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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Jul 14. 2024

2화. 고3 수험생활

우리나라에 민주화 물결이 밀려오던 1987년, 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하던 제5공화국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연초가 되자 TV에서만 보아왔던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수개월 밖에 남지 않음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고등학교는 두발과 교복 자율화가 시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었고 스포츠형 머리를 하지 않고 기르고 다녔다. 특히 성숙한 외모의 고등학생이 등하굣길에 길거리에 다니면 성인인지 청소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1987년은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 뽑는 직선제를 이룬 해였다. 6월 29일에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표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특별 선언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혼란이 나에게 별다른 관심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관심은 대학입시뿐이었다. 수개월 후면 대입 학력고사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고3 수험생이 그렇듯이 학력고사에서 어떻게 하면 점수를 올릴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하루하루가 비슷한 일상이었다. 가족여행은 생각할 수 없었다. 오전에 등교해서 지루한 학교 생활을 보냈다. 저녁에 집에서 식사를 한 후 다시 학교 자습실에서 10시 반까지 공부했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반복적이었다. '고3(高三)은 고3(苦3)'이라는 말처럼 부모님도 나의 대입 수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신경을 써주었다.


1988년 대학입시는 선지원 후시험 제도로 바뀌는 첫 해 시험이었다. 그래서 내신성적과 모의고사 성적이 중요했다. 이 성적을 기준으로 대학교에 지원서를 작성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전 해인 1987년 입시까지만 해도 선시험 후지원 제도였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본인의 학력고사 성적표를 받은 후 대학교에 지원했다. 따라서 본인이 어느 수준의 대학교를 지원해야 할지 가늠할 수 있었다.


우리 학교에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들은 정규 수업을 하다가 교육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수업 내용과 무관한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마치기도 했다. 어느 날 영어를 가르쳤던 L선생님은 수업 중에 대통령을 국민 손으로 뽑게 되었다고 흥분하며 말했다. 그는 수업시간에 정치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는 수업을 시작할 때 영어 교과서를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정치 이야기를 꺼내 했다.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랄까. 1980년대는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권위가 높았다. 선생님들은 대부분 합리적인 이유로 학생들에게 체벌했지만, 다소 비합리적인 이유로 체벌하더라도 학생들이 대들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나는 체육과 교련 수업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일부 깐깐한 체육이나 교련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기합을 주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3 수업 분위기는 달랐다. 학력고사가 얼마 안 남아서인지 고3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배려해 주었다. 영어를 가르쳤던 P선생님은 고3 학생들에게 수업시간에 떠들지만 않으면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것을 허용해 주겠다고 말했다. 


1987년 12월 22일에 치를 학력고사가 다가오는데 평범한 성적의 내가 과연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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