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기까지의 느린 하루들

무너졌던 자리를 다시 채우는 법

by 평범한 보건교사

1. 감정의 잔해를 치웠다고 해서 바로 일어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마음의 잔해를 들여다본다고
바로 힘이 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왜 이렇게까지 부서졌는지
이유를 알게 되면 더 아파지는 순간도 있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이제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는 순간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래, 이제 돌아왔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 마음은 여전히 갈라진 틈이 많다는 걸.
남들이 보기엔 돌아온 것처럼 보였을 뿐

실은 그 틈 사이사이를
아직 손끝으로 더듬어 확인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때의 나는
당장 일어서기보다는
넘어진 자리에서 천천히 무게 중심을 잡는 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2. 다시 보건실에 앉는다는 건, 나를 세우는 훈련과도 같았다

보건실 책상에 앉아
보건실 업무준비를 하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이 자리에 다시 앉을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아이들의 아픔을 받쳐낼 수 있을까?’

책상 위의 드레싱카트, 체온계, 반창고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는데
그 앞에 앉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두 번의 끝에서 돌아온 사람,
한 번 무너져본 사람.
예전의 나와는 다르게
고통을 대하는 마음의 모양이 달라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보건실에서의 매일을
‘다시 걷는 연습’이라고 생각했다.
능숙하게 걸을 필요도,
강해 보일 필요도 없었다.

그저 오늘 해야 할 작은 일을 하나씩 해내는 것.
그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중심을 되찾고 있었다.



3. 학생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먼저 나를 받아들였다

어떤 날은
한 학생이 별일 아닌 듯 보건실로 들어와
책상 앞에 툭 앉았다.

“선생님, 그냥… 잠깐 쉬고 싶어서요. 수업 가기 싫은데 쉬면 안 돼요?”

그 말에 나는 깨달았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걸.

나도 너무나 많은 책임감에 짓눌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뭔가를 하기 싫으면 솔직하게 하기 싫다고 말해도 된다는 걸.



아이들은 ‘괜찮은 어른’을 찾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어주는 어른을 찾고 있었다.

내 불안과 흔들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를 일상의 일부처럼 대했다.

그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이 회복하게 했다.

“선생님, 보건실에 있죠?”
“네. 보건실에 있습니다. 학생 아프다고 하는데 보건실로 보낼게요”

내가 보건실을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건넨 짧은 대답들은
사실 나에게도 건네는 다짐이었다.
나는 아직 온전하지 않아도,
이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고 있다고.


4. 무너진 자리 위에도 일상은 천천히 쌓여간다

하루하루가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 날은 아침 햇빛이 평소보다 따뜻하게 느껴졌고,
또 어느 날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 변화들은 아주 작아서 누군가에게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세했지만 내 안에서는 새로운 세계가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부서진 바닥 위에 하나씩 새로운 벽돌을 올리는 기분이었다.

완벽하게 메워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틈이 있어도 그 위에 일상을 쌓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5. 그래서 오늘도 천천히 다시 서본다

나는 이제 안다.
금방 일어서는 게 용기가 아니라
쓰러졌던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과정 전체가 용기라는 것을.

그리고 그 느린 과정 속에서
보건실은 계속 나를 기다려줬다.
아무 말 없이,
아무런 조건 없이,
늘 그 자리에서 빛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문을 열고 들어가
천천히 책상에 앉는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충분히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걸
나는 조금씩 느낀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선다는 건,
내가 살아 있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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