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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ul 21. 2024

[교행일기] #149. 오즈의 성

교행일기 시즌4-9. 오즈의 성

오즈의 성


밤이 싫었다. 혼자인 것도, 어둠이 깔리고 만물의 소리가 작아지는 시점이 되면 스멀스멀 낮시간 동안 꽁꽁 감추었던 연이의 본모습이 말을 걸어왔다. 그런 모습은 싫었다. 가여웠다. 연이의 모습은 일그러져 있었다. 낮시간동안의 활기찬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한없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몰랐다. 눈이 많이 내렸던 2년이란 시간 동안 연이는 자신의 본모습이 일그러져 가는 줄은......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은 남쪽 지방으로 어쩌다 오게 된 연이는 북쪽 지방의 눈 내린 그때를 서서히 지워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고 서서히 녹자, 연이의 본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드러난 모습은 처참했고, 감추고 싶었다. 그동안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지내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음에는 하나 둘 드러나는 상처들이 연이가 마주하기에는 버거웠다.


그래서 밤이 되면 그 모습을 보기 싫어 일찍 잠이 들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날이 많았고, 그럴 때면 마음속 우물이 넘쳐흘렀다. 흘러내린 눈물 속에서 허수아비를 보고, 양철나무꾼을 만나고, 겁쟁이사자와 얘기를 나누고, 도로시의 따사로움을 받았다.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도로시의 행방을 쫓아 노란색 보도블록을 따라가다 보니 막다른 곳에 왔다. 분명 느낌으로는 오즈의 성이 앞에 있을 것 같은데, 칠흑 같은 어둠만 눈에 보일 뿐이었다. 노란색 보도블록은 더 이상 없었다. 


연이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 자리에 앉았다. 눈을 감았다. 이상한 나라에 온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벌써 8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을 돌아봤다. 처음 들어왔을 때 어려움, 그 어려움을 견디게 해 준 많은 친구들.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된 지금. 

 

'내가 가방을 메고 있었나?'

연이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가방을 메고 있었는 줄 몰랐다. 그저 묵묵히 걷는 것만 생각하고 마음이 아린 생각에 빠져 자신에게 있는 그 무엇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러고 있었다. 바보같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늘 연이는 생각했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도.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두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그러기에도 시간은 모자라다.'

그래.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ABOUT "교행, 학교다녀오겠습니다 시즌 4"

연이가 교행직 합격 후 행정실에서 근무하면서 겪는 또는 겪을 만한 일을 '수필형 소설'로 작성한 글이다. 시즌 1(연이의 경험), 시즌 2(연이의 마음), 시즌 3(연이의 기억) 달리 시즌 4(연이의 시련)는 연이가 겪는 마음의 시련을 생생하게 전달하여 교행직을 그저 워라벨을 위해 들어오려는 공시생들과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대한 궁금한 일반인에게 조금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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