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행일기 시즌4-1. 난 누구?
난 누구?
"전에 있던 주무관님은 이렇게 해줬는데, 왜 안 된다는 거예요?"
연이는 멍해졌다. 무얼 말하는지 행정실에 아침부터 들이닥친 이 상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연이가 뭔가 하지 않았다는 건데 그게 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뭔가 말을 하려고 하면 쏘아붙이는 입이 그저 글자들이 나오는 만화 속 한 장면처럼 생경하기만 했다.
"주무관님! 듣고 있어요?"
한참을 설명을 하고 연이의 반응을 지켜보던 선생님은 연이의 입을 쫓고 있었다.
"그게, 선생님! 사실 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선생님의 표정이 벙찌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 연이를 바라봤다. 사실 연이는 예산이 어떻고 품의가 어떻고 지금 무얼 말하고 있는지 몰랐다. 한참을 그렇게 선생님은 설명에 또 설명을 하며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연이의 귀에는 외국어처럼 들리는 몇 개의 단어만으로는 선생님이 원하는 것을 해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연이의 얼굴은 못 알아듣는 말로 얼굴이 빨개졌다. 그때 행정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차석주무관님이었다. 선생님은 연이에서 차석주무관님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신이 연이에게 쏟아낸 말들을 하며 답답하다는 듯 자신을 알아달라는 듯 선생님은 발까지 동동 굴렀다.
"연구부 예산이 마이너스 났다는 거죠? 그럼 과목경정을 하면 되겠네요. 일단 1월 1일 자로 실장님이 바뀌어서 지출까지 나갔을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 혹시 쪽지 못 보셨어요? 실장님 바뀌니 품의를 새로운 실장님 오면 그때 해달라고 하셨을 텐데. 결재까지 난 상황이라 전에 있던 OO주무관님이 지출까지 바쁘게 하고 간 거예요."
오히려 뭔가 선생님이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사실 연이는 안 된다고 한 게 아니라 뭔지 몰라서 듣고만 있었고, 어떻게 할 줄 몰라서 고개만 저었을 뿐인데, 그게 안 된다고 한 줄 알았나 보다.
그렇게 차석주무관님과 얘기를 마친 선생님은 여하튼 자신의 목적을 달성이 되었는지 행정실 문을 빠져나갔다.
"죄송합니다."
연이는 아침에 오자마자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한 마음에 꾸벅 차석주무관님에게 인사를 했다.
"연이 주무관님! 잠시만 와 볼래요?"
차가운 목소리였다.
"연이 주무관님이 모르는 게 있으면 일단 "제가 알아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하고 선생님을 돌려보냈어야 했어요. 그렇게 듣고 있으면서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저으면 선생님은 행정실의 신뢰를 의심하게 되죠. 아셨죠?"
맞다. 연이가 근무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사실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의 민원을 대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선생님의 혼신을 담은 열변에 넋이 나가 사실 차석주무관님의 말이 반만 들어오고 반은 허공에 흩어졌다. 허공에 흩어진 말들을 주어 담기도 전에 자리로 돌아가버린 차석주무관님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연이야, 연이야!'
마음 한 곳에서 자꾸 연이에게 정신 차리라며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알아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세 번을 외치고 자리에 앉았다.
난 누구인가? 바보인가?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4"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시즌 3(연이의 기억) 달리 시즌 4(연이의 시련)는 연이가 겪는 마음의 시련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