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프한 그녀와 다양성이 하나가 되는 순간
영국의 사무실은 런던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소도시에 있었다. 예전 병원 건물을 임대한 곳이었고, 입구에서 건물까지는 약 300m를 걸어야 했다. 그 길은 관리가 덜 된 너른 가든 같은 공원을 가로지르는데, 길가에는 엉성한 잔디와 수풀이 자라고 있고,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 옆으로는 거위 떼가 자기들 정원인 양 뒤뚱뒤뚱 돌아다녔고, 뒤쪽 밤나무 아래에는 밤이 수북이 떨어져 있었으며, 때때로 다람쥐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한국의 도시 건물에 갇혀 지내다 처음 맞이한 자연 가까운 사무실 환경은, 처음엔 '웬 시골?' 인가했지만, 나중에는 이것이야말로 영국의 참모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영국은 공원으로 유명한 나라다. 여왕의 하이드 파크처럼 런던 시내에도 크고 작은 공원이 많고, 어떤 동네를 가더라도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은 국민의 세금으로 국가가 직접 관리한다고 들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지만 실제로는 해 뜬 날을 보기 힘든 영국. 그래서인지 햇살 좋은 날이면 회사를 일찍 마치고 공원으로 나가는 문화가 익숙했다. 나 역시 점심시간 이후 30분 정도 산책이 가능했던 이 사무실 환경 덕분에, 움츠렸던 마음이 조금씩 열려가는 경험을 했다.
영국 사무실에서 함께 일했던 로컬 동료들은 다양성의 집합체였다.
팀 리더인 '댄'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올 법한 주인공의 남자친구 같은 모습. 큰 키에 비스포크 슈트가 잘 어울렸고, 말도 아주 잘해서 팬유로 거래선 행사나 신제품 론칭 발표의 단골 스피치 맨이기도 했다.
인도 출신의 안쿠시, 루마니아 출신의 바니아, 스마트 제품을 담당한 존. 모두 각자의 개성과 배경이 뚜렷했다.
안쿠시는 '인도의 천재'였다. 한국 본사에서 글로벌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입사했고, 영국으로 이민 온 인도인 변호사 아내와 함께 영국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내가 한마디만 던져도 맥락을 바로 알아차릴 만큼 한국 기업 문화를 100% 이해했고, 전략적 가지치기를 해주는 능력이 탁월했다.
바니아는 디테일로 승부하는 친구였다. 내가 자주 요청하던 국가별, 제품별, 대표 세그먼트별 시장 점유율 데이터를 매크로로 정리해 스스로 시장 조사 기관을 만들어버렸다. 루마니아 이민 2세로 영국에 뿌리내리며 살아온 그녀에겐 분명한 의지와 저력이 있었다.
어느 날, 스마트 제품을 맡은 존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정체성을 털어놓았다. 그는 런던 근교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고, 최근 다이어트에 성공했으며, IT 전공자답게 현재의 업무에 만족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무표정하게 "그래?"라고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남자친구 이야기를 시시콜콜 묻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 순간 내 반응이 '예의' 수준을 넘지 못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나름 글로벌하다고 자부했지만, 낯선 정체성에 익숙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유럽 본사 산하 17개국 법인들과 소통하며, 본사의 전략을 로컬에 전달하고, 각 시장의 목소리를 다시 본사에 정리해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판매는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신제품은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브랜드 위상도 점차 향상되었다. 본사도 유럽 실적을 높이 평가했고, 우리 역시 '유럽을 지키는 파수꾼' 같은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었다.
이 팀워크가 최고조에 달했던 순간이 있었다.
본사의 최고 경영층이 유럽을 방문하게 되면서, 유럽 사업의 비전과 전략을 보고하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나는 이 기회를 활용해 중장기 전략을 새롭게 수립하고 싶었고, 팀과 함께 백지에서부터 비전을 그리기 시작했다.
Top 브랜드의 비전을 설정하고, 각 value chain별 전략을 도식화해 현지와 본사의 실행 계획을 구체화했다.
20장에 달하는 PPT 초안은 내가 직접 손으로 그렸고, 본사에서 파견된 지금의 Gamma AI 같은 젊은 후배들이 디지털로 정리해 주었다. 논리는 댄이 조율했고, 전략의 타당성은 안쿠시가 검증했으며, 바니아는 데이터를 백업했다. 존은 본사 팀의 로지스틱스와 식사 등을 세심하게 챙겼다.
최종 보고 날, 댄은 스토리텔링의 달인답게 전체 자료를 매끄럽게 설명했고, 안쿠시는 전략적 근거를 보완했다. 나는 빠진 블록을 설명하며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본사 경영층은 발표를 듣고 “전략에 확신이 든다”며 우리 팀 전체를 칭찬했다. 로컬 팀이 주도적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발표한 그 모습이 특히 인상 깊었던 듯하다.
이 자리에서 댄과 안쿠시는 본사에 강한 인상을 남기며 향후 인재로 주목받게 되었고, 나는 그들이 직접 대면 보고할 수 있도록 설계한 내 전략에 혼자 흐뭇해했다.
나중에 사장님은 나에게 “현지 조직을 잘 육성했다”라고 말해주셨다.
실제로 내가 떠난 후, 이 팀의 대부분은 승진하며 조직 내 주요 리더로 자리 잡았다.
그들이 나를 떠올릴 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할까?
떠날 무렵 그들은 내게 배운 게 많다고 했고,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땐 “보고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누군가 나에 대해 물으면,
“She is really tough.”라고 했다고 한다.
맞다. 나는 글로벌 동료들에게도 ‘똑부’였다.
업무에 대해 부지런히 챌린지하고, 때론 잔소리도 했지만, 다 함께 잘해보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때는 나의 승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조직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랐고, 그 안의 다양한 동료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조직에 다닐 수 있길 바랐다.
그렇게 몇 명의 스타가 나타났고, 그 조직은 지금도 좋은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떠난 자리에 사람이 남았구나.”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다음 연재는 영국에서 일하기 (2) – 영국과 프랑스가 다른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