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웠던 장소와 친구들, 그리고 추억
(2025년 7월 24일 (목) 일기. 종이 작성 2025년 8월 4일 (월). 온라인 작성 2025년 8월 15일 (금))
도쿄 2일차. 어제는 밤늦게 일본에 도착한 관계로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될 것을 기대한다.
간밤에는 에어컨이 너무 세서 추위에 떨며 숙면을 취하지 못한 채, 평소 출퇴근 습관으로 아침 7시경에 일어났다. 식구들은 아직 꿈나라인 채, 홀로 조용히 볼륨을 낮추고 TV를 본다. 오랜만에 시청하는 일본 방송이 반갑다.
어제, 오늘 뉴스를 보니 최근 일본에서는 이시바 총리에 대한 퇴진 압박이 거세지는 것 같다. 어느 나라든 최근에는 비슷한 양상인 듯 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본에서는 최근 급등한 물가로 인한 부담(장기간 디플레이션이던 일본으로서 갑작스러운 물가 상승은 정말 서민에게 고통이 클 터이다)이 민심을 자극하고 있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세 협상도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어째서인지 이시바 총리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다른 일본 전 총리들에 비해 긍정적인 편인데, 그래서인지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그에 대한 퇴진설을 중계하며 입지를 곤란하게 만드는 모습이 뭔가 껄끄럽게 여겨진다. 아무래도 퇴진 요구의 주체가 주로 자민당 내 극보수인 듯한 개인적인 느낌이 주요할 것이다. 또한, 이시바 총리가 퇴진할 경우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후보들이 하나같이 대부분 (한일 관계에서 편할 리 없는) 극보수 성향의 인물이라는 점도 한 몫할 것이다. 그나마 일부 일본 시민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약 천여명 정도 규모의 "이시바 야메루나 (그만두지마)" 시위 (이 정도면 일본에서는 정말 대규모!!)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은 퇴진 반대 시위에 대한 보도는 매우 축소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비하여, 극보수 정치인들로부터 발생하는 퇴진 압박 요구에 대한 보도를 매일같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모습이 다소 편향적으로 보여진다.
한편, 방송국 테레비 도쿄 (テレビ東京)에서는 한국드라마 (그중에서도 사극)이 한창 방영중이다. 한국에서는 주로 중장년 여성들이 아침 드라마를 시청하는 시간대에 이 방송국에서는 아마도 마찬가지로 중장년층을 타겟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서 한국 역사드라마를 주로 방영한다. 예전 일본에 살던 시절에도 이시간대에 한국드라마가 나와서 출근 전에 한참 (고 김주혁 씨 주연의) "허준"을 보다가 출근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오늘의 핵심 일정 중 하나는 신주쿠의 SBJ은행 (신한은행 일본지점)에서 업무를 보는 일이다. 계좌 정리를 하지 못한 채 귀국한 채 코로나 등으로 한참 돌아가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필요한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숙소에서 조금만 걸으면 도쿄메트로 오에도선 "우에노 오카치마치"역이 나온다. 이곳에서 오에도선을 타고 환승없이 "히가시 신주쿠"역에서 내리니, 예전에 종종 다니던 코리아타운 골목이 가까이 보이는 것이 반갑다. 은행에 도착하여 업무를 보다가 살펴보니 은행 로비의 TV에서 "준산뽀 じゅん散歩" (김영철의 동네한바퀴 같은 느낌의 방송)를 방영중이다. 역시나 예전에 즐겨보던 TV프로그램이라 반갑다.
아침에 나오면서 아침밥은 챙겨먹지 못한 채로 나왔는데, 은행업무는 대기가 길어져 어느새 1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중간에 은행원으로부터 대기가 30분정도 될것이라는 언질이 미리 있었던 터라 나는 시간도 아낄 겸 그동안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자 했지만, 마눌님께서는 그냥 은행에 대기하자고 하여 기다렸다. 그런데 업무는 하염없이 늦어지고, 배는 점점 고파지니 약간 신경질적인 기분이 되어갔다.
그 와중에 업무를 마치고 나온 밖은 무진장 더웠고, 살에 닿는 햇볕이 따가웠다. 게다가 심지어 주변은 코리아타운이라 식당조차 일본 현지식을 찾기 어려웠고, 서로 메뉴선정을 두고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세이부 신주쿠역과 연결되는 지하상가 SUBNADE에 들어선다 (겨우 일본 도착 2일차라 뭔가 그럴듯한 일본식을 오랜만에 먹고 싶었지만, 하여간 무지하게 더웠으므로 일단 그늘을 찾아들어갔다).
SUBNADE에는 예전에 다니던 식당 몇군데 (돈까스 집, 함박스테이크 집 등)가 있어, 그곳들을 갈까말까하다가 결국 세이부 신주쿠 역 쪽 인근 출구의 구석진 곳에 규카츠 집을 찾아 식사를 하게되었다 (식당이름은 "규카츠 모토무라 牛かつもと村新宿本店").
규카츠는 난생 처음 먹어보는데, 이곳은 거의 레어로 익혀나온 규카츠를 뜨거운 숯돌위에 한두점 집어올려 10~20초 정도 취향껏 익혀 먹는 스타일이었는데, 이것이 먹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식후에는 세이부 프린스 호텔 건물을 통과하여 세이부 선 개찰구로 이동한다. 이곳, 세이부 프린스 호텔은 우리 식구가 일본생활을 위해 도착한 첫날 묵었던 곳이라 추억이 깃든 곳이다.
세이부 선을 타고 타나시 역에 하차하여, 역 앞 세븐일레븐에 들렀다가 바로 버스를 타고 이온몰 (AEON Mall 東久留米店)에 도착하였다. 예전 일본에 살던 시절 우리 식구의 식료품 쇼핑을 담당하던 바로 그곳이다. 이곳 또한 반갑다.
아들은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예전 간식 사던 곳은 어떻게 기억에 남아 있는지, 오카시노 마치오카 おかしのまちおか 매장을 찾아 젤리, 사탕 등 간식을 겟또(get). 마눌님은 비즈 관련 잡화점에서 쇼핑 삼매경. 나 자신에게는 마눌 추천의 브랜드 ciaopanic에서 헐렁한 냉장고 바지를 구입. 예전에도 이곳에서 샀던 바지가 내 체형에 딱이라며 마눌이 좋아하는 브랜드다.
마침 3층 매장에는 불꽃놀이 관련 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더불어 전국 불꽃놀이 일정이 적혀 있었다. 마침 우리 체류기간 중 일본에서도 가장 큰 규모의 불꽃놀이 중 하나인 스미다 강 隅田川 불꽃놀이가 예정되어 있어 한번 구경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개최장소도 숙소인 우에노에서 멀지 않은 곳이니 가볼까 한다.
쇼핑도 하고 더위도 식힌 후, 곧바로 우리가 살던 집이 있는 곳으로 가본다. 건물 주변도 둘러보고, 메인 현관의 로비에 들어서서 잠시 앉아보기도 한다 (마눌은 로비의 자판기에서 커피와 콜라를 뽑아온다. 이곳 커피를 마시는 것이 마눌의 이번 여행 위시리스트 중 하나). 한국에서라면 살던 집이라고 해도 언제든지 가볼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들기에 오히려 특별한 느낌이 없을텐데, 이곳은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 있다보니 언제든 마음껏 보러 올 수 없다는 점 때문인지, 애틋한 느낌의 향수가 더해진다.
근처 시소 공원에서 시소에 앉아 어릴 적 아들과 함께 놀던 기억도 잠시 더듬어 본다. 예전과 달리 시소 밑 부분에 탄성을 주던 타이어가 없어져, 통통 튀는 느낌은 없어지고, 어딘가 세월의 흐름에 시소마저 늙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음 장소로 이동을 위해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무사시사카이 역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그곳에서 다시 JR추오선으로 갈아타서 기치조지까지 향한다. (중간에 무사시사카이 역에서는 시립 도서관인 자-프레이스 ザープレイス The Place 에 잠시 들러본다. 이곳도 우리 식구 추억의 The Place).
기치조지에서는 예전 동료 사이토네 식구들과의 저녁 약속이 있다. 일본 회사 근무시절, 같은 부서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을 초대해 요리를 대접하고 파티를 하는 것을 즐기던 독신 시절의 그가 나도 종종 초대하여 함께 어울리며 친목을 다지게 된 사이이다. 마침 그가 결혼한 후에는 그의 부인이 한국에서 유학을 하였을 정도로 한국에 친숙함이 있는 사람인 터라 우리 식구와도 가끔 어울리게 되었다.
우리가 일본을 떠나기 직전에는 집으로 초대하여 조촐한 환송회(?)를 갖기도 하였고, 2년 전 쯤 여름 그들 식구가 한국에 왔을 때는 명동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근처 창경궁 산책도 잠시 하였었다. (그 때도 매우 더운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우리가 일본을 방문하는 김에 오랜만에 연락하였더니, 매우 고맙게도 반가워하며 이곳 기치조지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약속 시간보다 한시간정도 일찍 도착하여 기치조지 역사 쇼핑가에서 이런저런 구경을 하다가 약속장소인 베스킨라빈스 앞에서 접선. 사이토가 미리 예약한 "토리요시 상점(鳥良商店)"이라는 곳에서 식사를 한다. 그도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한 후 다른 곳으로 이직한 상황이고, 나도 현재는 한국에 있지만, 당시 동료들에 관한 소식, 현재 업무 등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소간의 언어의 장벽으로) 다소 어색하지만 나누다가, 시간이 저물고 언제가 될지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헤어진다. 헤어지기 직전 역앞의 코끼리 동상앞에서 단체사진을 한번 찍어본다.
내일은 아들의 요청에 따라 도쿄에서 가급적 먼 곳을 찾아 후지산을 가기로 했다. 여러 교통 수단 중에서 일단 가는편은 JR선 특급열차 "후지카이유(富士回遊)"를 타기로 한다. 원래 가와쿠치코 역까지 가기 위해서는 JR 추오선으로 오오츠키大月역까지 이동한 후, 별도의 사철로 환승해야 하지만, 이 특급은 아즈사/카이지 와 같은 추오선 특급과 노선을 경유하다가 도중에 가와쿠치코 방향으로 직통 연결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최근에 생긴 특급인듯 하다.
방안의 추운 냉방과 달라진 잠자리로 숙소에서의 숙면이 잘 되지 않아 몸의 피로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몸은 다소 힘들지만 오랜만에 일본에 왔으니 좀 덥고 피곤하더라도 열심히 이곳저곳 다녀가야지.. 오늘은 오랜만에 추억의 장소, 추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추억의 하루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