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일과 생활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신조어가 우리 사회에 알려지며 통용되고 있다. 워라밸은 개인의 취향과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수평적 문화를 선호한다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중요시되고 있는 듯하다.
요즘 양질의 콘텐츠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지향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란 디지털(Digital)과 유목민(Nomad)을 합친 말로서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재택이나 원격근무를 하면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유튜브나 SNS 검색을 해보면 이러한 방식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디지털 노마드의 생활을 함으로써 워라밸을 실현하고 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업무 특성상 워라밸을 할 수 없는 직장이 우리 사회에 많이 있다. 예를 들면, 3교대 근무, 잦은 야근, 불규칙하거나 긴급한 업무 등 일상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워라밸의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나도 IT서비스 회사의 IT개발팀에 근무할 때 워라밸을 꿈꾸며 미래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는 워라밸이란 말이 없어서 시간적, 경제적인 자유를 생각했었지만 말이다.
IT개발팀은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고 야근이 비교적 적었던 IT실과는 달랐다. 처음 IT개발팀으로 근무 부서가 바뀌었을 때, 한 직장 선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근무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공공기관, 은행, 대기업 등에서 발주한 전산시스템 구축(Systen Integration)과 같은 프로젝트에 투입하게 되면 보통 늦게까지 일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IT실에서 일할 때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전산 프로그램에 잘 반영하고 관계가 원만하기만 하면 되지만, IT개발팀에서 일할 때는 제안서를 작성할 때를 제외하고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로젝트는 반드시 완료 기한이 정해져 있으므로, 일할 때 빠듯한 일정과 산출물 작성 및 구현에 대한 부담감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IT실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던 직원들이 IT개발팀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면 적응하지 못하고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 이내에 대부분 회사를 이직하거나 그만둔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대다수가 그랬다. 계열사로 파견 나가 근무하던 IT실 직원들은 2000년대 들어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며 다수가 본사로 복귀하게 되었다. 이들 중 상당수의 직원들이 IT개발팀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고 고객사로부터 수주한 다양한 전산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서 이후로 오랫동안 근무하는 직원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IT실에서 근무했을 때와는 달리 워라밸 없는 삶이 회사를 계속 다니는 데 있어서 걸림돌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 말이다.
요즘 워라밸이 강조되고 있는 사회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고용노동부만 보더라도 워라밸(일, 생활 균형) 관련 공모전과 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