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하루를 다시 배우는 시간
죽음의 끝에서 살아 돌아온 뒤,
나는 곧바로 삶으로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일상은 그 어느 때보다 낯설고, 무서웠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다.”
“이젠 괜찮아졌겠지?”
그 말들은 모두 선한 의도였지만,
나는 그 문장들이 나를 더 깊은 외로움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을 느꼈습니다.
괜찮아야 한다고 다짐할수록
나는 점점 더 ‘괜찮지 않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1) 하루가 너무 길었다
그때의 나는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아침은 나를 반기지 않고,
해가 뜨는 소리마저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식탁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드는 단순한 동작마저 불편했고
샤워하는 동안에도 물줄기가 차갑게만 느껴졌습니다.
일상은 숨을 쉬듯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이 ‘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보다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더 무거웠습니다.
2) 사람들의 눈빛이 낯설었다
시선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면
그 안에 담긴 연민을 견딜 수 없었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도
그 무심함이 나를 더 작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세상 밖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나를 불러냈습니다.
‘살아 있으니까요.’
3) 다시 보건실로 돌아가는 길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오랜만에 보건실 문고리를 잡았을 때였습니다.
내가 앉아야 할 자리,
예상치 못한 응급상황 대처의 두려움,
학부모와의 어려운 소통,
교직사회 내에서의 소외감과 불편감,
보건교사는 학교 안에서 왜 있는 건지?
임용을 열심히 준비하며, 간절히 원했던 직업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나 자신.
희망도 목표도 없어져 버려 삶의 고통을 견디면서 까지 살아가야 할 의미를 잃어버린 나 자신.
모든 것이 여전히 그대로인데 나만 달라져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예전처럼
“선생님, 머리가 아파요.”
“무릎이 까졌어요.”라고 말하며 보건교사가 해야 할 일들을 알려 주고 있었으나,
나는 그 말마저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질문으로 들렸습니다.
살아 있는 나를 다시 믿게 되고, 학교 안에서 보건교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는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4) 아주 작은 회복들
하지만, 아주 작은 순간들이
나를 천천히 현실로 데려왔습니다.
상처 난 무릎을 치료해 주던 순간,
학생이 “고마워요”라고 조용히 말하던 목소리,
책상 위에 놓인 체온계가 익숙하게 손에 잡히던 감각,
정리해 둔 드레싱카트가 열리던 모습
그런 사소한 장면들이 내가 다시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었지만,
한 명 한 명 보건실에 오는 학생들을 보았습니다.
학생들 증상 호소에 따른 의료적 판단과 그에 이어지는 교육과 처치들을 하나씩 해나가며,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해나갔습니다.
그러한 하나하나의 일들이 모여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나가고 있습니다.
5) 나는 아직 배워가는 중이다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뒤 다시 삶으로 내려오는 길은
누가 알려주는 것도, 누가 대신 걸어주지도 않는 길입니다.
그저 하루를 견디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고,
잠시라도 편안했던 순간을
손바닥에 담아보는 것..
그런 방식으로 나는 조금씩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두 번의 끝을 지나온 사람이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삶의 의미를 모르지만
적어도 이제는, 일상을 다시 배우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