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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 자리 잡기

돌아온 자리에서, 다시 나를 증명해야 했다

by 츤데레달언니

5년의 주재 생활을 마치고 본사로 돌아온 첫날, 어색하지만 반가운 마음에 이곳저곳 다니며 인사를 하였다. 큰 조직이다 보니 내 복귀가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동료들과 선후배들이 따뜻하게 반겨주었다 본사로 복귀하면서 새로운 제품군의 상품기획 파트장, 즉 보직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처음 맡는 보직이었고, 이 자리는 앞으로 임원으로 가기 위한 필수 관문이었다. 나는 복귀하자마자 긴장과 기대를 안고, 빠르게 업무에 몰입했다.


상품기획팀은 글로벌과 지역별로 제품의 생애주기(PLC)를 관리하며, 각 단계에서의 수익성을 점검하고 필요시 제품 교체포트폴리오 개선을 제안하는 조직이다. 이후에는 신제품 기획까지 맡게 되면서, 지역별 다양한 소비자 니즈를 반영해 제품을 설계하고 도입 전략까지 수립하는 고난도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제품은 당시 시장 점유율이 낮고 경쟁사에 밀려 있던 '2군' 제품군이었다.

‘1등만 살아남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조직 안에서, 이 제품은 영업 부서의 불만도 컸고, 내부 도전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 제품군에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경영진 역시 그 가능성을 주목했고, 이 기회를 내 리더십을 입증할 무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복귀 초반, 나의 내적 동기와 조직 분위기는 놀라운 시너지를 냈다. 나는 경영진 보고를 준비하며 밤을 새우기도 했는데, 그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었다. 그저 진심으로 잘하고 싶어서, 스스로 선택한 몰입이었다. 오랜만에 본사 체계에 맞춰 보고를 준비하다 보니,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감을 되찾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런 내게 다행스럽게도 보석 같은 후배 지훈이 옆자리에 있었다. 지훈은 한때 퇴사를 고민하며 장기 휴가 중이었는데, 내가 부임하자마자 다시 복귀해 있었다. 말 그대로 천군만마 같았다.


지훈은 이 제품군에서 오랜 경험을 쌓아온 실력자였고, 나는 그의 제안과 시야를 깊이 신뢰했다. 지훈 또한 현장 경험을 갖춘 새로운 리더의 접근 방식에 신선함을 느꼈던 것 같다. 우리는 그야말로 좋은 합이었다. 밤을 새우며 준비한 보고는 큰 무리 없이 마무리됐다. 당시 팀은 대부분 기획 부서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현장과의 접점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 조직에 현장 영업을 경험한 리더가 오면서, 기획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메워졌고, 업무 전반에 에너지와 균형이 생겨났다.


물론 모든 일이 순조롭게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신제품 기획, 글로벌 확대 전략, 경쟁사 대응, 수익 제고 방향 등… 여러 가지 전략 보고가 경영진의 방향에 따라 어느 날은 채택되고, 또 어느 날은 기각되곤 했다. 덕분에 나의 평판도 ‘능력 있는 보직장’과 ‘아직은 미숙한 보직장’ 사이를 오르내렸다.


기억에 남는 보고가 하나 있다. 업계 1등 브랜드와 지역별 시장 점유율 차이, 주요 모델의 경쟁력 차이를 분석해, 그 갭을 메우는 중장기 라인업 전략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 보고는 경영진의 큰 호평을 받았고, 자료는 각 부서의 중장기 계획 수립에도 활용되었다. 주변에서 자료를 달라고 찾는 요청이 많아지자, 부서 구성원들도 뿌듯해했고, 나 역시 사업의 방향을 리드했다는 자부심에 잠시 기대감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서너 달 뒤, 전혀 다른 상황을 맞았다. 수익성 향상을 위한 모델 운영 전략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수십 명의 경영진과 보직장들이 모인 회의실 안에서 보고가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지원 부서에서 자료가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상태였고, 각 부서별 챌린지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나는 결국 “보고를 다음에 다시 하겠다”라고 말하며 뒤로 물러섰다. 실은 내가 봐도 자료 분석에 문제가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애초에 보고 일정을 미루던가, 아니면 자료 분석 오류를 인정하거나 혹은 지원부서의 자료 도착이 늦었다고 슬기롭게 ‘핑계’를 대던지, 담담하게 받아 들였어야 했다. 그 상황 이후 지원 자료 오류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었고, 보고는 서면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이후 후속 발표자들은 예상치 못하게 ‘서면 보고의 혜택’을 누리는 상황이 되었다. 그 일은 내게 분명 마이너스였다.


하지만 나는 그 실패 덕분에 경영진 보고의 기술을 다시 정립할 수 있었다.

보고는 초반 3~4페이지가 가장 중요하다

초반에 나올 질문은 반드시 예상하고 준비해야 한다

모든 질문에 답하려 하기보다, 때로는 기술적으로 유보할 수 있어야 한다

보고가 흔들릴 때는 멈추지 말고 끝까지 밀고 가는 침착함이 필요하다

나는 그 이후부터 보고 전에 꼭 중얼거리며 멘트를 연습했고, ‘당황하지 않는 기술’을 하나씩 익혀 나갔다. 결국, 보고란 전략이기도 하고, 연기가 조금 필요한 법이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내가 가장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당당함으로 보고를 시작했다. 내용에 대한 이해도, 맥락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나만의 관점을 갖고 있다는 확신이 어떤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는 힘이 되어주었다.


아무튼 그 자리는 내게 제품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관리하면서, 생애 주기별로 신제품 기획, 마케팅, 영업에 이르는 전 영역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난이도 높은 업무였지만, 많은 것을 배우는 시기였고 또한 보직장으로서 나만의 리더십을 만들어가는 자리이기도 했다.


구성원들이 많다 보니, 특정인을 편애하지 않고 골고루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명의 오른팔과 왼팔들은 10% 정도는 편애할 수밖에 없었다. 부서 전체가 함께 달리는 업무에서는 효율성과 속도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지훈이는 예외적인 존재였다. 게다가 그는 부서 내 일머리 있는 후배들이 많이 따르는 선배였기에, 나는 지훈과 그의 후배들을 한 번에 나의 구성원으로 별 탈 없이 맞이하게 된 행운을 누렸다. 지훈은 얼마 후, 현장 경험을 위해 영업 부서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아 진정한 현장을 몸으로 겪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년엔 중견기업의 임원으로 이직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K-제품을 기획하고, 이기는 전략을 수립하며, 그 구성원들에게는 영향력 있는 선배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훈 외에도, 그 시절 함께했던 후배들은 지금은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누군가는 이직했고, 누군가는 자기 사업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이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또 다른 이는 퇴사를 준비 중이다. 각자 다다른 신분으로, 우리는 여전히 만난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 위에 나는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다음 편 < 실패, 그리고 다시 영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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