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나를 어디로 데려갔는가
보직장으로 일하는 것은 자기만의 리더십을 구축하는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갑작스레 많은 인력을 관리하게 되고, 업무 영역이 확대되며 그 책임 범위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관련 부서와 협력할 일도 많아지고, 임원 보고가 잦아지고,
때로는 임원 부재 시 경영진에게 독박 보고를 해야 하기도 한다.
모든 일은 어렵지만, 동시에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주재 시절, 백 명 가까운 로컬 인력들과 일해본 경험,
그리고 품목의 대표 주재원으로서 경영진에게 직접 보고했던 시간들이
그 무거운 자리에서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후배들에겐 나는 ‘똑부’ –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구성원들은 수면 아래에서 백조의 발처럼 동동거렸다는 걸,
나는 꽤 한참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외려 ‘똑게’ – 똑똑하지만 게으른 리더가 더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임원이 되어서야 조금씩 깨달았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르다'는 표현은, 중요한 시점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고,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위임한다는 뜻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구성원들의 업무를 너무 부지런히 챙겼다.
지금 돌아보면, 조금은 아쉽다.
그즈음에 나는 두 번을 임원 승진에서 탈락했다.
첫 번째는 회사가 매우 어려웠던 해라 티오(TO) 자체가 줄어서, 최종 순위에 들지 못했다.
당시엔 누구나 이해할 수밖에 없는 구조조정의 결과였다.
두 번째는 그다음 해였다. 이번엔 최종 순위에 들었지만, 막판에 뒤바뀌었다고 들었다.
소문으로는 “역할의 다양성”을 고려한 조정이었다는데, 탈락 직후엔 그 어떤 설명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임원은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임원 후보군이라면 이미 검증된 사람들이다. 거기에 타이밍과 운, 조직의 판,
정치적인 균형까지 맞물려야 최종 승진으로 이어진다.
나는 본래 과거에 오래 매달리지 않는, 툴툴 털어버리는 ‘캔디 같은 캐릭터’’다.
하지만 이 두 번의 탈락은 씁쓸했다.
최근 MZ들은 짧은 임기의 임원보다 정년 보장을 택하지만,
나와 비슷한 세대에게 ‘임원’은 20년 이상 헌신 끝에 도달해야 할 목적지처럼 여겨졌다.
사실 임원은 전체 직원 중 1%도 안 되는 자리이고, 여성 임원은 그보다 더 드물다.
이성적으로 보면 ‘임원이 안 된 것’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의 잣대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경쟁과 비교의 문화는
그 순간 내 안에서도 작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며칠 뒤, 팀장님이 조용히 부르셨다.
“다른 보직으로 이동해서 한 번 더 기회를 만들어보자.
하나는 본사 지역 영업 조직장이고, 또 다른 기회는 영국 본사 쪽 제품 총괄 자리야.
생각해 봐. 어디로 가고 싶은지.”
사실 나는 떠나고 싶었다. 임원이 되지 못한 이 공기를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은 힘이 빠져 있던 내게 자율 선택권을 주었고, 나는 “영국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무언가를 다시 준비할 겨를도 없이 인사 발령이 났고, 나는 정신없이 비자 신청을 하고 짐을 쌌다
영국 출국길은, 마치 복잡한 집을 뒤로하고 긴 여행길에 오르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본사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임원이 되지 못한 채 유럽 국가를 전전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잘된 일이었다.
이제는 ‘임원’이라는 목표를 바라보며 일하지 말자.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새로운 환경에서 즐겁게 일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다행히 영국 본사에서 맡게 된 일은,
유럽 17개국의 영업을 총괄하는 본사의 전략 조직이었다.
각국의 로컬 전략과 본사의 제품·마케팅 전략을 조율하고,
본사 차원에서는 유럽 전체 매출과 방향성을 본사에 유럽 대표로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생각보다 크고, 새로웠다.
나는 설레기 시작했다.
“다음엔 꼭 임원이 되어 돌아와야지” 같은 생각은 버렸다.
그 대신, 지금 이 자리에서 유럽 전체 비즈니스를 상상하며 17개국을 체험하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다짐대로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 – 『영국에서 일하기 (1) : 내려놓고 시작한 새로운 리더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