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이 Jul 06. 2021

[교행일기] #2. 인증서, 시작이자 끝

인증서, 발급부터

 근무지 탐색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인데, 눈은 오지 않았다. 연이는 아침을 먹으면서 어머니께 OO초등학교에 가보자고 했다. 인천에서 20년을 넘게 살면서 발령 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이었다. OO초등학교를 지도 검색하여 버스는 몇 번을 어디서 타고 내리는지 찾았다. 두 번 갈아타는 노선은 집에서 많이 걸어야 했고, 한 번만 타는 노선은 버스로도 1시간 30분이 걸리는 아주 먼 거리에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집에서 5분 걸어 대로변으로 나가면 버스 한 번만 타면 되었고, OO초등학교 근처 정류장에서 내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눈이 오지 않은 겨울은 사람들을 뚱뚱이 로봇처럼 두꺼운 옷들로 무장하게 했다. 다들 어깨와 가슴이 보디빌더처럼 으쓱하고 다녔다. 칼바람이 중무장한 점퍼 속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10분을 기다리자 버스는 정류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알고 있던 곳이 점점 멀어지고 낯선 이름을 가진 낯선 장소로 버스는 들어섰다. 대교를 건너고 숲길을 지나 한적한 시골길 같은 곳을 지났고, 다시 상점이 보이는 아파트로 진입하기를 반복했다. 1시간이 훌쩍 지나자 속이 메슥거렸다. 두꺼운 옷에 의자 아래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은 버스 특유의 냄새가 더욱 연이의 속을 자극했다. 


아주 살짝 창문을 열려고 했지만, 무엇에 막혔는지 도통 창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버스 히터의 뜨거운 바람과 사람들의 체온으로 점점 차창은 안개가 드리운 길을 걸어가듯 뿌옇게 시야를 가렸다. 크리스마스인데도 버스 안은 사람들이 몰박듯 서있었고, 차의 가속과 감속에 그들의 움직임도 동일하게 같이 흔들렸다. 내릴 시간이 다가오자 눈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무리였다. 청각에 온신경을 다해 집중해서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 정류소는 OO초등학교입니다.'




인증서를 위한 신청서, 사인하세요.


버스 뒷문이 열리자 차가운 바람에 눈을 뜨기 힘들었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OO초등학교는 정말 지도에서 검색했을 때처럼 버스정류장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있었다.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주위에 있는 아파트를 둘러보았다. '사람 사는 곳이네.' 바보 같은 혼잣말이 나왔다. 연이는 어머니랑 닫힌 교문 돌기둥 박혀있는 학교 현판을 바라보았다. OO초등학교. 맞다. 연이가 근무할 곳이다. 어머니는 그 현판에 손이 닿았을 때의 차가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만지고 또 만졌다. 연이도 그 현판 너머의 학교를 바라보았다. 저 어디쯤 자신이 근무할 곳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저 감사했다.


28일 월요일이 되었고, 교육지원청으로 발령장을 받으러 갔다. 두 번의 발령의 마지막 순서였다. 신규임용자들 차례가 왔다. 모두 단상 위로 올라오라는데, 본청에서 봤던 연수원 동기들이 하나 둘 호명대로 자리를 잡았다. 교육장이 발령장을 손수 하나하나 나누어주면서 악수를 청했다. 어색하게 발령장을 받아 들고 고개를 숙여 악수에 응했다. 


"좋은 학교에 가는군요. 열심히 해주세요."

(좋은 학교인지 아닌지 연이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후에 다른 의미로 그 학교는 연이에게 좋은 의미가 되었다. )


다른 동기들과 다르게 연이에게만 그런 말을 하고 지나갔다. 단상에서 내려오는데 연이를 잡는 분이 있었다. 

"OO초등학교 발령받으셨죠? 저는 OO초등학교에서 △△초등학교 발령받았어요. 끝나면 저랑 OO초등학교에 가시죠."


그렇게 교육지원청에서 그분을 따라 크리스마스 때 가보았던 OO초등학교로 들어섰다. 교문으로 가로막혀있던 학교는 학생들의 소리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행정실은 교문에서 보이는 곳에 있었다. 들어서자 연이를 반기는 사람들이 중앙에 위치한 탁자로 모였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눴고, 탁자 위로 종이 한 장이 올라왔다.(사실 이때 무엇에 사인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후에 그게 무엇인지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증서 발급을 위한 신청서

말이 어려웠다. 읽어보아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교육행정전자서명 인증서 신청서.

인증서? 뱅킹 인증서는 집에 있는데, 이것은 뭐지 하는 생각에 연이는 입을 떼려다 빈칸을 채우고 마지막 서명을 하고 복사본을 건네받았다. 다른 학교로 발령받아 가는 연이를 데려온 분과 인증서 신청서를 내민 분은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연이에게도 물었다.


"인수인계는 언제 받으실 거예요?"

연이는 인수인계란 말이 낯설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뭇한 사이, 다른 학교로 발령받아 가는 분이 1월 1일에 나와 주겠다고 했다. 그때 하자고 했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연이는 잘 모르는데 알아서 정해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대화가 조금 더 이어지다가 1월 4일에 보자고 했다.


행정실 문을 나오는데 그 떨림과 부담감은 이전의 숱한 알바와는 다른 분위기를 몰고 왔다. 연이는 마지막 말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인증서를 꼭 USB에 담아오라는 말이었다. 꼭.



며칠 후 메일이 도착했다. 연이는 잊지 않으려 중요메일로 지정을 했다. 

인증서 발급 사이트


열고 타고 들어간 사이트에서 꼼꼼히 읽고 따라 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USB에 인증서를 담을 수 있었다. 이 인증서를 어디에서 쓸까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이제 일원이 되어가는 기분은 틀림없었다.


연이야, 근데 말이지. 아까 너 쫀 거 아니지? 잘할 수 있어. 이제까지 그래 왔듯.







이전 01화 [교행일기] #1. 두 번의 발령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