5번은 '우리는 의무는 기뻐하는 것이다' 외치며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