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 좋았으면 좋았을 것을. 말도 많고 탈은 많은 지 잘 모르겠는 뱅앤올룹슨. HX 헤드폰을 구매할 때 동생에게 물어보니 뱅앤올룹슨을 왜 사려고 하냐는 대답으로 모든 것을 일축했다. (물론 나는 HX를 구매했고 무척 만족했다.) 남동생은 타악기를 전공했고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유형의 인간인데 어디 가서 한 예민, 섬세한다는 평을 듣는 나도 내 동생 앞에서는 둔한 인간이 된다. 사람들은 뱅앤올룹슨을 왜 좋아하지 않는가 궁금해서 여러 글을 찾아 읽어보았지만 어려운 용어와 설명에 이해를 잘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적당히 예민하고, 적당히 까다로우며 심미적 아름다움을 즐기는 사람이다. 집중해서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소리의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잡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리에 대한 내 개인적 취향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음식이나, 책이나, 음악이나 취향에 있어서 유독 우위의 잣대가 엄격한 것들이 있다. 내가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느낌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취향은 비교적 어느 것이나 존중받고 취향 그 자체가 평가의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어떤 것은 수준이 미달된다는 이유로, 어떤 것은 '돈값을 못 한다'라는 이유로 비교우위가 정해져 있는 것들이 있고 소리의 영역도 그런 것 중 하나다. 나이가 들면서 나 자신이 바뀌었다는 것이 많이 느껴지는 부분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포용력과는 무관하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할 것은 포기하게 되었고, 내 마음이 다치지 않기 위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그럴 수도 있지-마인드는 내 삼십 대 중반의 가장 큰 수확 중 하나이다. 예전만큼 괴롭고, 외롭지 않으며 누군가를 날카롭게 미워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을 따라 하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언어를 따라 나도 배우고 싶었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정한 이야기를 따라가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루의 절반은 엄마의 피아노 레슨 소리를 들으며 컸기 때문에 입시 피아노곡 작가들은 아직도 내게 가장 친근한 음악가이다. 왠지 내가 쇼팽이나 리스트,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리그, 라벨, 말러를 좋아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고서 말할 수는 없으니 열심히 들어보았지만 여전히 나는 쇼팽, 리스트, 라흐마니노프를 가장 좋아한다. 물론, 모르는 것은 배우는 것이 좋다. 설사 그것이 취향에 관한 것 이더라도 나와 다른 취향에 대해 배우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예전에는 내가 좋다고 느끼는 무언가보다도 누군가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의 평가에 따라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슬쩍 감추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 그렇구나, 나는 이것이 좋았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몇 년 전의 나와는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여전히 나는 나에 대한 타인의 의견에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생각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착을 마음속에 가지고 그 자리를 숨겨두거나 좁히지 않고 온전히 둔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의 의미를 나는 이 나이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뱅앤올룹슨은 덴마크의 하이엔드 음향 브랜드이고 흔히 맑고 청량한 사운드의 중. 고음이 강한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저음이 강한 음향을 선호했고 유선 이어폰의 시대에 보스의 이어폰을 두 번이나 끊어먹으며 애용했다. 에어팟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나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이어폰을 분실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절대 열 시간이 넘는 비행 동안 미드 없이 갈 자신이 없었다.) 면세점에서 에어팟을 구매했고 착용 한순간 다시는 유선 이어폰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늘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핸드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두고, 책상에 올려뒀다 깜빡 잊고 움직이며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이어폰 선이 단선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핸드폰을 비행기 좌석에 두고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충격의 도가니였다. 그렇게 마르고 닳도록 쓴 에어팟에서 에어팟 프로로 넘어왔을 때 처음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것을 체험해 보았고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라고 해 기대 만발했다 생각보다 단절은 아니길래 (기대가 너무 높았던 듯하다) 그래도 만족하며 잘 사용 중이었다. 코로나 이후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어폰의 용도가 더 이상 밖에서 음악이나 영상 시청을 위한 것이 주가 아니게 되었고 필요에 의한 것보다 취향에 의해 음향기기를 살펴보게 되었다. 에어팟 맥스가 출시되었을 때 구매하고 싶어 청음을 했다가 이어폰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의 공간감에 반해 헤드폰을 찾아보게 되었고 베오사운드바가 처음 나왔을 때 tv 대신 집에 설치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나 뱅앤올룹슨의 헤드폰을 청음 했다가 에어팟 맥스 대신 구매하게 되면서 뱅앤올룹슨의 이어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뱅앤올룹슨 ex 가 발매되기 전 사전 구매 혜택으로 7일간 먼저 청음을 해 보고 반품할 수 있는 이벤트가 있었고 한번 관심이 생기면 결국 하고야 마는 나는 참지 못하고 ex를 들였다. 우선 옛날로 돌아간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나도 디자인에서는 만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뱅앤올룹슨 이어폰이 너무 궁금했고 전작의 불편함 (주로 착용감과 통화품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옛날로 회귀한 듯한 디자인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구매했다. 더욱이 에어팟 프로를 사용하면서 콩나물 ( 영미권 국가에서는 stem라고 칭하는 것을 보니 비슷한 듯 다르다) 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짧아 긴 머리에 쓸려 빠지기 부지기수였고 일촉즉발의 순간을 몇 번 넘긴 전과가 있어 디자인보다는 기능에 충실한 것 또한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감이 덜했다. 우선 모두가 우려하는, 나 또한 그랬던 애플 기기와의 연결성은 전혀 문제가 없다. 아이맥, 여러 개의 아이패드, 애플 와치, 아이폰을 사용하는 나는 애플 생태계의 신봉자인데 내 경우는 에어팟보다 뱅앤올룹슨 hx가 오히려 더 오류 없이 연결되었다. (동시에 여러 대의 기계를 사용할 때 정말 바쁜데 에어팟이 갑자기 꺼진다거나, 제멋대로 다른 기계와 페어링이 되면 너무 화가 나서 배신감이 들 지경이었다. 운동을 하면서도 빨리 뛰어가야 하는데 에어팟이 바로 핸드폰에 연결되지 않고 뭉그적거리면 얼마나 성가셨는지 모른다.) 처음 출시된 안트라치테 옥시즌 색상도, 출시 예정인 나머지 두 색상도 그렇게 딱은 아닌지라 기다릴 여유가 없어 반신반의로 신속히 구매했다.
왜 나는 첫 곡으로 DjeuhDjoah의 (도대체 어떻게 읽는 걸까) Caipirinha 를 선택했을까. 아니었으면 다시 돌려보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조용한 집에서 택배로 도착한 물건을 뜯어 무심코 그전에 듣고 있었던 카이피리냐를 선택했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는 완벽한 밸런스의 꽉 찬 소리. 이게 뱅앤올룹슨이 맞나. 중고음뿐 아니라 저음이 강화되어 이제는 와 이건 뱅앤올룹슨이니 엄청 좋은가 봐! 가 아니라 이건 너무 소리가 내 취향인데, 블라인드로 들었어도 선택했을 소리. 헤드폰의 공간감이 살아있는 소리와는 다르게 이것이 명품의 기술력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절묘한 밸런스의 소리가 귀에 꽉 차게 고막을 빵빵 때리는 (달리 표현할 길을 못 찾겠다) 사운드는 뭐냐, 이 물건 제대로네. 많은 혹평을 받는 통화품질의 경우 나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고 배터리 충전 시간 등도 불편할 정도이면 설마 하니 출시했을까 생각한다. (제품 사양을 살펴보면 정확한 시간이 기재되어 있다.) 가격에 비해 형편없다는 노이즈 캔슬링 ANC 은 집 안에서, 조용한 야외에서 듣기에 모자람은 없지만 지금까지 사용했던 에어팟 프로(이상하게 요즘 매우 성능 저하가 된 것 같이 느껴진다. 검색해 보니 다양한 의견이 있었는데 잘 모르겠다.) hx나 ex는 비슷비슷하다. 나는 어차피 길거리에서, 밖에서 활동할 때는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집중하지 못하면 비슷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운동할 때나 움직임이 많을 때는 에어팟 프로도 괜찮지만 집 안에서 듣는다면 무조건 ex를 선택할 것이다. 바람 소리는 막아주는 기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hx보다는 나아도 ex 도 바람 소리가 많이 들어온다. 어쨌거나 구매 주목적이 나와는 맞지 않는 구석이 없었으므로 나에게는 불편사항이 아니다. 착용감은 전작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먼저 출시한 국가의 리뷰 동영상을 보니 많이 편해졌다고 하고 나도 두 시간 이상 착용해 보았을 때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내 경우는 이 이상 좋은 이어폰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비싼 가격에 걸맞지 않다, 기타 국가보다 비싸게 판다는 말들도 많이 보였지만 그런 평들도 일리가 있고 이유가 있겠고, 나처럼 마음에 드는 구매자들도 있을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뱅앤올룹슨의 디자인은 좋았는데 이번 ex는 실망이라는 말도 많은데 나도 디자인에 조금은 실망했다가 실제 받아 계속 사용하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저음이 강한 남성적 소리라는 h95의 어마어마한 가격에 hx를 선택했기 때문에 뱅앤올룹슨의 더 풍부해진 저음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만족하지만 어찌되었든 야외에서 특히 몸을 움직이면서 듣는 것으로는 꼭 ex 가 아니어도 될 것이다.나는 집에서 유선의 불편함 없이 소리에 집중하고 싶고 풍부한 소리를 듣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비싼 가격이 잊혀지는 만족감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에어팟은 그 가격이 아깝지 않다는 만족이 있었고, 에어팟 프로는 최저가를 찾아서 구매해서 좋았고, ex는 듣자마자 가격을 잊어버렸다.)
에어팟 프로와 hx 그리고 ex를 번갈아 가며 같은 곡을 청음 해 보니 에어팟 프로는 정말 잘 만든 물건이지만 내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에어팟 프로는 미국 기업이, 뱅앤올룹슨은 유럽 브랜드가 맞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 정확한 용어나 이해가 부족한 내 수준에서는 저것이 소감이었다.) 미국은 빠르게 발전하고 폭발력이 있지만 집요하고 정교한 것은 없는 나라이다. 뉴욕이 엄청난 독창성이 있는 도시이지만 도쿄의 정돈됨이 (비록 뉴욕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더라도) 그에 못지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한 끗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소위 말하는 브랜드발 이라는 것이 들어간 소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브랜드 가치도 소비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하나의 카테고리가 될 수 있고 그것도 누군가에게는 취향이 될 수도 있다.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 정말 소리 그 자체의 차이가 더 미세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충분히 만족하며 사용할 것 같다.
자주 들르는 철학 글을 쓰는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이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환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환상은 행동을 일으키고 그 행동이 환상을 현실화하기에 인간이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생각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브랜드발이 되었든, 나도 누군가처럼 되고 싶은 생각이든 나쁠 것 없다. 그 방향이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는 그 사람의 인격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인격을 갈고 닦아야만 세상의 좋은 것을 배우고 익히며 삶을 채워가는 인생을 꾸려갈 수 있는 것 같다. 귀는 한 쌍인데 여러 개의 기계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대한 긴 변명을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