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생 일기] #08. 신에게는 12일이 남았습니다

by 연이
今臣戰船 尙有十二(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必死則生 必生則死(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마음이 답답하다.


4월에 있었던 국가직 9급 시험에는 말도 안 되는 점수가 나왔다. 두 달 동안 눈싸움을 하느라 공부를 못한 탓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떨어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매번 1점 2점 차이로 합격선과 가까웠는데, 이번에는 무려 합격선과 10점 차이가 났다. 실제로 합격 안정권과는 15점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연이를 짓눌렀다.


그렇게 5월이 되었다. 갑자기 듣지도 보지도 못한 '메르스'라는 병이 뉴스에 연일 보도가 되었다.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연이와는 상관없는 병이겠거니 생각했고, 금방 잡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메르스는 연이에게까지 미쳤다. 6월 중순에 있는 서울시 9급 시험이 코앞이었는데도 이 병에 대한 대대적인 보도가 멈추질 않았다. 지하철도 위험하다는 판단하에 결국 연이는 인천에서 서울까지 경인아라뱃길을 따라 시험장소까지 자전거로 가기로 했다.


시험장소에는 체온을 재는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감독관은 수험생의 체온이 유난히 높은 사람들을 선별하고 있었다. 연이는 2시간이 넘는 시간을 자전거를 타고 왔다. 당연히 땀이 범벅인 채 연이의 체온은 기계의 알람음을 울리고도 남았다. 연이는 감독관에게 자전거를 타고 와서 그렇다고 얘기를 하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연이는 자전거로 운동만 하고 말았다. 보기 좋게 서울시 9급 역시 합격선에 턱없이 부족한 아주 보잘것없는 점수로 고배의 잔을 마셨다.


이상했다. 과연 연이가 두 달 쉬는 동안 머리에서 그 오랫동안 공부한 것이 모두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정말 문제가 어려워진 것일까?


토요일 시험의 여파는 일요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그 이유는 이제 가족들도 어머니도 그만 하라고 했다. 언제까지 공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다. 연이도 눈싸움을 하는 동안 예상은 했었다. 더 이상 하면 몸도 마음도 망가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어머니, 마지막 지방직 9급 시험까지만 보겠습니다."


지방직 9급 시험까지는 12일이 남았다.

무엇을 새로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이제 연이를 믿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구라고 믿었던 그 아이들의 말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랄까? 연이는 그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 연이조차 연이를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진짜 모든 것을 내려놔야 하려나 보다.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 위해 딱딱한 간이침대에 몸을 뉘었다. 잠이 들려던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말이 있었다. 2014년 7월에 개봉한 '명랑' 영화의 이순신 장군의 대사가 기억이 났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연이에게도 아직 12일이 남아있었다. 57전 57패 완패다. 이순신 장군은 혁혁한 공을 세운 대단한 분이다. 그 위인과 연이는 체급도 다르고 레벨 차이는 상상도 못 할 정도다. 하지만, 연이는 마지막 시험에 10년 간 공부한 모든 것을 다 쏟아내고 싶었다.


그러려면 작전이 필요했다. 마지막 시험을 위한 연이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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