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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Oct 28. 2024

11화. 미대에서 수업을 듣다

대학생 때 타(他)학과의 수업을 듣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남학우들만 있는 공대 수업이 아니라 여학우들이 많은 타학과의 수업 분위기는 어떠할까. 이런 궁금증이 있었다.


1988년, H대학교 분교에는 공학관 건물이 세 개 있었다. 공대는 학과가 많고 실습실이 필요했기 때문에 건물이 세 개나 되었다. 우리 학과(산업공학과)는 대학교 정문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돌아서 도보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공학관 건물에 있었다. 그 건물에서 교양과목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수업을 들었다.


공강시간이나 점심시간 때 다른 건물을 구경하다 보면 여학우들이 많이 공부하는 건물들이 보였다. 인문계열과 예체능계열 대학 건물들이었다. 이곳을 지나치다가 가끔씩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구경했다. 그런데 건물마다 분위기달라 보였다.


문과대 건물 입구로 들어가 보니 건물 내벽의 색깔부터 달랐다. 공학관의 침침한 색깔과 달리 밝은 색으로 페인트 칠해져 있었다. 공학관에서는 여학우들이 어쩌다 한 명씩 보였는데 곳에서흔하게 보였다.


대학교 2학년 때, 1학년 때 들었던 대학영어 과목을 재수강했다. F학점 성적이 나왔던 영어과목을 이수하기 위해서였다. 대학영어는 교양필수 과목이었으므로 반드시 이수해야 했다. 수강신청을 위해서 신청기간에 학과사무실에 들렀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었으므로 수강신청 용지에 적어서 제출해야 했다.


교양과목의 경우에 여러 학과들이 함께 듣는 교양선택 과목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현대사회와 경영', '현대사회와 경제', '결혼과 가정' 등의 과목은 넓은 계단식 강의실에서 많은 학우들이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대학영어는 그렇지 않았다. 영문과 교수님들이 똑같은 교재로 여러 학과들을 맡아서 가르치고 있었다.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 목록들을 보고 있는데 공예학과가 눈에 띄었다. 수강일정표를 확인했다. 신청한다면 빈 시간에 그 학과의 1학년 대학영어를 들을 수 있었다. 왠지 미대생들과 수업을 듣는 것은 나에게 흔치 않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대학영어를 우리 학과가 아닌 공예학과에서 듣는 것으로 신청하고 수강신청을 마쳤다.


개강 후 영어수업을 듣는 날이 되었다. 공예학과가 있는 미대 건물은 공학관에서 반대편에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나가다가 미대를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미술은 관심 분야라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았다.


미대에 대해서는 입시 선발인원을 남자 50%와 여자 50%로 뽑는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또한 공예학과는 미술 조형물을 만드는 학과일 것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건물에 있는 강의실에 들어갔다. 강의실에는 예상대로 남학우와 여학우들이 여러 명 앉아 있었다. 들어갈 때 조금 머쓱했다.


'여기 있는 학우들은 내가 다른 학과 학생인지 알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니 강의실에 학우들이 절반 정도 찼고 교수님이 들어왔다. 교수님은 출석을 부르고 강의하기 시작했다. 재수강이다 보니 1학년 때와 배우는 내용이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미대 학우들 틈에서 내가 영어수업을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점은 또 있었다. 우리 학과와 달리 수업시간에 맞춰 입장하는 대다수의 학우들이 뒷자리부터 앉았다. 늦게 온 일부 학우들만 앞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옆자리에 앉아 있는 K학우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학우들이 영어를 좋아하지 않아서 뒷자리부터 앉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공예학과에서 한 학기 동안 대화한 유일한 학우였다. 나는 한 학기 동안 조용히 강의실에 들어와서 강의를 들었다. 그래서 학우들은 내가 공예학과 복학생이나 재수강생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K학우를 제외하고 다른 학우들은 모르는 사람한테 관심이 없다는 듯 나에게 한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와 대화하다 보니 그와 나이가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재수했다고 서로 편하게 부르자고 말했다. 그래서 친구가 되었고 대학영어 수업이 종강된 이후에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내가 군대에 가게 되면서 연락이 끊겼다.


한 학기 수업이 거의 끝나가고 기말고사를 볼 때가 가까워졌다. 그런데 시험장소를 확인해 보니 우리 학과 강의실에서 치르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공예과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왜 우리 학과에서 시험을 쳐야 하지?'


이때까지는 우리 학과 기준으로 성적을 매기는지 몰랐다. 시험은 상대평가이고 공예학과 학우들과 경쟁하면 나에게 유리한 성적이 나올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랐다. 대학영어 과목은 교양필수과목으로서 모든 학과들이 동일한 내용을 배우기 때문에 타학과로 수강신청해 수업을 듣더라도 원래 소속된 학과에서 시험성적을 매긴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성적표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생각보다 좋지 못한 결과에 영어는 역시 공부하기 어려운 과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미대에 가서 들은 수업은 내 대학생활의 조금은 특이했던 경험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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