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명.재(2)-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며칠 전부터 나의 머리속에 강하게 박힌 생각,물음이 하나 있다. "성공이나 행복이라는 인간의 궁극적 목표에 대하여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비춰지는 이미지와 실제 나의 모습은 반드시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였다. 사회적으로 비춰지는 나의 이미지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는 것 같다. 내신 성적은 4~5등급 언저리에 수능도 망했으며, 그렇다고 뭔가 친화력이 엄청 뛰어나 흔히 말하는' 인싸'의 이미지도 아니다. 또한 엄청 성실하다거나 열심히 한다거나 이런 것도 딱히 나에게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게만 보면 성적도 그리 대단하지 않고, 그렇다고 대인관계가 엄청난 것도 아니며, 성실성이나 노력적인 부분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인생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사회적으로만 보면 나는 성공하거나 행복한 삶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러나 정작 지금의 나는 정말 삶이 즐겁다. 2006년생으로 현재 대학교 1학년생, 진로와 취직, 인간관계 등에 극도로 예민할 만한 나이이다. 이 세가지 모두 아직 갖추지 못했기에 나도 지금의 내가 정확히 왜 행복한지는 모르겠다. 성공과 행복을 어떻게 봐라봐야 하며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글을 작성(명언 선정)을 하게 됐다.
찰리 채플린은 1889년 4월 16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1977년 12월 25일에 타계할 때까지 세계 최고의 코미디언,영화 감독으로 활약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TIME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었고(코미디언 부분), 또한 BBC 선정 위대한 영국인 66위를 차지 할만큼 영국을 넘어 20세기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는 그대로 해석하면 가까이서 보면 슬프고 힘들고 아픈 이야기이며 멀리서 보면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는 정말 간단히 문장 그대로 나열한 것이며 정확한 뜻을 알려면 우선 찰리 채플린이 영화 감독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화 촬영 기법에서 비극적인 요소는 주로 클로즈업(무언가를 집중해서 촬영,즉 좁게 촬영)하고 반대로 희극적인 요소는 롱숏(집중보다는 배경 전체를 촬영,즉 넓게 촬영)을 주로 사용한다. 비극적인 요소에 주로 클로즈업을 넣는 것은 주로 대상의 아픈 모습이나 대상과 배경의 단절같은 느낌을 극대화 시키려기 위해서이고, 희극적인 요소에 주로 롱숏을 넣는 것은 주로 대상보다는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하고 배경과 대상의 혼합적이며 전체적인 모습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채플린은 영화 감독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직업에 관련된 방식을 영화 촬영 기법을 넘어 사람의 인생 철학에 대입시킬 수 있었다.
사실 맨 처음에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지난번에 했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그대로 해석을 하고 또 그거대로 재해석을 하면 됐는데 이거는 기본적으로 명언에 대한 이해가 어렵고, 또한 선술했듯이 영화적인 지식 또한 어느정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이해 한 뒤로도 그저 명언 자체에 대해 집중을 했지 이 말이 영화 촬영 기법에서 온지도 잘 몰랐고, 알더라도 영화 촬영 기법과 명언의 관계가 그리 크게 연결 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어느정도 생각을 한 뒤 이 명언의 뜻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다. 사실 영화 촬영 기법과 이 명언의 관계가 크게 연결 되어 있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생각보다 쉽게 풀이가 되었다. 아까 말했듯이 채플린은 영화 감독이었기에 자신의 직업에서 나온 방식을 실제 삶 속에서 적용하는 말을 한 것이었다. 그러니 나도 영화 촬영 기법을 생각하면서 실제로 나의 삶 속에 적용하면 됐다. 아까 비극적인 요소에 클로즈업을 하는 이유가 대상의 아픈 모습이나 대상과 배결의 단절되는 느낌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이를 삶 속에 대입하면 아프고 슬픈 감정,생각 등에 집중을 하고 힘들어하는 이유는 그 슬픈 감정,생각 등 자체에 대해 신경을 쓰거나 아니면 내면 속 나의 모습과 겉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사회적인 이미 등이 단절되고 상반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슬픔이나 나약함을 어느정도 감추려고 한다. 그렇기에 우울증 등을 앓고 있어도 공적이거나 사회적인 자리에서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감추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너무 감출수록 더 이상 내면 속의 자기 모습과 겉의 모습이 상반되고 단절됨으로써 슬픔과 허망함을 느끼게 되며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회의감을 갖게 된다. 반대로 멀리서 보면 희극인 이유는? 희극적인 요소에 롱숏을 하는 이유는 화기애애하고 배경과 대상의 혼합적이고 전체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라고 선술했다. 이를 삶에서 대입하면 우리는 슬픔이나 나약함 같이 비극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와는 달리 기쁨,행복,강인함 등 희극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는 어느정도 보이려고 한다. 물론 너무 심하게 보이는 것은 그거 또한 문제가 되겠지만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한테 '기쁨'과 '슬픔' 둘 중 무언가를 보이고 싶으세요? 라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은 기쁨을 고를 것이다. 즉, 내면적으로 기쁘고 행복한데 공적이거나 사회적인 자리에서 슬프고 힘든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 또한 드물다. 당연히 사회나 이런 분위기는 거의 99% 즐겁고 행복한 곳에서 있고 싶지 비참하고 힘든 곳에서 있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쓰고서도 정말 내가 잘 이해한게 맞는지 모르겠다. 아까 말했듯이 이 명언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단순 명언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영화 기법이라는 요소까지 같이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완전 말도 안되는 길로 경로 이탈을 할 것처럼 보였지만 이정도면 최소한 목적지에 대해 이해를 하긴 한 것은 같다. 아까 말했듯이 내가 이 명언을 고른 이유는 성공과 행복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서였다. 내면 속은 우울하고 힘들어도 겉으로는 밝고 활기찬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런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사람의 행복이나 즐거움은 겉의 모습이 아닌 속마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특이하다. 겉으로만 보면 그리 행복하지 않을 지언정 충분히 행복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오늘도 속마음의 중요성, 행복의 필요함 등을 느끼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