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Jul 05. 2021

[교행일기] #1. 두 번의 발령

발령, 그 떨림

실감이 나지 않는 연이


연이에게는 겨울 치고는 따뜻했던, 아니 마음만은 어느 겨울보다 따뜻한 12월이었다.(실제 그 겨울은 무지 추웠다.) 공시생이 바라보던 가을의 높고 끝없이 파란 하늘도 여름의 파란 잎들이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도 모두 무채색이었다. 아직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최종 합격을 했지만, 그저 사이트에서 수험번호만 찍혀 있는 것만 봤을 뿐이다. 단지 달라진 것은 무채색이었던 하늘도 나무도 겨울이 되니 정말 무채색이 되었다. 하지만, 하얀 눈에 누군가 흘린 빨간 장갑 한 짝이 연이의 마음이 돌아온 것을 알 수 있었다.


12월 셋째 주 수요일이 되자 본청에서 교육지원청 발령이 나는 정기인사 알림이 행정정보란에 떴다. 연이는 가슴은 최종 합격하던 때와는 사뭇 다르게 떨렸다. 이제 뭔가 시작이 되나 보다 했다. 각 교육지원청으로 발령을 받은 연수원에서 만난 동기들이 본청에서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그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온 동기도 있었고 신규임용 예정자 자격으로 실무수습에 투입하여 학교현장에서 직접 업무를 한 동기도 있었다. 해보고 싶었지만, 연이에게는 기회가 닿지 않았다.


그리고 3일이 흘렀을까? 다른 교육지원청은 인사 알림이 다 뜨는데, 연이가 발령받은 교육지원청에서는 뜨지 않았다. 열심히 F5를 눌러대지만 여전히 같은 페이지만 재생할 뿐이었다. 12시까지 눌러보다가 침대에 몸을 누였다.





첫 발령지가 어디일까?


그다음 날 늦은 오후 되어서야 교육지원청 사이트에 인사 알림이 떴다. 연이의 가슴이 쿵쾅쿵쾅 되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뭔가 실감이 났다. 인사알림 엑셀파일을 받고 더블클릭하여 파일을 열었다. 컨트롤과 F를 눌러 연이의 이름을 검색했다. 없다. 두 번 세 번 했는데 없다. 순간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 같았다. 5분을 멍하니 있으니 엄마가 들어왔다.


"없어. 없다고"

나지막이 계속 되뇌고 있었다.

뭐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꿈인가, 이런 걸로 놀리나. 설마?


나름 실감이 나지 않아 책상 위에 살짝 펼쳐놓아 세워 놓은 본청 발령장을 보고 현실로 정신을 잡아끌었다. 엑셀파일을 자세히 보니 두 번째 시트에 6급 이하라고 되어 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나는 9급일 테니 그 시트에서 다시 검색을 했다. 나왔다. 연이의 이름이 있다. OO초등학교


OO초등학교를 검색했다. 집하고 무려 1시간 30분이었다. 멀기도 멀었다. 그래도 내가 근무할 곳이었다. 10년간 잊고 있었고, 아마 그 이전에도 챙기지 않았던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9년 동안 실패의 고배의 잔은 내 심장과 가까이에 있었다. 고배의 씁쓸함과 진한 울컥은 침대 끝을 마르지 않고 적셨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그러하지 않았고,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 그저 내일이 오면 또 공부를 해야만 했던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제 실감이 난다. 이제 그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입는 편안한 차림이었지만 점퍼를 위에 걸치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띵~~~ 1층을 알리는 소리는 연이를 어둠이 내린 거리로 안내했다. 크리스마스의 캐럴이 진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추운 줄도 모르고 한참을 걷다가 사거리에 있는 대형 빵집으로 들어섰다. 나를 위한 축하를 위해 케이크와 샴페인을 사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양손에 쥐고 나와 집으로 향하는 거리의 분위기가 낯설었지만, 마음이 따스해졌다.


근데 연이야, 너 잘할 수 있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