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명이와 지덕이 Jul 26. 2024

4화. 대학교 분교에 합격하다

대학입시가 가까워 오면 교회나 절에서 기도를 하면서 수험생의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다. 시날이 되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었다. 늦어서 안절부절못하는 수험생을 오토바이나 구급차에 태워서 곡예하듯이 시험장까지 나르는 광경이었다. 또한 시험장 정문과 벽에 엿이나 떡을 붙여 놓고 합격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시험날 아침 TV 뉴스에는 시험 칠 수험생의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고등학교 재학생 후배들이 시험장 정문 근처에서 수험생인 선배들의 합격을 기원하는 피켓을 들고 있거나 응원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1987년 12월 22일 대학입시는 여느 입시 한파와 같이 강추위 속에 치러야 했다. 나는 영하의 기온 속에 두꺼운 외투와 장갑으로 중무장하고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섰다. 아버지는 나를 시험장까지 자동차로 바래다주겠다고 . 아버지는 입시날에 시험장에 일찍 도착하여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출이 되기 전 바깥이 어두울 때 집에서 출발했다.


시험장은 H대학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M여고였다. H대학교는 장소가 부족해서인지 수험생들을 H대학교뿐만 아니라 H중학교와 M여고에서도 시험을 치게 했다. 시험장인 M여고의 교실도착하니 수험생이 별로 없었다. 내가 일찍 도착해서 그런 듯했다. 칠판에 적혀 있는 안내사항을 확인한 후 내 수험번호가 적혀 있는 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지나니 수험생들이 한 명씩 교실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중·고 합쳐서 12년 동안의 공부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단 하루 만의 시험으로 좌우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이 되었다. 심호흡을 하고 화장실에 가 보았다. 건물 밖에 간이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학교라서 남자화장실이 부족해서 그렇게 설치한 것 같았다.


1988년도 대입 학력고사는 9과목을 시험 봤다. 인문계, 자연계, 예체능계열에 따라 시험과목이 달랐다. 나는 자연계열을 선택했는데, 시험 친 과목들은 1교시에 국어Ⅰ, 국사, 2교시에 수학Ⅰ·Ⅱ-2, 사회Ⅰ, 3교시에 영어, 독일어, 4교시에 국민윤리, 물리Ⅰ·Ⅱ, 지구과학Ⅰ·Ⅱ이었다.


나는 시험 칠 때 긴장하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만지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교실 뒷자리에 앉아서 시험지를 보며 손가락으로 계속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으니까 감독 선생님 중 분이 다가와 나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고만 있었다.




"시험 잘 봤어?"

"아니. 그저 그렇게 봤어"


어머니는 시험을 마치고 귀가한 나에게 시험 잘 봤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다수의 수험생들이 그렇듯이 시험을 잘 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TV에서 저녁부터 방영된 학력고사 문제 해설 시간에 가채점을 해보니 점수가 별로 좋지 않아 왠지 불합격할 것만 같았다.


당시는 인터넷이 없던 때라 합격여부를 알려면 학교에 가서 대자보에 적혀 있는 합격자 명단에 수험번호와 이름이 있나를 확인하면 알 수 있었다. 만약 거리가 멀어서 학교에 가기가 어렵다면 학교에 전화로 물어봐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합격했다면 합격자 발표날에 A교수한테서 전화가 것이라고 말했다.


합격자 발표날은 12월 31일이었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A교수님한테서 연락이 없겠지. 아마도 떨어졌을 거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전 9시가 조금 지났을 때 집으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받았다. A교수한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A교수는 내가 합격했다고 말했다. 합격자 명단에 내 수험번호와 이름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미소를 짓더니 나에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뛸 듯이 기뻐야 할 텐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기분이 좀 덤덤하고 묘했다. 대학교 분교에 합격했다는 것과 학기가 시작되면 편도 두 시간 거리의 분교까지 통학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감으로 작용해서 그랬던 것이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3화. 눈치작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