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과 함께 성장했다. 집에서는 잠만 잤지 눈 뜨자마자 나가서 깜깜해질 때까지 하루 종일 밖에서 놀았으니 자연의 품에서 자랐다는 말이 허언은 아닐 것이다. 제2의 엄마인 대지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놀았다.
당시 땅은 요즘 아이들에게 스마트폰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천에 널려있는 돌이나 나무 막대기를 주워다 땅에 구멍을 파거나 선을 긋는 순간 평범했던 땅은 이내 놀이터로 변했고,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할 수 있는 재생 능력이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그곳에서 할 수 있었던 놀이 들은 수 없이
많았다.
구멍만 파면 구슬치기, 납작한 돌멩이만 있으면 비석 치기, 작은 돌멩이와 나뭇가지만 있으면 땅따먹기, 하늘 사다리, 오징어포, 쥐굴 등 많은 놀이를 함에 있어서 구슬을 제외한 모든 준비물은 자연에서 제공받아 사용한 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요즘 시대가 추구하는 친환경적인 놀이 그 자체였던 셈이다.
가끔은 특별한 요리 놀이를 하기도 했는데, 버려진 고물 냄비에 물을 담아 벽돌 위에 올려놓고는 주워온 나뭇가지에 불을 지핀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는 로켓배송 보다 빠르게 바로바로 공수가 가능했다. 한 발자국만 벗어나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이름 모를 풀들을 뜯어 냄비에 넣은 후 끓여 주기만 하면 끝이다. 간혹 운수가 좋아서 구하기 힘든 빨간 벽돌을 발견한 날이면 벽돌을 곱게 갈아서 냄비에 풀어주었는데 그러면 아주 그럴싸한 고추장찌개가 뚝딱 완성되었다.
면요리를 하고 싶은 날엔 민들레 꽃줄기를 길게 잡아 뜯은 후 끝 부분을 손톱으로 삼 등분한 다음 엄지 손가락으로 끝까지 쭉 밀어주면 도르륵 세 가닥으로 갈라지는데, 이 갈라진 민들레 줄기를 물에 살짝 담그면 바로 라면 면발처럼 구불구불해진다. 그렇게 모은 민들레 줄기로 라면을 끓이며 놀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 같은 경우 다양한 쿠킹 클래스가 있어서 언제든 원하면 제대로 된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완벽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지만, 내가 어릴 땐 그딴 게있을 리 만무했기에 리얼 야생 정글의 법칙 그 자체였다. 만약 아이들에게 ‘엄마는 어릴 때 이렇게 놀았어'라고 이야기했다가는 아이들 입에서 '헐'이라는 탄식과 함께 엄마는 원시인이냐는 둥 그런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하다. 비록 놀림을 받을지언정 그래도 그 시절 얼마나 창의적이고 참신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놀았는지 '니들이 뭘 알 아'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땅이랑은 신체적 능력을 향상시키며 놀았다면 풀이랑은 감성적 예술 능력을 향상 시키며 놀았다. 바랭이라는 풀로는 우산을 만들고, 강아지풀로는 낚싯대를 만들어 물고기를 잡겠다고 개울에 담그기도 했다. 토끼풀 꽃이 한창인 6월이면 럭셔리하게 반지와 팔찌, 왕관까지 만들어 공주 부럽지 않게 한껏 치장을 했고, 노란 은행나뭇잎이 떨어질 때면 토끼를 만들어 놀기도 했다.
말이 좋아 자연 친화적으로 놀았던 것이지 이면에는 물질적으로 궁핍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 맛을 느끼며 놀고 싶을 때도 많았다. 콕 집어 말하자면 마론 인형이 그것이다. 그녀에게 직접 옷도 입혀 주고 머리도 빗겨 주고 싶었지만, 당시 그녀는 내가 가질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너무나 먼 존재였다. 결국 글래머스한 금발미녀를 뒤로하고 문방구에서 싼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었던 프린트된 납작한 종이인형을 가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녀는 비록 입체적이진 않았지만 행여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가위질을 해주었고, 함께 동봉된 일차원적인 옷과 신발, 가발, 각종 액세서리들로 그녀를 최대한 아름답게 꾸며 주며 놀았다. 얼마나 자주 스타일에 변화를 줬던지 옷을 거는 부분이 너덜너덜 해져서 나중엔 테이프로 붙이고 놀고는 했다.
마론 인형을 가지지 못한 미련이 컸던 탓일까? 나는 그녀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그대상은 바로 옥수수였다. 옥수수가 영글어갈 때쯤이면 옥수수수염도 마론인형의 부드러운 금발 머리처럼 찰랑찰랑 흩날렸다.
나는 마치 헤어디자이너가 된 것 마냥 빗과 가위를 들고 옥수수 밭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만의 미용실이 문을 열었다. 손님들의 줄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손님의 의사에 상관없이 첫 번째 손님은 단발머리로 커트를 해드렸다. 손님의 만족도를 알 방도가 없으니 미용사 스스로 결과에 꾀나 흡족해하며 다음 손님에게 이동했다.
다음 손님은 긴 머리끝에만 살짝 손질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양갈래로 땋기도 하고 삭발을 하는 등 과감하고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 보다가 실수로 손님의 머리를 더벅머리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나는 종종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노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중에 옥수수 수확할 시기가 되었을 때 엄마는 옥수수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렇듯 자연은 나에게 최고의 놀이터였던 것 같다. 자연의 품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아이들은 자연과 함께 놀기엔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핸드폰 게임이나 유튜브 영상 시청이 최고의 놀이인 요즘 아이들이 자라서 어린 시절을 떠올렸을 때 추억할 만한 놀이가 과연 있긴 한 걸까?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무겁고 아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