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돌보는 법을 학생들이 가르쳐줬다

고통스러웠던 보건실에서 희망을 찾다

by 평범한 보건교사

1. ‘괜찮아지는 법’을 먼저 배운 사람

내가 간절히 원했던 직업을 가지게 되었으나,

그 직업을 목표를 이룬 이후에 오는 허무함과 보건교사는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 모르겠다는 정체성의 혼란.

예측하지 못하는 응급상황에 대한 두려움.

쌓여있는 행정업무, 교사들 간의 갈등, 예민한 학부모님들.

나는 보건실에서 보건교사로 살아간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남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했지만, 그때 당시의 나는 정말 괴로웠던 것 같다.



다시 돌아온 보건실에서는 학생들을 보기 시작했다.
보건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건

늘 먼저 내 마음을 추스르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아픔을 숨기지 않는다.
배가 아프면 배를 잡고,
속이 답답하면 얼굴이 금세 흐려진다.
힘들면 스스럼없이 “선생님…” 하고 기댄다.

그런데 나는?
어른이 된다는 이유로,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아프다고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아이들은 보건실 문을 밀고 들어오면서
매일 나에게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선생님도 힘들면… 말해도 돼요.'
'쉬어가도 괜찮아요.'

나는 그 마음을 뒤늦게 배웠다.
아이들이 먼저 보여준 솔직함을,
나도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2. 보건실이라는 작은 세계는 나를 비추는 거울

어떤 날은 진료침대 위에서
낯설게 울음을 참는 아이를 보며
‘저 마음, 나도 어제 느꼈는데’ 하고
묘한 데자뷰처럼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아이의 두통 뒤에 숨어 있는 불안,
어깨 결림처럼 굳어버린 눈치 보기,
선생님에게 말하기 어려워 가슴에 걸린 서운함들.

그 마음들이
너무도 익숙해서,
마치 나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아
잠시 숨이 막히는 순간도 있었다.

보건실은 그래서 자꾸
내 마음을 돌아보게 만드는 곳이다.
아이들의 아픔을 돌보면서
나도 내가 어디가 아픈지 조금씩 알게 된다.




3. “선생님도 아플 때 있나요?”

어느 날, 한 아이가 조용히 묻던 말이 있다.

“선생님은 아플 때 어떻게 해요? 선생님이 스스로 치료해요?”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순간 대답을 잃었다.
그동안 나를 돌보는 일에는
너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의 목소리가 오래 귀에 맴돌았다.
‘나는… 누구에게 기대고 있지?’
‘나는… 아플 때 어디로 가고 있지?’

그리고 천천히 깨달았다.

'선생님은 보건선생님이니까 스스로 치료할 수 있겠네요?'

라는 말속에서 나는 나를 잘 돌보았던 것일까?

학생들을 기계적으로 보건실 이용자 지도를 하면서,

나는 잘 살펴보았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스스로 나를 잘 살펴보았어야 했다.
누구보다 먼저, 나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그 후로 나는 퇴근 후 숨을 쉬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었다.
많은 생각이 들어 복잡한 내 머릿속을 비울 수 있는 운동을..
가만히 앉아 스스로에게 묻는 작은 대화를 적는 일을..

생각이 너무 많아 힘든 나에게 휴식을 주기로 했다.

생각이 들지 않게 숨이 찰 정도로 운동도 해보고, 의미 없는 낙서를 하기도 하고, 엉켜있는 생각들을 그냥 나열하기도 한다.

그건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보건실’이었다.




4.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남는 온도

하루가 끝나고 불 꺼진 보건실은
늘 미묘한 온기를 남긴다.
침대 시트에 남아 있는 체온 몇 가지,
서랍 안 응급약 향기,
불 빛이 꺼져있는 PC의 모니터..

아이들이 겁 많던 마음을 내밀어
조금은 괜찮아져서 나갔다는 흔적들.

그것들이 나를 지친 하루 끝에서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었다.

치료는 사실
줌과 동시에 받는 일이라는 걸
보건실에서 가장 먼저 배웠다.

아이들을 지키는 마음이
언젠가는 나를 지키기도 한다는 걸
천천히 실감하는 요즘이다.

오늘도 느린 걸음을 기억하며
나는 다시 내 자리에 선다.

아이들이 필요할 때
조용히 기댈 수 있는 그 문을
내가 잘 지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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