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에서 비로소 시작된 관계의 정리
헤어질 결심.
몇 년 전 나온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의 ‘헤어질 결심’은,
미워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서로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는 선택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이 제목이, 내게는 오래 남았다.
나의 본격적인 헤어질 결심은 회사를 떠나고 나서다. 처음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연락이 오기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 무더기는 점점 작은 무더기가 되면서 점점 적어졌다. 실은 나는 알고 있었다. 회사를 떠나서 세네 명 정도 남으면 회사 생활 잘했다는 증거임을 삼십 년 전 입사 초부터 선배들에게 들었던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만남을 능동적으로 하기로 했다. 예전 회사에서 만났던 누구라도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면 만남을 약속하기까지 여러 차례 질문을 내게 돌렸다. 이 사람은 내게 어떤 의미인가? 이 사람을 인생 내내 만날 것인가? 의 질문들. 그러면서 예전에는 내치기 힘들었던 선배(혹은 예전의 상사)와의 만남도 선약을 핑계로 미루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만나게 되는 선배들은 회사 내에서도 직접 일로 부딪친 분들은 많이 없지만 어느 순간에는 나의 상사이거나, 길 건너 옆 부서의 상사이거나 하셨던 분들이다. 대개는 인간미 넘치는 여유를 지니면서도 소박한 인생을 살고 계시는 분들이다. 물론 그분들은 절대 소박하지 않은 경제적인 풍요를 가지고 계신다. 그럼에도 꾸미지 않고, 후배를 배려하고, 인생사에 대한 다른 시각이 있으며, 지나간 그들의 치열했던 회사 생활을 가끔은 추억하지만 회사를 떠난 각자의 인생을 응원해 주신다.
나를 주로 찾는 이들은 후배들이다. 나를 직장생활의 롤모델이라고 일 년에 두 번쯤 연락하는 영선이, 같은 팀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같이 겪고도 그 시절을 아직 재미있었다고 추억하는 유, 마지막 부서에서 함께했던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테디 베어, 중국에 공부하고 돌아오며 백주를 같이 마시자고 연락해 온 은지. 그리고 프랑스 회사 생활에서 만났던 주재원 후배들. 이들이 그나마 꾸준히 만나는 사람들이다.
실은 이 후배들은 내가 조직 생활에서 오래 지켜보고 싶었던 후배들이었다. 내가 회사에 좀 더 오래 있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도 그들이었다. 다행히 지금 조직생활에서 그들에겐 내 흔적이 없다. 워낙 능력 있고 두루두루 잘 맞추는 친구들이라,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
특히 영선은 내가 있던 조직으로 끌어온 친구다. 내가 과장일 때 입사했던 신입사원이었는데, 어느덧 부쩍 커버려 능력 있는 중간관리자로 성장해 있었다. 나를 롤모델 삼아 단독으로 해외 주재도 갔었다고 했다. 나중에는 우리끼리 언니, 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 내가 떠난 후, 영선은 고단했던 회사 생활을 이야기했다. 조직의 임원들이 떠나고, 그 애에게 조직이 내려왔을 때 “우산이 사라진 상태에서 비를 맞는 느낌이었다”라고 했다. 회의나 보고 때마다 주변에서 속사포 같은 공격이 쏟아졌고, 감당이 안 되었다고. 결국 그건 자책감으로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숨이 안 쉬어지면서 번아웃이 되었다고 했다. 마음 상담을 하게 되었다고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 나는 울컥했다. 내가 더 있어야 했었는데 하는 자책감, 후배들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등….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래서 나는 영선의 이야기를 더 오래, 더 끈기 있게 들었다. 그리고 그 애 앞에서, 내 앞으로의 삶에 대해 말하는 일이 어쩌면 나 자신을 다잡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후배들과 만나, 가끔은 지난 조직 생활을 추억하고, 더 자주 그들의 고단한 회사 생활을 들어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꺼낸다. 후배들 앞에서 말로 뱉는 그 다짐이, 결국은 내 쪽을 향해 돌아오는 다짐이 되기도 한다.
나의 헤어질 결심은 점점 뚜렷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카톡에서조차 생일이라며 뜨는 이름을 보고, 삭제하기도 과감하게 한다. 주소록에 너무 많은 이름들이 저장되어 있다. 한 번 보고 수년간 못 보았던 사람, 그 이름과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가 기억이 안 나는 사람들이 삭제의 일 순위이다.
그러면서도 한 번쯤은 연락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와 마지막에 조직생활을 같이 했던 팀장이었다. 내가 먼저 퇴직 통보를 받았기에 팀장이 막아주지 못했다는 섭섭함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었다. 퇴직 후 일 년쯤 되어 한 번 집으로 불러주긴 했었다. 다른 이와 같이 있던 자리라 뭔가 허심탄회하긴 어려웠기에 난 그 자리가 나를 위한 자리라곤 생각지 않았다. 늘 최선을 다하는 팀장이라, 그날도 최선을 다해 한 상을 차려 놓았으나, 그저 집들이인 듯 피상적인 하하 호호 대화만 오고 갔다.
일 년이 또 지나 다른 이와 함께 저녁을 간단히 했다. 그때도 나는 앙금이 있었다. 실은 나의 퇴직 통보가 팀장의 잘못은 아니다. 그럼에도 같이 보낸 세월과 그 기간 동안 내가 쏟았던 진심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팀장에게, ‘팀장으로서 끝내 지켜주지 못한 사람에게 미안해하는 마음’ 같은 것—그런 위로의 말을 기대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가 어떤 말을 했어도, 내겐 위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은 오히려, 그 순간을 침착하게 받아들였던 나를 성숙한 사람이라 에둘러 생각하며 털어버렸다.. 위로가 받고 싶어도 주지 않는 사람과도 헤어질 결심을 하는 것, 그리고 진정한 위로는 받는 사람이 느껴야 위로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또 조용히 그와도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다.
이찬원이라는 가수가 트로트 경연대회에서 불렀던 “시절 인연”이 이런 것일까. 오래된 회사 생활을 마치고 미련 없이 헤어질 결심을 하면서도 나 스스로는 그들은 시절 인연이라 여기며, 혹시나 내가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 못되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걱정도 해보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헤어질 결심을 하는 순간 다시 만나게 되는 인연들이 생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