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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Nov 04. 2024

12화. 과제물 베끼기

표절은 타인의 저작물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베끼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표절에 신경 쓰게 된 것은 12년 전 방송대 중문과에 입학하면서부터다. 방송대는 과제물을 방송대 홈페이지를 통해 제출하는데 학우들이 제출한 리포트의 성적을 매기기 전에 표절검사를 하고 있다.


이렇듯 즘은 컴퓨터를 활용해 리포트작성하고 인터넷상에서 제출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대학교의 경우 리포트를 제출할 때 대학교 사이트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담당교수는 대학교의 포털사이트나 이메일을 통해서 리포트 파일을 받지 리포트용지에 손글씨로 적은 문서를 받지는 않는다. 접수된 리포트는 표절검사 사이트를 사용해 검사한다. 만약 타인의 리포트를 많이 베끼면 유사도 점수가 높게 나와서 매우 낮은 점수를 받거나 때로는 0점을 받기도 한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따라서 대학교의 과제물 제출사이트와 표절검사 사이트 당연히 없었다. 과제물 채점과 표절여부 확인은 담당교수직접 리포트를 받아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1988년, 대학생 때 우리 학과(산업공학과) 학우들 대다수는 교수님이 내주는 과제물에 대해 리포트용지에 내용을 손글씨로 작성해 제출했다. 학우들이 작성한 리포트들은 교수님이 수업을 마칠 때 걷어갔다. 


간혹 작성한 리포트를 제출마감일까지 깜빡 잊고 집에서 가져오지 않아서 제출마감일이 지난 후 가져온 리포트를 학과사무실에 부탁하러 가는 학우들도 있었다. 또한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리포트 제출마감일을 너무 타이트하게 제시하여 제출한 학생수가 너무 적을 때 운 좋게 제출마감일을 연장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학우들은 리포트를 제출하지 않으면 좋지 않은 성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출마감일이 가까워졌는데도 리포트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 학우들은 베껴서라도 제출하려고 했다. 그래서 모범생 학우가 작성한 리포트를 빌린 후 급하게 손으로 베껴 제출했다.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지 않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학우도 있었다. 시간은 없고 제출은 해야 할 때 강의실에 앉아 강의  척하면서 몰래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즉, 책상 위에 리포트 용지를 올려놓고 다른 학우한테 빌린 리포트를 적당히 베낀 후 제출했다. 


다수의 학우들은 자료를 조사하여 특색 있게 리포트를 작성했다. 하지만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부 학우들은 타학우가 작성한 리포트를 빌려서 베껴 적었다. 백 퍼센트 그대로 베끼교수님의 눈으로 는 표절검사에 걸려 성적이 안 좋게 나올 것이므로 적당히 내용을 고쳐서 옮겨 적었다. 눈으로 표절여부를 확인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적게는 수십 개 많게는 수백 개나 되는 리포트를 눈으로 비교해 베꼈는지를 검사하는 것은 어려웠다. 따라서 대충 검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학우가 작성한 것을 베끼는 것은 리포트만 해당한 것은 아니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프로그램 코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우들은 타학우가 작성한 프로그램 내용을 적당히  베껴서 제출했다.



1학년 때 포트란(Fortran)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다. 수강 중에 프로그램 코딩해서 제출해야 하는 과제물이 있었다. 당시에는 집에 컴퓨터가 있는 학우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 다수의 학우들은 프로그램 코딩을 하려면 학교의 컴퓨터 실습실을 이용해야 했다.


실습실의 컴퓨터들은 윈도우즈(Windows) 환경이 아니라 도스(DOS) 환경으로서 속도가 매우 느렸다. 한글문서를 작성하려면 플로피 디스켓을 여러 번 컴퓨터 본체에 넣었다 뺐다 하는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불편했다. 문서를 인쇄하기 위한 프린터로도트프린터가 있었는데 출력속도가 느리고 소음이 컸.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는 공대생. 대학교 저학년 때의 내 모습이었다. 내 주위에는 컴퓨터를 사용할 줄 아는 학우들이 여러 명 있었다. 컴맹인 나로서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과제를 어떻게 작성할 수 있을까 고민되었다. 다행히 친한 학우 중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학우가 있었다. 


"내가 프로그램 코딩을 할 줄 모르는데 네가 짠 프로그램에서 변수명(Variable names)과 로직(Logic) 좀 수정해서 인쇄해 줄래?"


에게 부탁했다. 그는 내가 부탁한 건 별로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래. 해줄게. 그런데  걸 베껴서 제출하면 좋은 점수받기 어려울 거야"


그는 실습실의 컴퓨터 본체에 플로피디스켓을 꽂은 후 컴퓨터를 부팅했다. 컴퓨터의 까만 화면에 DOS 명령어를 키보드로 치니 복잡해 보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나타났다. 그는 영문자와 숫자들로 나열된 변수들과 프로그램 로직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로직은 마치 외계어를 보는 듯 이해하기 어려웠다.


컴맹인 나는 이렇게라도 도와주는 학우가 고마웠다. 성적은 좋지 않게 나오더라도 학점을 이수할 수만 있으면 되었다. 이렇듯 인터넷이 없고 퍼스널컴퓨터가 보급되기 전 일부 학우들은 과제물 점수를 받기 위해 타학우가 작성한 과제물을 교묘하게 베끼는 편법(?)을 써서 성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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