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드러운 촉감을 좋아한다.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원한다면 하루 종일 내가 원하는 감촉의 물건들을 입고 신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보풀이 일어나는 캐시미어가 너무 싫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개 구입해서 자주 입지 않는 것으로 관리하며 입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방법은 없다. 자주 입지 않아 세탁, 마찰을 줄이는 수밖에) 겉옷류가 아니라면 가벼우면서 보드랍고 통풍이 잘 되는 소재를 좋아한다. 담요처럼 바람을 막아줘서 따뜻한 소재도 좋지만 아무리 겨울이라도 몸의 온도는 일정하게 유지시켜주되 통풍이 잘되지 않으면 답답하거나 착용감이 쾌적하지 않아 몸에 닿는 품목은 부드럽고 통풍이 잘 되는 소재를 최고로 생각한다. (세탁이 용이하면 더 좋고) 영혼을 갈아 룰루레몬을 좋아하는 것도 착용감 때문이고 집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은 촉감, 그리고 향을 최우선으로 선택한다. 남동생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가운을 입고 방으로 이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샤워가운이나 로브는 오랫동안 사용해온 품목이다. 습기가 가득한 화장실에서 옷을 입는 것만큼 불편한 것은 세상에 없고, 그렇다고 벌거숭이처럼 나올 수도 없으니 필요에 의해 입었고 이사를 가면서 내 방 옆에 따로 욕실이 생긴 이후에는 꼭 필요하지는 않아도 이미 오랜 습관 때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가 너무나.. 어색하기 때문에 계속 구입해왔다.
샤워를 하고 입는 가운은 타올, 테리 소재가 좋다. 이미 부피가 상당한 샤워타올에 가운까지 세탁하기가 번거롭고 불편하지만 몸에 물기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자연스럽게 흡수되기에 부담 없는 소재인 것이 중요하다. 추위를 많이 타면 얇은 소재는 손이 가지 않아 두툼한 것을 선택하는데 한번 세탁하고 나면 처음의 부드러움이 사라져 아쉽기도 한 소재이다. 타올 소재로 된 가운은 TEKLA 테클라의 것을 좋아하는데 어떤 타올 소재도 건조기를 쓴다한들 세탁 후의 뻣뻣한 느낌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화장실에서 바로 옆 옷장이 있고 화장대가 있어 샤워타올만 두르고 나와도 한 발짝 거리라 타올 소재의 가운은 꼭 필요하지는 않고 촉감을 위주로 구매한다. 피곤하고 쉬고 싶을 때, 약간 추위가 느껴질 때, 포근한 느낌을 원할 때 두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가운은 두툼하고 길수록 좋아한다. 잠옷 중 특히 좋아하는 일본 브랜드 키드블루 Kidblue 의 발목까지 내려오는 담요 소재의 겨울용 로브도 좋아하지만 오늘 소개할 제품은 캐시웨어이다.
아이보리빛의 길고 스펀지 케익처럼 폭신한, 입으면 기분 좋은 침구에 누운 것 같은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하다) 캐시웨어 가운을 입으면 세상 부러울 것도 없고 걱정도 사라진다. 나는 간혹 내가 술. 담배를 했더라면, 어려서의 바람처럼 굉장히 성공한 삶을 살았더라면 그리 오래 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적당히,보다는 괴팍한 스타일이라 좋아하는 한 가지는 더 이상 하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하는 편이다.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더라면 내 간 수치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좋은 향과 촉감은 언제나 상상 이상의 위로를 준다. 잘 씻고 좋은 감촉의 옷을 입고, 아로마 오일이나 기분 좋은 미스트의 도움을 받으면, 내가 좋아하는 미드의 새로운 에피소드가 업데이트되어 있으면 그날의 스트레스와 걱정의 절반은 날아간다. 폭신한 소재만큼 좋아하는 소재는 실크인데 믿을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날도 실크 잠옷에 캐시웨어 로브를 입고 침대에 누워 탄산수 한 병을 마시면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안락하고 편안했다. 다만 실크는 날씨가 더워지면 사각거리는 면 보다 착용감이 좋지 않고, 겨울에는 너무 추워 착용할 수 있는 계절이 길지 않다. 로브는 소재에 따라 다르겠지만 캐시웨어 로브는 4계절 내내 입을 수 있다. 여름에는 덥지 않고 겨울에는 춥지 않다. 캐시웨어는 우리나라에 매장은 따로 있지 않지만 국내 유명 스파에서 많이 사용하는 제품이고 일본에는 단독 매장이 있어 가운뿐 아니라 잠옷, 양말, 담요 등 다양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나는 파크하얏트 부산의 루미스파에 방문했을 때 이 제품을 처음 접했고 너무 마음에 들어 바로 구매해서 입었고 주변에 여러 번 선물도 했었다. (루미스파는 정말 좋은 곳이다. 일정 금액 이상을 결제하면 추가 크레딧이 주어지지만 패키지 결제는 크레딧으로 불가하고, 간혹 패키지의 혜택이 크레딧 혜택보다 더 낫기도 하니 잘 살펴보고 좋은 조건을 택하면 된다. )
캐시웨어의 제품은 젤라또피케와 같은 소재인데 조금 더 두께감이 있고 폭닥함이 느껴지며 소녀스러운 감성의 젤라또피케보다 조금 더 단정하고 모던한 느낌이다. 젤라또피케는 또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브랜드인데 처음 일본에 가서 젤라또피케 매장을 방문했을 때 나의 감동은 같이 간 친구를 당혹시켰다. 2008년 런칭한 브랜드인 젤라또피케는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집에서도 아름다운 옷을 입는, 룸웨어 문화에 붐을 일으켰다.(어디선가 젤라또피케라는 이름이 디저트 가격으로 예쁜 룸웨어를 사 보라, 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는 글을 읽었었는데 디저트 보다는 확실히..많이 비싼 편이다.) 캐시웨어는 젤라또피케보다 조금 더 고가이고, 젤라또피케는 협업도 잦은 편이고 디자인뿐 아니라 품목적으로도 훨씬 선택의 폭이 넓다. 둘 중 더 질이 좋은 것은 캐시웨어이고, 그럼에도 계속 구매하게 되는 것이 젤라또피케이다. 젤라또피케와 캐시웨어의 폭신한 소재는 의외로 한여름에도 덥지 않다. 추울 때까지 에어컨을 켜지는 않겠지만 몸이 으슬거릴 때나 아침에 잠이 깨지 않을 때 폭신한 젤라또피케 가디건을 입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휴가를 못 가는 설움도 조금은 덜어진다. 캐시웨어는 '셔닐' 이라는 이중 직조 된 소재로 쓰인다고 하는데 캐시웨어는 합성 섬유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100% 셔닐로 짜여 있어 비슷한 소재의 제품보다 가격대가 높다고 한다. (젤라또피케는 폴리에스터 소재이다.) 어떤 소재라도 세탁을 하면서 변형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물세탁이 가능한 소재로 만들어져 있고 잠옷 위에 걸치는 용도라 세탁이 자주 필요하지는 않고 따로 세탁망에 넣어 약하게 세탁하고 눕혀서 말리면 큰 문제 없이 오래 입을 수 있다. 캐시웨어도 마찬가지인데 길이감 때문에 갈수록 늘어나고, 얇아지는 느낌 (얇아진다기 보다 착용과 세탁을 반복하며 눌려지기 때문인 탓인 것 같다) 이 있지만 충분히 입고 나면 기꺼이 새로 구입해도 아깝지 않은 품목이다.
비슷한 용도의 더 저렴한 제품도 많이 있지만 결국 끝까지 아끼며 입고, 손이 가는 것은 잘 만들어진 제품이다. 차선을 선택해 뭔가 모자란듯한 만족감에 결국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구입하다 보면 결국 하나의 제대로 된 물건을 사는 것보다 여러모로 후회스러운 구매가 된다. 도쿄에 긴자식스가 새로 생겼을 때 캐시웨어의 단독매장이 너무 반가웠는데 이다음 방문할 때도 여전히 건재하기를 바란다. 추천 품목은 가운, 양말, 재킷형 상의와 하의이고 그 순서 대로이다. 양말은 겨울에 유용하게 쓸 수 있고, 재킷형 상의와 하의도 기분 좋지만 하의의 무릎이 나오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되면 입기 싫어지는 경우는 추천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하나씩 구매하면 금액적으로도 부담이 되니 가장 좋은 것은 결국 로브이다. 20만 원대로 결코 가벼운 가격대는 아니지만 정말 좋은 제품이라 추천할 만하다. 담요도 무척 귀엽고 폭신해서 구매하고 싶어지지만 소재 특성상 변형 없이 오래가는 것보다는 갈수록 얇아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담요는 다른 소재의 것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아기용 담요의 경우 디자인이 귀엽고 예뻐 선물하기 좋을 것 같다. (아기들은 어른보다 하루 종일 담요를 둘둘 덮고 게을러지고 싶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 자라면서 곧 이불도 커지고 바뀔 것을 생각하면 좋은 선택이 아닐까.)
어렸을 때 나는 엄마가 쇼핑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엄마는 늘 화장기 없는 얼굴에 청바지에 간단한 상의 차림의 작고 마른 체구였고 중요한 자리에 갈 때도 화려하게 꾸밀 줄 모르는 엄마를 보고 그 모양이 퍽 한심..해 보여 친할아버지가 30년 전 사준 유행이 한참 지난 발목까지 오는 밍크코트를 찢어질 때까지 입었다. (친할아버지는 엄마를 데리고 나가 쇼핑을 시켜주시는 그런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나는 물건을 살 때 하나만 골라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마음에 든 물건이나 옷은 색깔별로 사주었고 그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해 알뜰함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끼니마다 새로운 음식을 해 예쁜 매트에 각자의 그릇에 반찬을 담아 4인상을 내면 설거지 거리만 한가득이었다. 소풍을 갈 때면 모든 아이들이 내 도시락을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스케이트를 할 때 다른 아이들이 선수복을 맞출 때 엄마는 그것이 성에차지 않아 밤을 새서 파츠를 사서 하나하나 손으로 붙였다. 엄마는 엄마들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에서 나는 욕을 정말 많이 먹었다. (동네 엄마들이 싫어서라기보단 강의를 나가거나 레슨을 하니 시간이 없었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는 너무 달랐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퍽 자랑스러웠다. 사람들은 엄마와 나를 보면 모녀가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엄마인 줄, 딸인 줄 몰랐다고 한다. (나는 키가 크고 엄마는 키가 작다. 얼굴도 많이 닮지 않았다.) 지금 나이에 와서 보면 엄마가 희생적이어서, 나를 위해 수수한 차림을 했던 것은 아니다. 허영심 많은 나와 다르게 엄마는 본인이 좋아하는 영역이 나와는 달랐을 뿐이었다. 20대의 나는 수수했던 엄마가, 자기의 것을 챙길 줄 모르는 엄마가 신경 쓰였다. 옛날의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비싼 화장품도 사주고, 좋은 곳에 데려가고, 철이 바뀌기 전에 옷도 사 주었다. 꽃만은 수수한 것보다 가장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어버이날이면, 엄마의 생일날이면 서울에서 풍성하게 꽃을 사 기차에 싣고 왔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를 딸로서, 자식으로서 보는 것에서 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보려고 본 것이 아니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크게 실망했다. 내 머릿속에 엄마는 환상 속의 엄마였나. 생존하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은 것이었나.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 너무 달랐다. 말로 표현해도 그 배신감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무리 화를 내고 발버둥 쳐도 엄마는 내가 왜 그렇게 화가 난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더 이상 펄펄 끓게 화를 내지 않게 되었고, 엄마는 더 나이가 들었다. 늙어가는 겉모습과 다르게 엄마의 마음은 시계가 거꾸로 가는 듯했다. 동생이 데려온 강아지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엄마 집에 들를 때마다 엄마는 자꾸 무언가를 챙겨주려고 한다. 내 마음을 돌리려고 하는 건가. 자몽청이나 구운 김으로 내 마음이 돌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제는 돌릴 것도 없이 나는 마음을 다 정리했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크고 싱싱한 과일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봄이라 여기저기 피어 흔들리는 꽃을 보면 '아 짜증 나, 엄마가 좋아하겠네.' 생각이 든다. 내가 부드러운 가운이니, 예쁜 잠옷 타령을 하면서 사는 것이 좋은 것만 하고 살아라고, 좋은 것을 누리며 살아라고 키워준 엄마의 흔적이라는 것이 너무 신경질이 난다. 나이가 들수록 철이 든다더니 나는 철은 안 들고 자꾸 목만 메인다. 그래서 가운을 꼭 입는다. 아무 생각 없이 포근하고 싶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