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20
필수불가결한 '감기'
40일 만에 글을 쓸 만한 여유가 생겼을까?
한 달하고 10일이라는 시간 동안 30일은 연말과 회계말에 몰아치는 교육행정직이라는 업무의 압박감이 도통 마음의 여유를 주지 못했다. 꾸역꾸역 글을 발행할 수 있었겠지만, 그리 되면 글을 쓰는 '연이'는 글의 바쁨과 피폐해져 가는 심신의 방랑을 고스란히 글로 옮겼을 것이고, 글을 읽는 무수한 익명의 독자들은 그저 연이의 징징거림에 지쳐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온전한 여유로움이,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따사로움이 아마도 그 글에서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30일간의 회계말 업무에 지친 연이는 그대로 감기에 걸려버렸다. 코로나조차 범접하지 못했는데, 감기에 무너졌다. 처음에는 코로나를 의심했었다. 잦은 설사와 복통, 허리통증이 동반한 열이 올랐었는데, 그건 단지 독감도 아닌 아주 심한 감기가 걸리기 전의 전조증상이었다.
잘 걸리지 않는 체질의 연이는 5년에 한 번, 또는 10년에 한 번, 죽을 만큼의 심한 감기가 걸려왔다.
지나간다는 것을 알지만....
어디에서 있었는지도 모를 진한 노란 콧물이 오른쪽 코에서 쉴 새 없이 나오고, 목소리까지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10일간의 감기의 끝자락이 지금이다. 완전히 다 나은 것은 아니지만, 감기의 끝자락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뭔가 있다가 없어지는 그 느낌. 하늘하늘하고 몸이 노곤노곤하고 햇살을 따사로운 평상에서 누워 살랑이는 바람을 맞는 기분. 좋은 기분이다.
'감기'가 아니면 아주 보통의 삶의 완전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한다. 정상적인 체력으로 자그마한 스트레스에 몸부림치던 그 작디작은 불평과 불만이 얼마나 티끌과 같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 5년에 한 번이나 10년에 한 번 그렇게 큰 파도가 지나가면 한 단계 성장하고 성숙해진 마음의 깊이를 얻는다. 어쩌면 감기는 필수불가결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마음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마음의 단단함을 커지고 100년을 이겨낸 큰나무처럼 혹독한 겨울의 한기와 여름의 뙤약볕을 봄바람의 한들거림에 햇살의 따사로움으로 전해주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